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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Oct 16. 2020

허니부쉬카라멜



"으 추워, 뭐 마실까?"



딸랑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따뜻하고 아늑한 기운이 몰려온다. 앞서 문을 잡아 열어주던 그는 추위에 살짝 몸을 떨고는 묻는다.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고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워서 들어온 카페. 한여름에도 차가운 음료는 마시지 않고, 시럽 들어간 단 음료도 꺼리는 나는 물어보나 마나 따뜻한 아메리카노였지만, 그날따라 왠지 카페인 때문에 잠 못 이룰까 봐 나답지 않게 걸려있는 메뉴판을 훑었다.



"라떼 종류는 우유 때문에 배불러서 잘 못 마실 거 같고, 핫초코는 너무 달아서... 티 종류는..."



그러고 보니 익숙했다.

너와 밤에 자주 오던 카페. 프랜차이즈의 숙명 아니랄까 봐 어딜 가나 같은 메뉴, 같은 인테리어. 메뉴판을 보다 말고 휙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당연하게도, 너는 없다. 이곳이 만에 하나 너와 자주 왔던 그곳이라 하더라도 너는 없을 거다. 내가 아니면 올 일이 없는 곳이 었으니까.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너는 티. 

항상 그랬다. 

늦은 저녁에 잠깐 얼굴이라도 보려고 할 때는 그 카페에 갔다. 비교적 자리가 넓고 사람도 많지 않았던 그곳. 우리 아지트 같아, 라며 낄낄대던 그곳. 내가 그날따라 커피를 많이 마셔 카페인에 부대껴할 때면 너는 서로 다른 티 두 잔을 시키고는 맘에 드는 걸 마시게 했다. 잔이 뜨거워서 손도 못 대고 티가 우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너는 오늘 하루 힘들었노라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음, 이거 좋은데? 난 오늘 이걸로 마실래. 근데 이거 이름이 뭐야?"



후후 불어가며 마셔본 티 중 맘에 드는 게 있었다. 달콤한 향을 잔뜩 풍기는 밋밋한 과일맛. 



"허니부쉬카라멜."



너는 내 어깨에 기댔던 머리를 끌어올려 바로 앉고는 또박또박 티 이름을 말했다.



"카페인이 없고, 단맛이 나. 네가 좋아할 것 같았어."



"잘 골랐는데?"



샐죽대며 입술을 다시 잔에 가져다 대고, 네가 말한 것처럼 단맛이 느껴지는지 후후 불어가며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티 종류는 얼그레이, 카모마일 밖에 없는데 어떤 거?"



그의 목소리에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아, 메뉴판 보고 있었지.



"혹시, 허니부쉬카라멜 있나요?"



"고객님, 그 티는 단종된 메뉴이긴 한데 마침 재고가 남아서요, 그걸로 드릴까요?"




단종.

몇 마디 말에 끊겨버린 너와 나 사이가 이렇게 잘 표현된 단어가 또 있을까.

재고.

어쩌다 가끔씩 찾는 순간이 올 때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내어버릴 때가 올까.



"아뇨, 그냥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한참을 보더니 결국 아메리카노냐고 피식대는 그를 보며 괜히 웃어 보였다.



"그냥, 입에 쓴 게 나을 거 같아."




괜찮은 티를 발견했다고 뿌듯해하던 너도, 자주 가던 카페 의자에 앉아 허니부쉬카라멜을 우리며 너를 기다리던 나도, 아무 말하지 않고 의자에 기대어 허공으로 사라지는 뜨거운 향기만 봐도 좋았던 우리는 그 향기와 함께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우리 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커피가 달았다. 잠을 못 잘 것 같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달콤한 과일맛이 입속에서 자꾸 맴돌아 뜨거운 커피를 불지도 않고 홀짝홀짝,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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