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남편이 혹한기 훈련을 간다고 말하면 아직도 적응이 안 되요. '사실상' 전쟁이 없는 시대에 살면서 이 추운데 땅 속에서 자면서 몸 다쳐 가면서 굳이 훈련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에요. 못 먹고 못 자면서 오들오들 떨면서 꼭 훈련을 해야 할까. 네, 맞아요. 이건 언제까지나 남편의 안위가 걱정되는 가족의 투정일 뿐이에요.
산속에서 추운 밤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남편을 그리고 그의 어린 병사들을 생각하면, 의식의 끄트머리에서 그 병사보다 훨씬 어린 이들이 어둠을 걷어내며 걸어 나와요.
학도병.
처음 국사 시간에 그 단어를 보고 배웠을 때의 느낌을 잊지 못해요. 나와 같은 나이의 이들이 총을 들고 총을 쏘고 '적'을 죽이며 전쟁에 임한다는, 그들의 이름. 학도병. 일제 말기와 한국전쟁에서 총을 들고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던 어린 그들이요.
저는 잘은 몰라요, 그들의 마음가짐이 어땠을지. '조국'이나 '명예'같은 단어를 앞세우고 스스로 잡은 총인지, 끌려가서 잡은 총인지, 가족의 생명을 위해 먼저 나서서 잡은 총인지. 여러 사연을 저마다 품고 그들은 총을 쏘고 총을 맞았어요. 그리고 몇십 년 뒤 그저 '학도병'이라는 대명사로 역사책에 소개되었어요.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총검을 옆에 세운 흑백 사진 한 장과 함께요.
그래서 남편의 훈련지에는, 남편의 발 밑에는 그들의 영혼이 묻어있을 거란 생각이 늘 들었어요. 그들이 흘린 핏자국 위에서 이번에도 훈련이 이어지겠구나. 남편의 얼굴을 가린 나뭇가지는 70여 년 전의 그 어린 얼굴을 가리느라 여전히 애썼겠구나. 70여 년이 지나도 변함없을 나라의 상황을 보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치열하게 싸운 결과로써의 2020년 후의 시대를 보고는 어떤 한숨을 쉴까. 비통의 한숨일까, 안도의 한숨일까.
한국전쟁 관련한 사서(史書) 번역을 한 경험이 있어요. 공역이긴 했지만 값진 경험이었어요. 그 당시 자유중국, 대만이 파견한 첫 주한 중국대사 사오 위린(邵毓麟) 대사의 회고록이에요. 제가 번역을 담당한 부분이 마침,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그 아침부터의 서사였어요. 엘리트 외교관의 입장에서 급박한 국제 정세와 전시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했어요. 주한 중국교포들에 대한 신변 확보와 처리를 위해 애쓰는 상황에 대한 기록도 있었어요. 우리 민족이 전쟁으로 겪은 피해도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 생에 걸쳐 한국전쟁에 대해 피부로 와닿은 경험은 이 번역 과정뿐이었어요. 정외과 학부나 석사 과정에서 배웠으나, 학문의 대상으로서 한국전쟁이었지포탄과 총성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처절한 현장으로서의 전쟁은 배우지 않았어요.
강원 산골에서 자라면서 반공 교육을 받은 저는, 어린 시절 뿔 달린 공산당 악마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고 입이 찢어져 죽은 이승복 어린이를 위한 포스터 그리기와 표어 만들기를 했어요. 자라면서는 분단국가나 한국전쟁과 그 후의 한국사에 대해 무지했어요. 배우고 읽을 때마다 분노했으나, 그뿐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부모가 되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과 통일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지금의 세대는 '통일'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고 해요. '통일'이란 단어는 이제는 그 어떤 뜨거움이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단어가 되어 버린 걸까요.
6월, 왜 이리 아름다운 계절이 하필 호국보훈의 달이 되었던 걸까요. 아름다운 '가정의 달' 이후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며, 매번 급격한 온도 변화를 실감했어요. 가족과 하하호호하다가 갑자기 '호국 성령의 넋을 기리'기엔,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어요.
그러나 받아들여야 하더라고요. 우리 역사의 화창한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곤히 주무시던 새벽 시작된 총성에 대해서요. 그 총성의 마지막은 아직 맺어지지 않았음을요. 그래서 나의 남편은 여전히 혹한기 훈련을 가서, 어린 그들의 피비린내 속에서 훈련을 해야 함을요. 훈련을 떠나는 남편의 중무장된 뒷모습을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는 사실 앞에서, 여전히 역사의 여명은 멀었음을 실감해요. 여전히 혹한기에 의미를 찾기 위한 훈련을 이어가야 하는가 봐요. 6월은 여전히, 역사의 혹한기 그 한가운데임을 떠오르게 하는 시절이에요.
'역사적 타당성', '역사적 당위성'이라는 차가운 장막 뒤에 여전히 총검을 들고 서있는 그들, 학도병. 그들에게서 '역사'나 '명예'같은 단어를 걷어버리고 작은 손에 쥐어진 총검은 내려놓고, 6월의 푸른 햇살 아래 뜨겁게 안아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어요. 얼어붙었으나 깨어질(凍破) 시대를 위해,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