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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y 10. 2021

입하(立夏), 그 여름 다시 태어난 인생

절기의 일기, 입하(立夏)


  시간은 무심한 척하며 계절을 바꾸어 둔다. 사실 계절은 매일 바뀌고 있었으나 먹고사는 일을 핑계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는 우리가 '벌써'라는 말을 쉽게 입에 담기 마련이다. 

  벌써 입하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시간이다. 눈이 내리는 창밖에 춘(春)을 발음해 보며 '웃기시네' 했던 기억이 무의식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창밖의 풍경에 새삼 놀란다. 

  입하는 이름에 걸맞은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여름의 시작에 '입하(立夏)가 새겨져 있다. 모든 만물이 여름에 어울리는 힘을 갖고 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절기이다. 나 역시, 15살의 입하에 완전히 다른 인격체로 태어나게 되었다. 


입하





  별 일 없이 2학년이 되었다. 늘 별 일 없이 중학생이 되고 새 학년이 되고 새 학기가 된다.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게, 반장이 되었다. 반장을 하고 싶지 않았으나, 내가 봐도 반장이 될 인물은 나뿐이었다. 공부나 성격이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나보다 반장에 적격인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반장이 되었다. 반장이 크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일어서서 '차려, 경례'를 하면 된다. 선생님이 늦게 오실 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교무실을 자주 들락날락하면 된다. 3월 말에 교실 환경미화가 귀찮긴 한데, 일주일만 신경 쓰면 된다. 


  반장이 되고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들이 나랑 말을 안 했다. 나를 보지도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잘 안 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름 때문에 출석번호 앞번호이어서 앞줄에 앉았었는데, 내 옆 옆 뒤 아이들이 다 그랬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반 아이들이 다들 나와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왜 이러지. 

  며칠 후 알게 되었다. 나의 옆과 그 옆 친구, 보영이와 수진이를 중심으로 나를 따돌리고 있었다. 실세는 수진이었다. 둘은 친했는데, 보영이는 수진이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편이었다(고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나를 보는 수진이의 표정과 눈빛이, 친구를 대하는 그것은 아니었다. 자주 위아래를 흘끗거리며, 한쪽 입술이 올라간 상태로 눈을 찡그렸다. 길거리에 냄새나는 거지가 있어서 피했다면 아마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자주 그랬다. 

  수진이는 모든 아이들과 잘 지냈다. 사실 나도 처음 며칠은 그랬다. 수진이와 잘 지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도 없이 따돌려졌다. 수진이는 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목소리도 크고 웃긴 이야기도 잘했다. 친해져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수진이의 표적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유는 알 수 없다. 수진이한테 찍혔으니, 보영이에게도 무시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영과도 친해지고 싶긴 매한가지였다. 수진이가 남자아이 같았다면, 보영이는 천생 여자였다. 좋은 향기가 났고, 글씨도 예뻤고 웃는 얼굴은 더 예뻤다. 그러니까 나는, 2학년이 되자마자 가장 친해지고 싶었던 둘에게 '왕따'를 당한 것이다. 

  며칠을 심각하게 이유를 생각했다. 나 왜 이렇게 되었지, 뭘 잘못했지, 반장이 되어서 그런 건가, 재수가 없나, 생긴 게 별로인가, 차려 경례하는 목소리가 토 나올 것 같은가, 교복을 잘못 입나, 그건 아닌데, 뭐가 문제지. 아무리 생각해도 '따'를 당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따를 당해야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2학년 되자마자부터 왕따를 당했다. 이유 없이 왕따를 당하는 건가, 이유 없이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뭐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화장실을 갔다 오다가 교실문에서 수진이와 스친 적이 있었다. 수진이가 진짜 벌레 보는 표정으로 '아씨, 더러워'라고 말한 날부터 나는 내가 왕따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유는 잘 몰랐지만, 그냥 내가 더러워서 왕따를 당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매일 씻고 아침과 저녁으로 머리를 감았다. 그래도 왕따를 벗어날 순 없었지만, 더럽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존감이 매일 검게 구겨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3월 말, 환경미화 주간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환경부 아이들 보고 주말에 나와 반장을 도우라고 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혼자 교실을 꾸미다가 오후에 나오신 선생님이랑 같이 했다. 왜 아무도 오지 않았니, 라는 질문에는 다들 일이 있대요,라고만 대답했다. 조금씩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하는 말은 수업 시작과 끝에 '차려, 경례' 뿐이었다. 차려 경례를 대여섯 번 하고 나면 하교시간이 되었다. 

 

  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지은이도 같이 왕따를 당했다. 지은이는 나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지은이는 점심시간에 둘이 같이 도시락을 먹다가 '짜증 나'하며 도시락을 덮곤 했다. 어느 날부터 지은이는 점심시간에 어디론가 갔다. 나도 도시락을 꺼낼 수는 없었다. 혼자 밥을 먹기가 싫었다. 다른 건 다 견뎌도 혼자 밥을 먹는 건 너무나도 '왕따'인 티가 나는 일이어서 그건 정말 싫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열면 와락 울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도시락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옥상에서 먹고 들어가곤 했다. 

  4월에는 수학여행을 갔다. 가기 싫었지만 가지 않으면 더 왕따 티를 내는 것 같아 다녀왔다. 사실 중학교 수학여행을 어디를 다녀왔는지 기억이 없다. 가긴 갔었는데, 나의 무의식은 내게서 '나쁜' 기억을 도려내 준 것만 같다. 무의식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수학여행에 대한 기억이 없다. 사진만 아니었으면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는지도 모를 뻔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 사진은 단체사진 두 장뿐이다. 그 두 장 모두, 반장답게 선생님 옆에서 찍었다. 웃지 않은 것 같은데, 사진에서는 조금 웃은 것처럼 나왔다.   

  수학여행을 다녀와서도 여전히 변한 건 없었다. 나는 반에서 투명한 아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차려 경례'마저 하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들이 나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학교에서 조용히 있다가 집에 오면, 집에서는 조금 발랄해야 했다. 학교에서보다는 말을 조금 더 했다. 집에서는 3월이나 4월이나 똑같았다. 학교에서는 투명한 사람으로 있다가, 집에 오면 불투명한 사람이 되는 것,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세상은 매일 똑같이 흘러갔는데, 내 마음의 색깔만 매일 바뀌었다. 반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싶은 분노에 휩싸일 땐 벌건 화염이 일었다가, 한 순간 검은 재가 되기도 했다. 밤새 울고 나면 파란 바다처럼 되기도 했다가, 아침이 되면 학교에 가기 싫어 아프고 싶었다. 집 앞 병원의 하얀색을 마음에 들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죽기로 결심했다. 수진이와 보영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내가 죽는 것이었다. 내가 죽고 나면 그들은 엄청 후회하겠지, 미안해하며 죄책감을 갖고 남은 인생을 살겠지. 어차피 학교에서도 내가 필요 없고 집에서도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데, 나 하나 없어진다고 세상이 변하는 건 없겠지. 

  어떻게 죽을지가 고민이었다. 돈이 없으니 수면제는 살 수 없다. 부엌으로 갔다. 마침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식칼이 보였다. 손목을 긋고 죽을 수는 있지만, 내가 피를 흘리며 부엌에 쓰러져 있으면 수업 마치고 온 엄마가 보고 기겁하겠지.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하겠지. 엄마가 너무 슬프겠지. 내가 죽는 건 문제 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나 때문에 슬퍼하는 건 싫었다. 그럼 이 방법도 패스. 칼 옆에 검은 봉지가 있었다. 저걸 뒤집어쓰고 죽을까. 숨 막히는 거 너무 답답할 거 같은데.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죽지 못했다. 죽지 못해 슬퍼하며 잠드니 또 아침이 왔다. 아침은 참 부지런하게도 왔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죽음을 마음에 질질 끌며 학교를 갔다. 


  어, 내 지우개 어디 갔지. 분명히 있었는데, 어딜 간 거지. 수업 시간에 없어진 지우개를 한참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디 빌릴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침 묻힌 손가락을 문질렀다. 그리고 곧 그 순간이 왔다,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 

  권순임. 이 이름 역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순임이는 그런 나를 보고 있었다. 차마 말을 할 수는 없고, 조용히 나에게 내밀었다. 새끼손톱만 한 지우개였다. 자기 지우개를 잘라 준 것이었는데, 거기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힘내.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눈물이 그칠 때까지 세수를 하려 했는데, 눈물이 그치지 않아서 난감했다. 계속 세수를 했다. 소리 내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세수는 계속했다. 빨개진 눈을 보며, 내가 나에게 말했다. 힘내. 거의 두 달을 매일 살아나갈 힘,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것들을 내게서 빼내며 살고 있었는데, 그 텅 빈 마음자리 어디선가 '힘'이 나고 있었다. 힘내,를 몇 번 더 웅얼거리다가 교실로 돌아왔다. 순임이의 뒷모습은 계속 그 자리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힘내'라고 적힌 지우개도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집에 오면서 나는 힘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순임이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힘을 내어 다시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살아보기. 어제까지는 죽이거나 죽을 생각만 했는데, 다시 살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살려면,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살면 안 되었다. 지금까지의 삶을 생각했다. 

  작은 산골에서 반장이나 부반장을 쉽게 하며 쉽게 살았다. 나는 늘 중심에 있었다. 친구들도 늘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성적도 원하는 대로 원하는 점수를 얻었다. 어려운 것 없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과 엄마 아빠는 늘 칭찬해 주었다. 미술, 독서왕, 과학경시, 영어,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다 잘 해내었다.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모두들 나를 보며 웃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조차 쉬웠다. 

  그래서, 기고만장했다. 고작 15살 주제 사는 게 쉬웠고 사는 게 내 맘대로 될 수 있었다. 이게 내가 지금 왕따를 당하는 이유였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까지 미치자 이제 이유를 찾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다 필요 없고, 나는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무조건, 착한 사람. 무조건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 

  그제야 나는 수진이와 보영이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들은 내 인생을 망치는 나쁜 년들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금 가혹하긴 했지만, 나를 완전히 새로운 인격체로 만들어준 스승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검사받고 싶어 졌다. 나 이 정도로 착하면 되겠니. 

  마음이, 내면이 완전히 뒤바뀌었는데, 나의 겉모습은 그대로인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세일러문처럼 배경음악이 깔리고 옷도 머리도 다 바뀌어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데, 사람들 눈에는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였다. 어제의 나는 죽고, 오늘의 나는 전혀 새로운 사람인데! 

  어쩔 수 없었다. 행동으로 보여야 했다. 그런데, 착한 사람의 행동은 원래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처음 며칠은 그게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러다가 '억울함'도 착한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무심(無心)'이었다. 그냥 모든 면에서 착해지기로 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교실 앞뒤를 쓸고 칠판을 깨끗이 닦고 내 옆 옆 뒤 책상 밑도 깨끗하게 했다. 아이들 지우개나 펜이 떨어지면 주워주는 대신, 더러워할까 봐 꼭 휴지로 닦아서 줬다. 어차피 투명인간인 이상, 제대로 투명해 보자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진짜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투명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투명함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매일 '착한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만 갖고 학교를 오갔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설거지를 했다. 내 방 청소는 내가 했다. 엄마 아빠에게 의식적으로 존댓말을 하려 했다. 미용학원 계단도 쓸기 시작했다. 엄마 책상과 강사 책상을 닦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착한 일을 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착한 사람이 할법한 일을 찾아 했다. 더러우니까 깨끗해져야 했고, 이기적이고 나밖에 몰랐으니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잠이 들 때마다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어제보다 더 착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좋고 싫은 감정은 물론, 분노나 억울함 같은 기분이 끼어들 새가 없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했기에 모든 순간 너무나도 바빴다. 


  5월이 되었다. 나는 왕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건 일종의 '관문'이었다. 나라는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고, 반드시 거쳐야 할 시간이었다. 묵묵히 견뎌내야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면 조금 서글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조금씩 착해지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보영이랑 짝이 된 지 3일째였다. 필기를 하던 보영이가 펜 색을 바꾸려다가 떨어뜨렸다. 주워서 휴지로 닦아 주었다. 보영이가 내 눈을 보고 '고마워'라고 했다. 너무 놀라서 '어'라고 하지도 못했다.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보영이 손 안의 펜만 보고 있었다. 보영이가 내 표정을 보더니, '글씨 이쁘지' 하며 웃었다. 글씨만큼 웃는 얼굴도 예뻤다. 

  쉬는 시간이 되자 수진이와 아이들이 몰려와서는 같이 매점에 가자고 했다. 순임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죽지 않길 잘했다, 착한 사람이 되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점 옆 나뭇잎의 초록이 짙어지고 있었다. 입하에 어울리는 초록이었다. 






  '스쿨 미투'라는 제목으로 폭로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들의 얼굴이 미디어에 보이면, 나는 그들보다 피해자의 얼굴을 더 궁금해한다. 그들은 어떤 얼굴과 어떤 표정으로 살아왔을까. 지금은 잘 살아가고 있을까. 평생을 그들에 대한 분노를 머금고 지내왔을까. 구겨진 자존감을 펴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과 큰 힘이 필요했을까. 저들을 자기 생에서 지우고 그 자리에 행복만 남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그저 어둠 같은 그들의 얼굴과 마음을 혼자 더듬어보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별 거 아닌, 흔하디 흔한 왕따 이야기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만한 이야기이다. 폭력도 없고 폭언도 없었다. '쟤랑 말하지 마'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을 꾹꾹 밟고 지나와야 했다. 모든 걸음에 내 못난 마음을 벗어내야 했다. 이기적이고 내 중심적인 사고를 뒤집어야 했다. 교만 가득한 눈빛과 표정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완전히 새로운 마음을 심고 나서야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시절 2학년 5반 친구들은, 나라는 인간을 개조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스승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는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 힘들다. 가능하다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과하여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이 빚는 대로 몸과 영혼을 맞긴 덕분에 '착한 사람'의 마음을 가져볼 수 있었다.


  세월을 핑계로, 세월 뒤에 숨어 고백해야겠다. 세월 때문에 지금의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착한 사람의 마음을 키우고 넓히고 가꾸려 하였으나 세상은 틈만 나면 마음에 균열을 더했다. 착한 마음이 갈라지고 부스러지고 때가 묻어도, 손 쓸 여유 없이 일이 주어졌고 피로해졌다.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핑계다. 그래도 여전히 착한 마음의 잔재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어느 상황에서든 타인의 입장에 먼저 서보게 된다. 그래서 나보다는 그의 마음에서 일을 바라보고 처리하게 된다. 때로는 손해 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손해는 '감사'로 탈바꿈하여 돌아오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름의 입구에서, '착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다짐을 다시 들추어 본다. 사춘기의 밑바닥에 퍼져 있었던 다짐을, 엄마가 되어 마음 바닥에 다시 깔아 본다. 인생의 계절은 나를 '벌써' 엄마로 만들었고, 지금의 나는 '착한 엄마'로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착한 엄마가 되기에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초록이 창 밖에 펼쳐져 있다.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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