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었다.
전시회라니.
나는 그림을 그렸었다.
물론 학교 다니며 놀기도 많이 놀았지만 그림 그린다고 밤도 많이 새웠고,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과 영원하기를 바라며 졸업하기를 싫어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늦게 그림에 빠진 것 치고는 오래도록 재미를 느꼈고, 또 그만큼 따라잡으려고 많이 애썼던 것 같기도 하다. 졸업전시회에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 둘러싸여 축하도 받아보고, 졸업을 하면 무엇을 어떻게 할지 어느 정도 계획도 잡혀있었다.
하지만 나는 졸업과 동시에 주변의 기대나 생각과는 반대로,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림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들이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고 답답한 현실에 스스로를 괴롭히며 우울감에 빠져 sns나 핸드폰도 다 끊어버린 채 좀처럼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랬던 내가 후배들의 졸업 전시회를 보러 간다니.
몇 년이나 지났는데, 사람들이 나를 기억이나 할까, 쟤는 기껏 좋다고 그림 열심히 그리더니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한다고 손가락질 하진 않을까, 가기 전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올지도 몰라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전시회 입구부터 너는 눈에 띄었다. 여전히 인기가 많았고, 사람들은 너를 좋아했으며 얼굴도 밝아 보였다. 나는 인사할 용기도 없었다. 네 옆에 있는 그 여자도 나를 탐탁지 않아했으니까. 애써 뺑둘러 그림들을 보는 척하며 서둘러 빠져나왔다. 네가 행복하길 바랬고 그 옆엔 내가 있길 바랬다.
이제 와서.
너는 쉽게 날 잊어가는데 나는 그게 아직도 어려워서, 네가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그 여자 때문에 불행하길 바랬다.
뭘 기대했냐, 난..
어스름이 내린 텅 빈 거리를 걸으면서도 너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너보다 더 행복해서 내 지난 행복쯤은 기억도 안 나게 만들겠다는 다짐도 들지 않았다. 네가 이미 좋은 사람이었어서, 너만큼 나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해준 사람은 없었어서, 그런 사람을 손바닥 위의 모래처럼 흘려보낸 내가 너무 한심해서, 그러니 그런 선택을 했던 내가 벌을 받는 건 당연해.
눈물이 비집고 나오지 않도록 눈에 힘을 주고 인상을 썼다. 그건 추억일 뿐이야, 이젠 기억이 되도록 해줘. 아무리 나를 달래도 소용없었다. 아무 감정 없는 기억으로 만들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너무 저릿했다. 결국 길거리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최대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어깨는 들썩였고 힘줘서 물고 있던 아랫입술 사이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흘러내린 긴 머리 사이로 눈물이 엉켜 뚝뚝, 구두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이힐 신고 걷느라 발이 아파서 그래...
누군가를 향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울음이 터져버렸고 나는 도저히 너와의 시간을 기억으로 못 돌린 채 우두커니 서서 새어 나오는 신음을 손으로 간신히 가릴 뿐이었다.
아직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