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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l 08. 2021

소리 없는, 흔들리는

작당모의(作黨謨議) 2차 문제(文題) :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매거진 발행작가: 진샤(https://brunch.co.kr/@1kmhkmh1/151)



   기어코 내던지고야 말았어요. 보란 듯이 분리된 본체와 배터리.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다른 집은 치약과 양말이라는데, 우리 집은 핸드폰이구나.

   "받지도 않을 전화 왜 갖고 있어요?"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어요. 전화 몇 번 못 받았다고, 그게 이렇게나 화날 일인가. 저는 상황 파악에만도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내가 전화를 안 받았다고, 내 폰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거지, 지금? 결혼 한 달 만에? 어? 그깟 폰이 뭐라고?

   "전화 몇 번 못 받을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화가 나요?"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 그럼 전화기 왜 갖고 있어요? 전화가 울리면 받는 거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와, 존경한다더니 이제 막 말하네. 내가 하다 하다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눈물이 흐르기 전에, 더 이상의 대꾸 없이 옆 방으로 가 버렸어요. 내 분노의 크기를 보여주려 일부러 문도 '쾅' 닫고.

 

   쾅!

 

   어쭈, 더 큰 소리로 화답하는 현관문 소리가 바로 들려왔어요. 에라이, 될 대로 돼라. 불 끄고 어둠 속에 몸을 웅크렸어요. 

   우리 부부의 첫 싸움이었어요.







   결혼 직전까지 제 폰은 거의 무음 상태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요. 가끔 꼭 받아야 하는 전화나 메시지를 기다릴 땐 진동 모드였어요. 기다리는 전화나 메시지 후엔 바로 '무음'. 소음으로 간주되는 소리에 취약한 사람의 나름의 선택이에요. 소리 없는 핸드폰의 소유자.

   혼자 있는 주말은 폰을 꺼두는 경우도 꽤 많았어요. 도서관, 미술관, 영화관이 주 출몰지이다 보니, 그 어떤 알람도 허용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좋았어요. 그곳에만 집중하고 그곳에만 빠져들고, 세상과의 연결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공간들. 그래서 일부러 더 찾았는지도 몰라요.

   평소에도 제 폰은 늘 '뒷면 무음' 모드예요. 알람이 와서 화면이 반짝거리는 것마저 거슬려요. 뒷면만 보이도록 해 두었다가, 제가 원하는 때에만 정면을 허락하는 거죠. 부재중 전화, 알람 그중에도 선택해요. 보고 싶은 정보만, 다시 걸고 싶은 전화만.

   저 작은 네모가, 제 조용한 일상을 방해하는 것이 극도로 싫었어요. 소리나 진동도 허락지 않고, 무조건 뒷모습만. 정보는 취사선택. 대신 자주 확인. 그래도 크게 문제없는 삶이었어요. 가끔 친구들이 '전화 좀 받아' 하는 정도가 다였고, '미안해, 폰이 무음이야' 하면 끝이었어요. 친구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했지만, 더 이상의 군말은 없었어요. 하긴, 진샤 원래 폰 잘 안 보니까. 폰보다는 내 시간에 집중하는 것을 중시하며 살다가, 덜컥 결혼을 했어요.


   남편은 사실상 스무 살부터 군인으로 살아온 사람이에요. 군인들 사이에서 별명이 '참군인'이에요. '바른생활'이나 '도덕'같은 교과서는, 남편의 생활을 찍은 영상으로 대체되어도 충분할 거예요. 태생이 바르고 성실하며 원리원칙주의자인 사람이 '군인'의 길을 걸어왔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입만 아니 손만 아픈 수준이지요.

   스마트폰 이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스마트폰 이후 군인들의 생활은 더더욱 폰에 의지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인접 부대 또는 인접 병과와의 협력에 폰은 필수, 위아래 지시 상황에 즉답하기 위해 폰은 필수, 주말에도 각종 대기 상황 확인하기 위해 폰은 필수, 당직 시에도 긴급 연락을 위해 폰은 필수. 그의 폰이 무음이나 진동 상태인 것은 '상명하복'에 불종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당직을 하고 다음날 일찍 들어와도 늘 폰은 알람 소리 최대로 머리맡에 두고 자야 했어요. 씻을 때도 연락에 즉각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 소리 상태로 문 앞에 두고 씻어요. 명절에 가족 예배를 지낼 때도 전화기를 옆에 두고 있다가 '충성'이나 '단결', '승진'을 외쳐야 하는 사람이에요. 어느 설에는 떡국을 먹다가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숟가락을 들고나간 적도 있어요. 그것이 남편의 직업이고 일이에요. 모든 알람과 모든 소리와 모든 부름에 즉각 응답하는 삶을 10년 훌쩍 넘게 살다가, 덜컥 결혼을 했어요.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우리 부부의 결혼에서 '핸드폰'이 그랬어요. 어떤 문제도 사랑으로 헤쳐 나가며 지낼 줄 알았던 신혼생활에, '전화와 메시지'가 문제가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반드시 모든 전화를 받고 모든 메시지에 답해야 하는 사람과, 전화나 메시지 따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한 날 한 시에 같이 살게 된 거였어요.

 


  저도 전화를 아주 안 받은 건 아니에요. 어쩌다 폰을 보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 오면 받았어요.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뭐 하고 있냐, 밥은 먹었냐, 뭐 먹었냐, 문은 잠겨 있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해도 될 대화'를 남편은 엄중한 목소리로 하고 있었어요. 뭐, 사랑하니까, 이게 다 사랑의 힘이지.

   그런데 어쩌죠. 저는 남편이 뭘 하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뭐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았거든요. 일하고 있을 테고 간부식당에서 밥을 먹었을 테고 반찬은 알아서 나왔을 테고(게다가 그건 내가 한 것보다 훠어어어얼씬 더 맛있을 테고!). 필요도 없는 전화를 안 받았다고 저렇게나 화를 낸 거란 말이지. 생각할수록 속이 상해서 이불을 확 뒤집어써 버렸어요.

   실은 저도, 결혼하고 남편 폰 때문에 짜증이 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전화나 메시지 알람 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거든요. 소리 좀 줄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는 표정이라 더욱 화가 났어요. 몰래 무음으로 해 놨다가 '전화 온 거 못 받지 않았냐'며 혼난 적도 있었어요. 못 받았음 다시 걸면 되지, 그게 힘든 일인가.

   남편도 제 폰 때문에 짜증 낸 적이 꽤 있긴 하네요.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재주가 뛰어난 저 덕분에 자주 제 폰을 함께 찾아야 했어요. 전화를 찾으려 저한테 전화를 100번을 걸어도 절대 찾을 수가 없는 마눌의 폰. 무음이라 울리기는커녕 '나 찾아봐라' 더 약 올리는 기분이 들어서였겠지요. '제발 폰 소리 나게 해 두라고' 말해도 마누라는 성의 없이 '네, 얼른 찾아봐요'라고만 하니, 성질이 날만도 했겠어요.






   불이 켜졌어요. 갑자기 눈이 부셨어요. 밖에 나간 남편이 소리도 없이 -마치 제 핸드폰처럼- 들어온 거예요. 깜빡 잠이 든 내가 눈도 못 뜨고 있는데,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내가 미안해요. 그런데, 앞으로는 전화 좀 받아요."

   사과는 고마운데, 여전히 자기 할 말. 흠. 그렇다면, 나도 똑같이.

   "고마워요. 저도 앞으로 전화 잘 받으려 노력할게요. 그런데 못 받을 수도 있어요. 제가 핸드폰 소리 울리는 걸 싫어해서요. 이해해 주세요."

   어쩜 이리도 평행선인지. 이래서 부부는 맞춰지는 게 아니라, 누구 한쪽이 참으며 산다는 건가.



   다음날, 저는 남편 전화와 남편 톡만 '진동'으로 설정했어요. 제 폰이 남편에게만 민감하게, 남편에게만 흔들리게. 역시나 점심시간 즈음이 되자, 폰이 드르르르 하고 떨리기 시작했어요. 고놈, 남편 맞춤이구만.

   "어? 웬일로 전화를 다 받아요? 안 받을 줄 알고 끊으려 했더니?"

   "그르게요. 전화기 주인이 남편님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남편님 전화에만 반응을 하네요, 세상에."

   그러고는 역시나 별 재미없는 대화가 이어졌어요. 밥은 먹었냐, 뭐 먹었냐, 뭐 하고 있었냐. 어제 먹다 남은 치킨 먹었다, 빨래 널고 지난주 못 본 무한도전 재방 보고 있었다. 아, 문은 잠겨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티브이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왜 이렇게 안 궁금해해도 될 걸 매일 부지런하게도 궁금해하는 거지. 나는 미안할 정도로 안 궁금한데, 왜 늘 궁금해하며 전화하는 거지. 의문을 갖자 답은 쉽게 나왔어요.

   사랑 보고. 하나뿐인 마누라의 일상을 보고받아야 하는 군인의 사랑 정신. 마트에 심부름을 시켜도 '요청한 품목들 구매 완료'로 메시지 보내 보고하고, 서울 나들이라도 갈라 치면 '현재 지하철 역 위치 보고 바람'하는, 보고하고 받는 게 일상인 사람을 남편으로 둔 제가 껴안아야 하는 정신이었어요. 처음엔 기분이 조금 나빴어요. 뭐야, 날 병사급으로 보는 건가, 나 쫄병 된 건가, 흠, 갓 입소한 훈련병?

   마누라의 현재 상황과 상태를 늘 확인해야 하는, 마누라의 일상이 신경 쓰이는 사랑의 마음과 군인으로서의 직업 정신이 합쳐진 점심 상황 보고 전화였던 거예요. 풉. 귀여우신 소령님. 그런 상황보고가 필요했으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저녁에 들어온 남편이 씻으러 간 사이, 핸드폰 진동이 울려요. 어라? 남편은 씻는 중인데? 진동의 주인은, 남편 핸드폰이었어요. 김 XX 상사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는데 끊어졌어요,라고 씻고 나온 남편에게 폰을 쥐어줬어요.

   "뭐야, 언제부터 폰이 진동 모드인 거예요?"

   "오늘부터요, 마누라 안 울리려고!"


   진동으로 동(動)한, 우리 부부 신혼의 어느 날이었어요.








   핸드폰 투척 사건 이후 8년이 지났어요. 핸드폰에서 음악 소리나 유튜브 재생 소리는 날 수 있어도, 그 외에는 우리 부부의 폰은 무조건 진동이에요. 그날 이후 우리의 폰은 수없이 진동하고 흔들려 왔고, 우리 역시 끊임없이 진동하고 때론 폰과 다르게 소리 나고 울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흔들리고 울린 횟수만큼 더 안정되고 단단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렇게 부부는 천천히 서로 맞춰가는 건가 봐요, 누구 한쪽이 참는 게 아니라.


   위와 같은 이유로, 우리 집에서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어요. 그건 바로,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jakdang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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