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다시 써보고 싶은 용기낸 한 걸음
24. 12. 21. 토요일의 첫 번째 글
오늘부터 글을 한 편씩 써 보려고 한다. 어떤 글이든 말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땐 인기 소설 작가와 같은 타이틀이 가지고 싶어서 네이버 카페 같은 곳에서 열심히 소설을 써서 자랑스러운 그 타이틀을 쟁취하고는 했다. 중학교 시절본격적으로 시작한 블로그를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초기화를 한 번 거쳤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부푼 꿈을 꾸곤 했다. 친구들 내에서는 '꽤 글 잘 쓰는 애' 라는 말을 들었고, 글 잘 쓰는 애가 누구니? 라는 질문이 나오면 모두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던 때가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그런 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 밥도 못 벌어먹고 사는 그거... 큰딸인 내가 그럴 듯한 직업, 그럴 듯한 연봉을 받기를 원하셨다. 조르고 졸라서 문예창작 과외를 받으면서 행복했던 건 잠깐이었다. 나는 금방 주위의 소위 '나 글 좀 써요' 하는 인터넷 상 친구들과 내 글을 계속 흘깃대며 비교하게 됐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글에 가차 없이 그이는 빨간 줄,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느껴지는 피드백이 나를 아프게 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지적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놀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용성 마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입시 두 달 째 내 글은 보기만 하면 햇빛을 받지 못해 그늘에서 죽어가는 식물처럼 시들시들해 보였다. 입시를 위해 맞추는 글이 맞는 것일까. 이게 내 글일까, 선생님께서 고쳐주신 글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입시장에서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재수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문예창작과 학생도 아닌데 말이다. 떨어질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불안해 손톱들은 어찌나 물어뜯었는지 열 손가락 모두 피가 날 지경이었다. 자연스레 꿈은 접혔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도 주변에 없다 보니 쉽게 포기하게 됐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먼저 넘어야 하는 입시라는 산을 넘지 못 하겠구나. 이 정도 피드백도 무서워 한다니, 그걸 넘어서지 못 하고 포기한다니, 나는 글 쓰고 싶다고 항상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하던 겁쟁이였다. 두려움에 뒷걸음질 친 거다. 잘 쓰지 못한다면 쓰지 말아야겠다. 나는 작가가 아니니까. 내가 떨어진 걸 아무도 비웃지 못하도록 일찌감치 포기해 버려야겠다. 학교가, 학과가 나를 버린게 아니라, '내가'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어깨 펼 수 있도록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실패라는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도전조차 미뤄둔 열여덟 살의 나였다. 이루지 못 할 거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은 꿀 수 있는데 말이다.
작가가 되겠다고 만든 글 동아리에서, 제멋대로이고 정돈이 안 된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내서 지금 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그걸 좋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 주고 싸인도 해 줬던 기억이 얼핏 난다. 그 아이들은 내 책을 끝까지 읽어 보았을까, 무슨 말인지는 알까, 아직도 그 아이들의 선반에 내 책이 꽂혀 있을까.
내게 지수는 정말 좋은 작가가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국어 선생님의 쪽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지금 저는 아무것도 되지 못 했습니다. 어쩐지 내 글을 꼼꼼히 읽어 주시고 좋은 마음으로 쪽지를 남겨 주신 선생님께 죄송한 느낌.
많은 압박과 잘못된 생각들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오늘날,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나의 욕구가 아주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눈을 지긋이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렸다. 내가 그 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20살 이후 5년 동안 하루에 하나의 글을 썼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글실력이 늘었을까? 글은 재능의 영역도 분명 있겠지만, 눈으로 많이 읽고 꾸준히 써 보는 만큼 실력이 는다고도 들었다. 많이 먹으면 위가 늘어나고 많이 운동하면 근육이 생기듯 우리의 머리와 손에도 글을 써내려갈 추진력과 창의력이 더 생겨나는 것 아닐까.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써 보려고 한다. 그게 어떤 글이 되었던 말이다.
내 글을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댓글로 대체 언제오냐며 독촉해도 감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