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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pr 30. 2021

곡우(穀雨), 다음 생엔 예쁜 여자로 태어나 사랑받으렴

절기의 일기, 곡우(穀雨)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의 곡우(穀雨).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로 봄의 마지막 시절이다. 비로 땅을 충만하게 적셔 모든 곡식이 자라나게 하는 것처럼, 우리 가족을 사랑으로 듬뿍 적셔 준 존재를 기록으로 남겨 두려 한다. 우리 가족의 유일한 반려견, '또또'의 이야기이다.


곡우





  정말이지 그런 강아지는 처음 보았다. 집 근처 몇몇 동물병원을 다니면서 유기견들을 꽤 많이 보았지만, 그런 강아지는 없었다. 다른 강아지들은 거의 사람과 눈을 안 마주치려 하거나 안아도 고개를 푹 숙인다거나 긴장하여 발발 떨기만 했다. 이 강아지는 케이지 잠금장치를 풀자마자 남편의 품으로 폭 뛰어들더니 쏙 파고들었다. 제발 데려가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았다. 너무 크지도 않고 귀여운 외모도 맘에 들었다. 남편도 나도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중성화 수술도 했다 하고 나이도 많지 않고 단 접종은 맞추어야 한다는 수의사의 말을 듣고는 데리고 왔다. 



  결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엄마는 '시집보내고 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는 말을 이틀에 한 번씩 나에게 했지만, 그런 엄마의 속마음도 모르고 남편은 '장모님 딸 보내고 허전해서 어쩌시지'라고 걱정이었다.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이미 장모님 걱정이 하늘을 찌르는 남편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 줄 강아지를 안겨드리자며 나를 끌고 동물병원 투어를 다닌 것이다. '엄마는 강아지 키우는 거 안 좋아하는데...'싶으면서도, '적당한 강아지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라는 마음으로 따라나선 지 며칠 안 되어 적당한 강아지를 구한 것이다. 이 놈이 먼저 우리에게 뛰어들었는데, 우리도 괜찮다 싶으니 더 생각할 건 없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무릎 위 강아지를 찬찬히 보았다. 녀석의 눈을 보고 있자니, '똘망똘망, 똘똘' 이러다가 '또또'가 자연스레 입에서 나왔다. 그래, 너 이제부터 또또다. 갑자기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날 저녁, 남편 친구 집에 초대받았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여서, 아이를 키우는 남편 친구 집에 데리고 갔다. 이 녀석, 아까 그 녀석이 아니다. 다섯 살, 세 살 남편 친구 딸들을 보고는 이빨을 드러내며 가르랑거린다. 어쭈. 아까 그 점프와 눈빛과 애교는 뭐지. 지금 이 위협의 표정과 자세는 또 뭐지. 그 순간부터 친구 집 모임이 끝날 때까지 강아지는 작은 방에서 나올 수 없었다.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며 온 몸에 힘을 주고 노려 보았다. 이빨을 보이며 크릉크릉거렸다. 짧은 꼬리도 바짝 선 것 같았다. 이것저것 넣어 대충 비벼 준 밥도, 물도 먹지 않았다. 다시 동물병원에 갖다 주기에는 밤이 늦었다. 그냥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생각해야지, 하고는 밖의 어둠에 맞춰 집의 불을 껐다. 

  밖과 집 안이 서로 색을 맞추는 밤과 새벽 내내, 강아지는 발톱 소리를 다그닥 다그닥 내며 돌아다녔다. 내 곁에 왔다가 문을 벅벅 긁었다가 저 구석 쪽에서 소리를 내었다가 한참을 조용하다가 내 머리 맡을 지나가곤 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아침에 보니, 이곳저곳에 '쉬'가 마른 흔적 또는 '쉬'가 있었다.

  "야!"

  하면 작은 강아지는 또 그만큼 작은 이빨을 드러내며 가르릉 거렸다. 하아, 이 녀석을 엄마를 줘도 되나,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동안 주말은 와버렸다. 


  결혼하고 엄마 아빠가 처음으로 나의 신혼집에 온 날이었다. 11평 작은 투룸 빌라를 한 번 둘러보기도 전에, 작은 강아지가 엄마 아빠를 맞았다.

  "엄마 아빠 선물이야. 나라고 생각하고 키워. 이름은 또또야. 내가 지었어."

  꽤 책임감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작은 생명은 나와 이틀을 보냈고, 이제는 엄마 아빠 손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동물병원의 작은 케이지로 돌아가야 하고, 언제 어디서 어떤 주사를 맞아야 하는 운명이 될지 모른다. 

  "야, 주지 마. 나는 개 못 키워."

  역시나 기대한 반응이었다. 아, 몰라, 이제는 엄마 강아지니까 엄마가 알아서 해. 대충 얼버무렸다. 엄마가 개를 안 좋아하는 걸 알기에 더 미안해졌다. 생명을 이렇게 막 떠넘겨도 되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곧 식당 예약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가 밥을 먹고 오는 동안, 또또는 오도카니 집에 혼자 있었다. 엄마는 식사 내내 '강아지 못 키우는데...'라고 중얼거렸지만, 개를 좋아하는 남편은 연신 웃으며 '진샤라고 생각하고 이쁘게 키워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엄마에게 짐을 넘긴 기분이었다. 그날 또또는 엄마의 무릎 위에 올라 내 곁을 떠났다. 






  얼마간은 엄마에게 불평의 문자를 받아야 했다. 

  오줌도 못 가려서 여기저기 싸놓는다, 밥도 잘 안 먹는다, 쬐매한게 눈치만 본다, 짖지도 않는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냄새난다, 여기저기 개털이다. 

  역시, 괜히 줬어.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던 동생과 아빠는 예뻐하는 눈치였지만, 실질적인 보호자인 엄마에겐 시간이 더 필요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엄마 문자의 느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또또가 참 얌전하다, 이렇게 조용한 강아지는 없지 싶다, 천성이 고운 아이라 잘 가르치면 됐을 걸 내가 폰에서 본대로만 하느라 신문지로 팍팍 때리고 소리 지르면서 배변 훈련을 해서 애한테 겁만 줬다, 요새는 배변판에만 잘 싼다. 밥도 잘 먹는다. 이렇게 이쁜 강아지는 또 없다.

  어느새 엄마는 애견인이 되었다. 강아지 물품은 아낌없이 사고 산책을 가도 꼭 또또를 안고 나갔다. 길거리에 강아지와 함께 다니는 사람들 보면 어김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사람들이 또또만 보면 이쁘다고 난리다' 목소리가 늘 들떠 있었다. 엄마가 지하철을 타고 귀가할 때면 아빠는 또또와 지하철역에 마중을 나갔다. 또또는 멀리서도 엄마를 알아보고 반겼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또또의 이전 집과 이전 주인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얘가 버려진 건 아닌 것 같아. 엄청 사랑받고 엄청 귀하게 컸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성격이야. 조용하고 애교도 있고 사랑을 원하기도 하고. 갑자기 길을 잃었다거나 무슨 사정으로 주인이랑 떨어진 거지, 절대 버려질 아이는 아니야. 어쩌다 동물병원까지 가서 고생을 했노. 아기 키우는 거랑 똑같애. 사랑해 주면 그만큼 자기도 우리한테 사랑을 준다. 이제라도 이렇게 왔으니 많이 사랑해줘야지. 

  나 역시 가끔 친정을 가면, 처음과는 달리 마음이 좋았다. 또또가 잔뜩 사랑받고 있는 게 보였다. 또또를 주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첫아이를 갖고 나서는 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아이와 또또가 함께 노는 상상을 했다. 또또만큼 작은 내 아이 옆에 또또가 누워 자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예뻤다. 내 아이의 들숨날숨 옆에, 또또의 나지막한 코 고는 소리가 겹쳐지는 생각을 하며 태교를 했다. 또또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아야지,라고 생각했다. 



  "또또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아주 할머니야. 다리 휜 게 나이 들어서 그런 거야. 너네 처음 데리고 올 때부터 할매였단다."

  처음 동물병원 수의사가 잘못 알고 말해준 것이었다. 출산예정일이 5월 말인데, 10월 임신 초기에 들은 엄마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의 아이와 또또가 함께 할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뜻이었다. 슬펐다. 나의 아이는 또또를 기억도 못하겠네. 또또는 우리 아이 냄새만 킁킁 맡아보겠네. 또또와 내 아이가 같이 놀 시간이 많지 않겠네. 


  나의 배가 커질수록 또또는 기력이 없어졌다. 친정집에 갈 때마다, 처음에만 반기고는 줄곧 같은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가끔 깜빡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런 또또를 보며 '저렇게 생의 마지막에 있는 동물을 보는 건 태교에 안 좋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한편으론 그런 또또를 끌어 일부러 곁에 두기도 했다. 자꾸 기운 없어하는 또또를 곁에 둘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 또또는 잠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다시 엎드려 눈을 감았다. 처음 내 무릎에 앉았을 때처럼 따뜻했다. 



  5월 말이면 아기가 나오는데, 아직 4월 초인데 엄마는 자꾸 슬픈 이야기를 한다. 

  또또가 한쪽 눈이 가라앉는다, 잘 걷지 못하고 자꾸 쓰러진다, 넘어진다, 병원에서는 뇌병변이란다, 나이 들어서 그렇단다, 자기 똥에도 쓰러져 못 일어나고는 미안해한다, 우짜노. 

  전화기 저 쪽 엄마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의 눈물이 그득했다. 나도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와중에 '이런 이야기는 태교에 좋지 않은데'라고 생각했다. 두 번의 유산 후 온 아이여서 '죽음'이나 '늙어가는 것'에 대한 것은 최대한 멀리하고 싶었다. 또또도 그렇게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얼마 후,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얘기 안 하드나? 아이고, 엄마 또또 보내주러 갔다. 인천에 무슨 강아지 안락사하는 데 그런 데 갔다. 또또 잘 못 먹고 밤에도 계속 힘들어하는 거 보더니 고민 많이 하고 간다 카드라."


말로만 듣던 안락사!
얼핏 듣기엔 너무나 환자의 입장에 선 듯한, 그래서 느낌이 아주 그럴싸한 이 방법은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단어였음을 병원에서 진행되는 절차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건 '安樂'이라는 낱말이 품고 있는 이미지와는 별개인 그냥 '무의식사'였을 뿐이었다. 수면마취제 주사 후, 영원으로의 진행을 위한 이차적인 주사 행위까지가 이때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일명 '안락사'의 전 과정이었던 것이다. 불과 1-2분 정도의 소요시간. 
이렇게 해서 나는 내 사랑 또또를, 내게서부터 영원의 세상으로 떠나보내야만 했었다.

- 엄마의 블로그에서 


  또또와 엄마에게 미안해서 한참을 울었다. 태교고 뭐고 엉엉 울었다. 좀 더 또또를 봐 두어야 했다. 또또를 키우며 진짜 뜨겁게 사랑하는 게 뭔지 배웠다는 엄마를 봐야 했다. 따뜻한 또또를 데리고 가서, 텅 빈 무릎을 보며 돌아오는 엄마를 생각했다. 눈물이 쉬이 그치지 않았다. 곡우를 며칠 지난날이었다. 


  엄마에게 톡을 보내고 두 시간 후쯤 기다리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와 엄마는 여전히 울음이 잔뜩 남아있는 목소리였다. 다른 말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마의 이 한 마디는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다.

"고운 심성을 가진 또또야. 다음 생에는 예쁜 여자로 태어나 사랑 많이 받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라."


 

 

 




  또또가 떠나고 한 달 후 태어난 첫째는 일곱 살이 되었다. 가끔 엄마 폰의 강아지를 보면 '귀여워' 하고 소리 지른다. 엄마, 나도 이 강아지 키우고 싶어요. 그럴 때마다 대답해 준다. ㅇㅇ아,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 집에서 키웠어. 인사해 봐, 또또야, 잘 지내니? 


  매년 4월의 끝자락이면 아련하게 떠오른다. 어울리지 않게 드러냈던 이빨, 탁탁 발톱 소리 내며 걷는 작은 엉덩이, 동그랗게 말고 자는 갈색 등과 코릉코릉 소리가 났던 검은 코. 모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의 마음이 그러하듯, 우리에게 '가족'이었던 존재가 시절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강아지 냄새가 곡우의 비 속에서 전해오는 듯하다.




*절기 설명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조하였습니다.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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