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소란
처음엔 불면을 그저 당혹스러워하기만 했어요. 밤의 어둠은 정지해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귀 옆에서, 눈앞에서 계속 흘러가요. 그 밤결을, 잠결을 느끼며 잠이 들어야 하는데, 그 밤결과 잠결 덕분에 더욱 또렷해져요. 밤의 어둠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느끼고 잡아보아요. 그러느라 더 잠들지 못하는 거예요.
지금은 불면을 꽤나 즐기고 있어요. 다음 날 낮의 후회는 한결같이 두텁지만, 그건 다음날의 일이에요. 중요한 건 지금 불면이 함께 하는 밤의 시간이에요.
눈을 뜨고 어둠의 명도를 감상해요. 창문에 가까운 어둠의 측면은 아무래도 순결하지 못해요. 나를 정면에서 똑바로 바라보는 어둠만이, 암흑을 잡아먹을 정도로 검은 두 눈을 부라리고 있어요.
어둠에 압도되어 꼼짝도 하지 못한 상태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귀를 열게 돼요. 밤은 많은 소리를 자신의 내장에서 꺼내놓아요. 바로 위층의 물 내리는 소리와 동시에 어렴풋한 공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요. 702호가 그저께 조리원에서 왔다던데. 변기 소리와 아이 울음소리가 하나가 돼요. 생각보다 잘 어울려요. 그들 각자의 사정이 하나가 되는 순간, 절정이 벼락같이 지나고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어요. 각자의 잠에 빠져들어요.
밤은, 무생물이라 생각한 것들을 생물로 변신시켜요. 시계는 이중인격이었어요. 사람들이 깨어 있는 낮에는 아무 소리 안 내더니, 밤만 되면 초침이 시끄러워져요. 시간을 잡아먹는 소리예요. 시계가 시간을 덮치는 순간을 목격할 수는 없지만 - 어둠이 현장을 가렸으니까요 -, 대신 소리를 들었으니 증인이 될 수 있어요. 벽이 소리를 내는 사실은 밤에만 확인할 수 있어요. 벽은 이따금씩 박수를 쩍, 쩍 쳐요. 혼자서요.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냉장고는 엄마 같아요. 주기적으로 자신 안의 것들을 돌보고 살피고 아껴요. 모두가 잠들었을 때 혼자 깨어나 힘을 내요. 가끔 자신의 모성을 감당하지 못해 울부짖는 소리를 토해내요.
이 모든 소란에 집중하다 보면, 불면 곁에 어느새 공상이나 몽상같은 것들이 조용히 자리 잡고 앉아있는 걸 알아차리게 돼요. 회상이나 상상 같은 것들도 옆에 같이 있어요. 그와의 이별을 왜 하필 한낮에 했을까, 밤에 했다면 이별의 박동이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물을 엎지 않았더라면, 그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어, 한 번만 더 이름을 불러볼걸,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더라면, 그날 마지막 지하철이 늦게 출발했다면, 그래서 나의 고민이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생각의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잊었던 나의 의무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와요. 잠. 잠을 자야 해. 하지만 이미 잠은 타인의 소유예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잠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래, 나는 밤에게 선택받은 거야. 그러고는 다시 밤을 응시하고 밤의 소리를 듣고 공상과 몽상과 회상과 동그랗게 앉아 수다를 떨게 되는 거예요.
창문 사이로 밤의 적이 몰래 침입해요. 새벽. 새벽 또한 밤에 견줄 정도로 소란스러워요. 오토바이 소리가 그어놓은 밤과 새벽의 경계선으로 아침이 몰려와요. 새 소리나 쓰레기차 아저씨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불면은 이별을 고할 준비를 해요.
밤은 그때, 어둠과의 사이에서 잉태한 시를 급하게 낳아요. 다행히 순산이에요. 제가 내보이는 시의 대부분은 밤이 낳아 준 거예요. 시어들은 어둠의 젖을 빨고 자라나요. 은유와 비유, 추상과 메타포가 시의 영양분이 되어요.
이제 나의 시는, 태양을 베고 한 숨 잘 거예요. 밤새도록 함께 한 소란을 곁에 뉘이고 세상이 밝아오는 소리를 자장가 삼고서. 시의 아침이 고요한 까닭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