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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Sep 27. 2024

갭이어, 낯설게 살기

갭이어 첫 번째 달

여행 중 행정적인 퇴사일을 맞이하고, 갭이어를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다음을 위한 준비의 시간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여백의 시간일 갭이어가 나에게는 완전한 휴식을 의미했다. 그리고 운이 좋아 한 발 나아간다면 그동안 했던 일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기, 다시 한 발은 이후의 모색을 위한 단서 발견하기라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문장 그대로 막연하고 모호했다. 그래서 일단 계획 없이 놀기로 했다. 


새로운 시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많은 ‘처음’ 해보기, 하지 않던 대로 살기였다. 혼자 타지에 오래 머물기, 볼더링, 처음 만난 친구와 공연 관람, 새로운 형식의 공연과 공연장 방문, 매일 아침의 느긋함, 로봇 화가의 피사체 되기, 혼자 와인 한 잔 등 베를린 여행 중에 했던 많은 것들이 그랬다. 집에 돌아와서는 졸리지 않으면 안 자기, 평일 낮에 엄마랑 커피 타임, 꽃시장 방문, 페인트 칠이나 갑자기 서울 떠나기 등은 누군가는 수월하게 하는 것들이겠지만 나는 난생처음 하는 것들이었다. 


완전한 처음은 아니지만 이런 것도 괜찮다. 미용실에 가지 않고 10년 동안 커트로 지내온 머리 기르기, 밤새우며 드라마 보기, 초등학생(실은 국민학생) 시절 잠깐 배우고 말았던 수영 시도하기, 먼지에 익숙해지기(라지만 솔직하자면 청소 미루면서 게을러지기), 발레 레슨, 눈썰매, 몇 발자국 앞에서 바뀐 신호등을 건너거나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지 않기. 이런 것들.  


오랫동안의 나와 내 주변으로부터 낯설어지고 싶었다. 에너지가 있다 못해 에너지 뻗치게 지내고 싶었지만, 이건 초반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지운 목표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기 전에 마음에서 지워버렸지만 말이다. 


환승하는 지하철역에서 바싹 마른 겨울 냄새를 밀어내는 따뜻하고 달짝지근한 꽃향기를 알아차렸다. 하나하나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향기가 한데 모여 통로를 슬그머니 채우고 있다. 사람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나처럼 귀신 같이 타야 할 열차가 다가오고 있는 걸 알아차리고 앞으로 달려가거나 재게 걸어간다. 나는…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과 조금 더 간격이 벌어지도록 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인다. 속도를 줄이니 몸이 자연스레 향기의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리고 멈춰서 아주 작은 꽃다발을 하나 샀다. 곧 만나게 될 친구에게 줄 선물. 짧은 시간을 들였지만 맑은 향기를 마신 나도 기분이 좋고, 받는 이에게도 좋은 기분을 선물할 수 있었다. 이번 지하철을 놓쳐봐야 차이는 2-3분인데, 그동안 항상 빠른 환승칸을 찾아다니며 서두르기 바빴다. 물론 이전에는 그 2-3분이 고작이 아니었던 탓이다.  

시간을, 아주 조금, 더 들여, 몸을 느리게 움직이니, 참 좋았다. 

베를린에 사는 친구가 지하철 빠른 환승 위치를 알려주는 어플이 베를린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독일 친구에게 했더니, 그러면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 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느리게나마 변화하고 있는 그곳에서도 언제 그런 어플이 사용될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내게도 지금은 그런 어플이 없어도 괜찮은 것 같다. 


낯설어지는 것은 물리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내 인식의 낯섦도 포함이었다. 온 마음과 머리가 항상 나보다 남을 더 생각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민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나를 위하고자 했다. 굳이 남과 나를 놓거나 상황을 고려해 저울질할 필요가 없이 말이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고, 귀찮으면 미루고, 대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고. 무조건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지만 가능한 그렇게 했고, 어찌 보면 단순하고 이기적이도록 순간의 감각을 따랐다. 그런 생활 방식의 전환을 희망했다. 

그 희망만큼 내가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직업병인지, 성향인지, 학습된 탓인지 모르겠으나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초반이야 아무 생각 없이 있는 시간을 소비하면서 즐겁기만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이 발동하는 걸 보게 된다. 계속 이래도 되는 건가 싶고, 언제까지 이래도 되나 싶다. 그래서 지친 내가 충분한 위로를 받고 위안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가끔 갈팡질팡 하는 가운데 여전히 노력하고 있고, 얼마만큼의 자기 위안이 충분한 건지 가늠하지 못해 조금, 조금... 개운치가 않다.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리고 재빨리 달라진 것도 있는데, 바로 잠이었다. 매일, 꾸준히, 긴 잠을 푹 잘 잤다. 그 많던 꿈이 사라진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꿈 이야기를 나눌 아침의 친구들이 없다는 점에 있어서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리고 먹는 걸 생각하는 시간이 아주 많아졌다. 오늘 식사는, 간식은, 지금은 뭘 먹을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알아차렸는데, 그리고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먹고 싶은 것도 수시로 바뀌었다. 그때는 어느 정도 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어느 정도가 아주, 꽤 오래갔다. 


이때 유일하게 의식적으로 꾸준히 한 게 있다면 여행 중 시작했던 시간 기록이다. 인생 최대 중구난방으로 살고 있는 지금, 구글 시트에 일별로, 월별로 하루를 적고 있는 나 자신이 가끔은 어이가 없지만 그냥 그렇게 적어 내려가는 행위와 그 시트가 뿌듯한 건 왜일까. 직장인의 단순한 버릇일 수도 있고, 나중에 느낄 법한 상실감을 원천봉쇄한다는 의무감 때문일 수도 있다. 벌써 몇 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나 생각보다는 단순히 그 시간의 행위를 적는 것으로 치우쳐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방하다. 그걸 적는 순간만큼은 몇 시간 전의 나를 한 번씩 떠올리기 때문이다. 비록 내일은 오늘이 기억나지 않을지라도. 


어쨌든 그때는 하루하루가 꽤나 천천히 흘렀고, 가족 또는 친구들과의 약속과 혼자만의 일정으로 꽉 채워 보냈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빛나는 날을 보내던 중 방문한 음식점에서 식사 후 포춘쿠키 하나를 받았다. 그득하게 부른 배에도 이 음식점의 포춘쿠키 메시지가 정성스럽다는 친구의 얘기에 물리치기가 아쉬워 빠작 깨뜨린 쿠키. "자신 있게 도전하라, 당신의 총기가 빛나게 될 것이다.” 

저는 이미 용기를 내고 있어요. 그러니 부디 어딘가 한 구석에서라도 총기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분명 다른 이도 받았을 한 줄의 메시지가 반가워, 난데없는 반가움의 크기가 머쓱하면서도 친구와 함께 빌었다. 


하지만, 2024년 1월 29일, 출근을 안 한지 74일 만이고 절제 없는 삶을 누린 지 29일 만에 처음으로 심심함을 그리고 우울함을 느꼈다. 예상보다는 늦어졌지만, 기대보다는 이른 시간에 혼자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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