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기업 과장에서 6급 공무원이 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2016년 11월 14일 월요일 오전 9시. 주간회의 시간이었다. 오늘이 최종합격자 발표날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가 올 줄이야. 발신자 번호를 보는 순간 심장이 벌렁벌렁. 오마야. 진짜 됐나 보네. 어떡하지.
내 생애 첫 이직이 시작되는 순간. 27살에 입사해 햇수로 10년을 다닌 회사. 아오 징글징글해... 하면서도 뼛속까지 회사 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내가 이직을 하게 되다니. 너무 들뜬 목소리면 없어 보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또 너무 냉랭하게 굴면 밉보이지 않을까. 오만 생각이 스치다가 일단 전화를 받았다.
"공무원 경력경쟁채용시험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5분 후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훗날 같이 회의를 하던 다른 팀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날 나의 전화받는 표정과 목소리는 누가 봐도 '나 다른 데 갈 데 있어!'라는 뜻의 자신감이 묻은 우아한 목소리였다고 한다. 하긴. 홍보팀에서 매일 기자들의 문의 전화를 받는 게 일이었던지라 목소리를 하이톤으로 높이고 네~ 네~ 기자님~을 연발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어야 자연스러웠을 텐데 가만히 앉아 목소리를 내리깔고 5분간의 밀당을 벌이다니.
경력공무원공개채용에 지원서를 내고 거의 두 달의 시간 동안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프레젠테이션이 포함된 2차 면접 전형, 3차 신체검사까지 마친 지원자라면 응당 제발 합격하게 해 주세요! 마인드여야 할 테지만 이게 또 막상 선택권이 주어지니 고민을 하게 되더라. 정년 보장, 탄탄한 휴직 제도, 칼퇴 가능, 높은 수당, 든든한 공무원 연금 등 장점이 많다는 생각에 지원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이게 진짜야? 라는 의심이 드는 것.
그룹 공채 입사. 10년을 다닌 회사. 과장 2년 차. 사내 핵심부서. 월급과 인센티브 그래프가 치솟기 시작하는 때. 이 바닥의 보이지 않는 기류가 슬슬 보이기 시작한 때. 동기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위치가 된 때. 이 모든 걸 버리고 공무원으로 새로 시작하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내게 주어진 시간은 5분. 그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얼마나 많은 저울질을 했는지 모른다.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돌려가며 정말 괜찮을까? 후회하지 않을까? 머릿속이 무척 바빴다.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나는 공무원이란 세계에 대해 무지했으며 친한 친구나 가족 중에는 행정 공무원이 한 명도 없었다. 법학 전공자로 잠시 사법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지만 그건 사법의 영역이고. 일반공무원 시험은 준비한 적이 없어서 공무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계급 체계가 어떤 건지. 실제로 6급이 어느 정도의 업무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제대로 저울질이 될 리가 있나.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한 것이 초록 검색창에 대기업이 낫나요? 공무원이 낫나요?라고 검색해본 것. 아니 근데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취준생과 공시족 카페에는 이 질문이 단골로 등장하고 구체적인 회사명과 공무원 급수를 비교하는 글도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답변들은 행정학개론과 경영학원론을 요약한 듯한 뻔한 내용이었고 실무적인 차이를 언급한 답변은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답변이 내 친구가 공무원이고 우리 형이 삼성 다니는데... 식의 카더라였다. 그 흔한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전무하다니. 결국 내가 기존에 막연하게 알고 있던 그 내용과 다를 것이 없었다. 요약하자면 공무원은 가늘고 길게. 대기업은 굵고 짧게. 댓츠 올.
성격상 굵고 짧게의 취업시장이 나에게 더 맞는 노동환경이었지만 나는 5분 뒤 걸려온 발신 번호로 전화를 걸어 결국 공무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왜? 궁금해서.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다면 안 가본 길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대기업 입사도 그렇지만 공무원 시험이 매우 어렵다고 하는데 이렇게 행복한 고민을 하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정답을 알 수 없는 길을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것이 감사함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며.
4년이 지난 지금. 과연 잘한 일일까?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대기업 때려 치우고 공무원이 되길 잘했어와 내가 미쳤었나봐...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보람을 느끼는 날도 많지만 좌절하는 날도 많다. 그래도 차이는 확실히 있다. 취준생과 공시족 카페에 올라오는 그런 표면적인 차이 말고 진짜배기 차이. 경험치에서 나오는 비교 분석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 남의 회사 사정이 궁금한 사람들, 아 그때 내가 이걸 했어야 하는데... 후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가 되길 바라며... 이제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