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의 정서 < 밤이 쓴 시 1 >
시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이즈음에 시가 와줬으면 좋겠다, 할 때가 있어요. 그건 한낮이 비껴간, 그림자도 태양도 영혼도 비스듬해지는 늦은 오후, 아마 세 시 즈음일 거예요. 정신과 육체와 노동과 그리하여 일과와 성취가 교만해지는 시간.
세 시, 시는 세계를 투명하게 통과해 버려요. 어딘가는 있을 텐데, 누군가의 귀에 찬란한 문구를 남기고 있을 텐데, 저에게는 어느 바람처럼 통과해버려요. 저는 무색무취의 통과를, 내게 어떤 시상도 남기지 않는 시를 증오하며 함부로 내뱉어요. 시 따위, 그깟 시 따위.
밤이 저의 공상을 간지럽혀 잠들지 못할 때, 시는 예의 그 투명한 바람을 타고 와요. 그러나, 배경은 밤. 나의 눈과 영혼과 정신이 시를 알아채요. 그건 아마, 검은 세 시 즈음일 거예요.
과거와 오후에 미혹되었던 문장 사이에서 공상과 망상을 더하는 나에게, 그러니까, 영혼이 시에 적절해진 시간에 시는 찾아와요. 어느덧 발가벗은 영혼, 시는 천천히 훑어요. 나의 적나라한 영혼을, 수치가 들끓었던 과거를, 그 속에서 엷은 미소를 띠며 분노를 눌러왔던 하찮았던 나를.
과거에 사랑했던 이름들이 나를 비껴가요, 표정들은 변함이 없어요. 아련하고 가련하구나, 너 같은 아이가 감히 나를 사랑하다니. 나를 찾아온 시구를 붙잡고 그에게 속삭여요. 괜찮아, 나에겐 시가 있으니 복수는 이거로 대신할게.
시는 그렇게 조금씩, 악독하고 악랄해져요. 그렇게 악마의 맛이 나요, 시와 영혼과 정신과 기어코 육체의 어디에선가. 그렇다면 밤의 숨을 들이쉬는 코였으면 좋겠어요.
할 일을 다한 시는 숨소리와 기포, 바람처럼 무색무취가 되어 세계 속으로 회귀해요. 시가 빠져나간 나에게 남은 감정이, 시로부터 나온 것인지 나로부터 나온 것인지 헷갈려요. 괜찮아요, 과거의 이름들은 건조해졌고 그것을 채우는 건, 잉여의 감정뿐이니까요.
세계에서 오직 나와 시만 알고 있는, 검고 투명한 복수가 완성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