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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마련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청첩장, 예식장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 갑자기 식을 연기하자는 남자

술기 거하게 취하셔서 저녁 늦게 들어오신 아빠는 날 부르셨다

" 미경아! 너 꼭 이 놈하고 결혼 하고 싶냐, 아빠는 아니다" 무슨 말씀인가 오늘 결혼준비를 체크하시기 위해

만나시게 아닌가 이상하다 무슨 문제가 생긴걸까. 전화가 없던 시절, 통화는 그사람이 직장에 출근해야만 가능 했다 밤새 뒤척이다 한 잠도 자지 못한채 아침을 맞이 했지만 정작 내 머리맡엔 엄마의 무거운 표정이 놓여 있다.

" 미경아! 아빠는 이 결혼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신다. 혼서지를 보내고 결혼 날짜를 잡은 남자 집에서 어떻게 집 마련을 위해 결혼을 미루자는 것이 말이 되냐고. 아무래도 남자가 과거가 있는 것 같다고 하신다"

" 그럴리가 없어. 과거가 있으면 선을 보러 나왔겠어? 그리고 경화엄마가(엄마의 오랜된 친구) 중매를 섰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말과는 다르게 불안한 마음은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직장에 출근한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할 용기도 난 없었다 그 만큼 그 사람에게 난 빠져 있었다 상대가 나의 인생을 망치려 하고 있는데 난 그 사람의 마음을 신경 쓰고 있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은 간단히 먹고 엄마도 나도 검은 구름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왜 엄마는 중매를 선 친구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당신의 체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신의 자랑거리였던 큰 딸이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이 챙피한 일이었겠지

그 때 엄마가 중간에 중매를 선 친구에게 좀 더 강하게 사태의 파악을 요청하였다면 나의 인생이 바뀌었을까

당신의 체면만 생각하는 엄마가 아닌 자식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엄마였다면 나의 인생은 어찌 되었을까

잠시 뜬구름 한 조각이 컴퓨터 자판을 스치고 지나간다


저녁 7시 그 사람과의 통화 후 와출을 준비한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그리고 외진 골목 담벼락에 앉았다

왜 그러냐고 한마디도 묻지 못하는 난 행여 그 사람이 그만 하자고 할까봐 그럴까봐 두려웠다.

난 그저 그 사람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는 사람, 속도 없는 난 울지 말라고 어떤 일이든 난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위로 했다. 세상 경험이 없는 여자는 결혼 문전에서 머뭇거리는 남자의 이유를 모른 것이다 세상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을...

결혼 날짜를 잡고 예식장을 예약하고 청첩장을 만들고 그런데 갑자기 집 마련이 어렵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 남자 앞에 한참이나 부족한 여자는 남자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어둠속의 사랑은 시작 되었다

함께 긴 밤을 보내고 함께 맞이한 아침.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 밖에 결혼을 진행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힘들어 하는 그 사람을 품에 안고 있었다


밤을 새고 돌아온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학 다닐 때 하던 야학 생활도 수업이 있는 날은 당연히 늦음에도

여자가 밤늦게 돌아 다닌다고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아빠였다. 그런 가정에서 외박을 하고 들어온 딸을

어떻게 바라 보겠는가. 온 집안은 6.25 동란이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그 날이 시작이라는 걸 나도, 엄마도, 아빠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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