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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하게 진행 되는 혼사

택시를 태워 주면서 번호를 외울테니 걱정 말라는 그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혀

빠지지 않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을 때 중매를 섰던 엄마의 친구로부터 내가 색시감으로 마음에 든다는 전갈이 왔다 엄마는 그 흔한 궁합도 한 번 보지도 않고 무조건 오케이를 하셨고 어릴 때부터 늘 엄마의 가스라이팅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사귀고 있던 과 선배가 있음에도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난 이미 그사람에게 빠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김병연입니다 혹시 미경씨 통화가능할까요" 엄마는 상기된 표정으로 날 바꿔주신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만났을 때 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통화 내내 옆에서 나를 주시하던 엄마는 통화의 내용을 물어 보신다 " 뭐라 그러냐" " 응 오늘 저녁에 만나자고" 그렇게 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잘계셨어요" "네" "미경씨 뭐 드실래요" " 아무거나요" 정확하게 무엇을 먹었을까 37년이 지난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밤 늦은 시간까지 데이트라는걸 하고 헤어졌다 늦은 밤 들어오는 나를 기다리던 엄마는 코 앞에 다가와 앉는다 " 무슨 이야기 했냐 " " 뭐 별 이야기 안했어 저녁 먹고 차 마시고" " 저녁은 뭐 먹었어 차는 무슨 차를 마시고" 그렇게 엄마에게 한시간 이상을 시달린 후에 내 방으로 들어 왔고 갑작스런 진행이 황당하였다 그럼 지금 만나는 과 형에게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하나 사실 과 형은 나에게 목숨이라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우리집에 와서 밥도 먹고 나도 형네 집에 가서 밥도 먹고 나에게 형은 어떤 의미일까 머릿속의 실타래가 꼬여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의 생각은 과 형에 대한 생각 보다 오늘 만난 그 사람에게 쏠려 있다


과 형과 만나고 들어온 다음 날 난 전화로 이별을 통보 하였다 헤어지자는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던 형은 그대로 전화를 끈었다 난 형이 쉽게 마음을 정리한 줄 알았고 그렇게 시간이라는 놈이 자작나무 숲을 지나고 있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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