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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한 꿈이 헐벗은 욕망 위에 사정한다

베개의 사정 < 밤이 쓴 시 2 >

by 진샤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진다는 사람, 그들의 잠을 훔쳐오고 싶어요.

이것 봐요, 지금도 공상 중이에요.


나의 밤은 나의 공상과 망상에 이긴 적이 없어요. 베개에 머리는 대는 순간, 공상과 망상은 눈을 떠요. 공상과 망상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과거 속에서 날뛰어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 어느 지점에 콕콕 박혀 있던 이름들이 공상과 망상의 호출에 대답해요.

시가 되었다면 좋았을 이름들이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시가 아닌 유령으로 변해 있어요. 그 여름 함께 들이켰던 맥주 거품처럼 사라져요. 거품은 사라지지만 온도는 남아요. 손은 여름처럼 뜨겁고 무의식은 온도를 시간과 함께 그대로 얼려 놓았어요. 손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자세로 이별을 고했고 그 이름을 부르며, 부르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러나 나의 배경은 밤. 어둠과 베개와 침묵만이 존재해요. 비명은 침묵 안에서 즉사해야 하고, 혼은 공상과 망상 속으로 날아올라야 해요.


다행이에요. 잠이 오고 있어요. 잠의 체중은 밤보다 무거워요. 어느덧 잘 자라 청년의 몸피를 가진 망상이라 해도 잠을 이길 수는 없어요. 그렇게 잠이 내 몸을 덮치는 순간, 몽상은 귀신같이 꿈으로 변태 해요. 의식의 가장 아래에서 찰랑거리던 욕망들을 건드려요. 얼른 일어나, 우리 뭐부터 할까, 내 볼을 쓰다듬었던 그 여름부터 벗겨볼까.


잠에서 깨어나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요. 밤과의 고독한 투쟁에서 매일 패배하고 돌아오거든요.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시나요.

오늘의 잠 조금만

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김소월 '초혼(招魂)'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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