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4
‘사람들의 눈 끝에는 무언가가 있다’
라는 문장이 휴대폰 메모장에 적혀 있습니다. 일주일 간 일상을 지내며 메일을 쓸 만한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메모장에 단어나 문장을 적어두는데 이번 주의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도통 무슨 일이었는지, 이야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보통은 단서를 보면 곧바로 기억이 나는데 말이지요. 우음… 장면과 움직임은 그려지는데, 눈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제가 연상하고 있는 장면은, 저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문장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는 기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문득 느껴지는 사람들의 눈의 기척을 따라 자연스레 눈을 돌리게 되면 바라보게 되는 사물, 사람, 그 무엇이든 대상과 장면.
나의 감각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나에게 발견되는 것.
시야에 순간적으로 들어왔다 지나칠 수도 있고, 잠시 멈추게 되기도 하는 그런.
그런 일이 지난주에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이번엔 순간적으로 담겼다 사라진 무엇이었나 봅니다.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닌 또는 기억에 남을 필요가 없는.
유난히 기억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유난히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저는 후자에 속하는 편인데, 과거의 시간도 그렇고, 암기해야 할 것들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검색이나 메모가 대신한다는 핑계로 기억에 저장해두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줄어드는 데다 나이까지 더해져 기억능력이 점점 더 쇠퇴해 가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계정의 비밀번호도 지문에 얼굴인식까지 대신하게 되니까 더욱더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에… 순간순간 공포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이 때문이야, 들어오는 정보가 많아서 그래, 다들 그렇대… 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곤 하지만 과연 이유가 그것뿐일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앗! 갑자기 암기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것이 암기를 안 해서 가장 피를 봤다 생각하는 것은 영어단어입니다.
동갑내기 사촌동생을 따라 같이 다녔던 영어학원 선생님이 “영어단어는 외울 필요 없어!”라고 자신 있게 외쳤던 말을 믿고, 그 말만 기억하고, 영어단어를 어느 이상 정말 외우지 않았거든요… 아마도 그 선생님은 영어단어를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가르쳤던 것 같은데, 저는 외울 필요가 없다!라는 명쾌하고 신박하고 반가운 문구만 기억했던 거죠. 제가 의식적으로라도, 그리고 실제로도(?) 깊은 후회를 잘하지 않는 편인데, 퍽이나 오래도록 하는 후회가 바로 그 시절 이후 쭈욱 영어단어를 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ㅎ
어쨌든 이후에는 조금 더 단서를 달아 기록을 해야겠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이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