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돈가스야?"
오늘 만나면 뭐 먹지,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여러 맛집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지만 나는 별 생각이 없는 날에도 돈가스면 좋았다. 커다란 옛날 돈가스도 좋았고, 카레와 같이 먹는 일본식 돈가스도 좋았다.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고는 돌아온 대답에 살짝 비웃는 듯한 눈길을 보내던 그는 휙 둘러보더니 길 건너 불빛이 환한 식당으로 성큼 앞서 걸었다. 저녁 시간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휑하던 식당. 나는 메뉴판을 열고 대충 훑은 뒤 돈가스를 먹겠다 했고 그는 생각 없다며 메뉴판을 덮고 주문을 위해 직원을 불렀다. 그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안주며 핸드폰만 해댔고, 나는 둘이지만 혼자인 그 시간 속에서도 돈가스를 먹었다.
질리지 않았다. 아니, 질릴 수 없었다.
매번 엄청 맛있었던 것도, 계속해서 먹고 싶을 만큼 중독성 있는 돈가스 맛집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돈가스 하나면, 너를 떠올리기 충분했다.
"이게 뭐야?"
처음 보는 음식들이 즐비한 테이블 앞에서 너에게 물었다.
"여기 부스러져 있는 음식 같은 건 스터핑, 저기 튀겨져 있는 건 슈니첼 이야."
난 한식보다는 밀가루 음식이나 일식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가 종종 먹었던 건 피자, 파스타 혹은 스시. 그런 네가 나에게 샌드위치나 스테이크를 넘어선 유럽 스타일의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엥, 딱 봐도 돈가스인데."
슈니첼의 첫인상이었다. 얇은 돈가스. 그런데 그 맛은 돈가스보다 부드럽고 살짝 짭조름하면서 담백했다. 튀김옷은 막 튀겨낸 것처럼 바삭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입안에서는 눅눅하지 않게 적당히 바삭했고, 고기 또한 훌륭했다.
"이거 뭐야... 너무 맛있어..."
"내 것도 먹을래?"
황홀한 듯 입안으로 한입 크기로 잘라 놓은 슈니첼을 차곡차곡 집어넣어 먹는 내가 다람쥐 같다며 너는 크게 한번 웃더니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슈니첼을 내 접시로 옮겨줬다.
그게 내 첫 번째 슈니첼이었다. 추수감사절 주말에 초대를 받아 방문한 너의 집에서 먹은 음식들. 입에 맞아 다행이라며 슈니첼은 물론 드라이 소시지까지 신경 써서 챙겨주던 그 따뜻한 환대와 훈훈한 공기가,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 속에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 냈다.
낯선 동네. 뭘 파는지 알 수 없는 간판의 레스토랑 안은 생각보다 어두컴컴했다. 앞서 들어가 예약한 자리를 찾아 걸어가는 너를 뒤에서 따라 걸으며 노랗고 어두운 조명에 익숙해지도록 눈을 계속 깜빡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화기 애애한 분위기가 맴돈다.
테이블마다 올려져 있는 와인병들, 웃으며 부딪히는 딸랑거리는 유리잔 소리들.
"네가 그 후로도 노래를 불렀잖아. 그래서 왔어. 제대로 파는 데가 잘 없어서 찾는데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슈니첼.
유럽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라고는 했지만, 나는 너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고 네 엄마가 만드셨던 것보다는 별로지만 뭐, 나쁘지는 않네, 라며 잔을 부딪혔다. 나도 옆 테이블의 사람들처럼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채 이제는 반짝거리기까지 하는 노란 조명 사이로 웃으며 얘기하는 너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턱을 괴었다가 손을 잡았다가, 테이블 사이를 깔깔 거리며 걸어 다니는 누군가의 아이들에게 인사도 해가면서 네가 따라주는 와인을 하염없이 마셨다. 그날따라 입안의 와인이 유독 달아서, 계절이 바뀌기 전에 또 오자며 너의 손에 들린 와인잔을 살짝 부딪혀 딸랑이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공기 중에 번져가는 그 소리가 좋아서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부딪혀 댔다.
그 뒤로는 정말 먹을 수가 없었다.
혼자라도 가보려고 했던 그 레스토랑의 위치는 전혀 기억이 안 났고 까만 간판 위에 쓰여있었던 레스토랑의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났다.
이건 한국식 슈니첼이야.
막 튀겨 나온 돈가스를 볼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의 마음, 그때의 공기, 그 날의 분위기. 그 어떤 것도 그때와 같을 순 없겠지만 내 의식만은 그랬다.
질리지 않았어. 질릴 리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