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친해지자
2.1. 아기 고양이 자랑하기
쭙쭙이가 객관적으로는 너무 못생겼지만, 자꾸 보다 보니 삐약대는 모습이 점차 예뻐 보였다. 그래서 잔뜩 사진을 찍어, 고양이를 좋아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죄다 카톡을 보내 새로운 고양이를 자랑했다. 자랑한 사람들 중 학교 선배인 전상선 언니가 놀러 오면 안 되냐고 하시고, 바로 놀러 오셨다.
언니는 쭙쭙이를 보고 난리가 났다. 정말 예쁘다고 우쭈쭈 하셨는데, 누가 보면 언니가 주인인 줄 알겠다. 솔직히 저 정도로 예쁘진 않은데, 언니는 정말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 같다. 반성하자..
언니는 아기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 5마리였는데, 곰팡이에 걸려서 (또 어디 아픈 곳이 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3주 동안 3마리가 죽었다고 한다. 남은 2마리 중 한 마리는 입양 보내고, 1마리는 키우고 있다고 했다.
2년 전 뚱띠와 그 남매들을 키울 때 별 노력 안 하고 한 마리의 낙오도 없이 살려내어서, 태어난 지 3주가 지났는데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난 이 고양이를 꼭 지켜 줄 거야”
쭙쭙이가 잘 노는 것 같아 건강해 보여,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다. 우유병 소독도 잘해 주어야겠다. 솔직히 어제오늘 우유도 한 번 타면 너무 남길래, 냉장고에 넣었다 다시 중탕해서 줬었다. 그런데 언니가 그러는데 분유는 금방 상해서 나같이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귀찮아도 매번 타서 줘야겠다
고양이는 그냥 몸만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기 고양이와 큰 고양이 뚱띠가 집에 있으니 생각보다 많은 물품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동물 키우는 걸 아기 키우는 거랑 똑같다고 하나 보다. 동물 키우는 것은 진짜 커다란 생명이 오는 것이고, 그만큼 감당해야 할 물품도 많아진다.
고양이에게 뺏기는 것도 많다. 제일 먼저 우리 집의 보들거리는 것은 다 고양이 차지가 된다. 수면바지, 담요 등 극세사 재질은 다 고양이에게 바쳐진다. 그리고 젖병도 사야 되고, 간식도 사야 하고, 장난감도 사야 하고, 바구니, 스크레쳐 등 꽤 많은 지출을 하게 된다. 생명이 오니 많은 것을 짊어지게 되는구나.....
고양이 장난감 등 용품과 먹이도 금액대가 매우 다양하다. 좋은 것을 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런데 비싸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비싸면 더 좋은 건 줄 알고 주인님께 바쳤는데 냥아치 주인님은 내 치실 때가 참 많다. 큰 맘먹고 산 뱅뱅도는 장난감을 쳐다도 안 보고, 햇반 껍데기를 구겨가며 신나게 논다. 도대체 왜 재미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빵끈, 가죽끈도 엄청 아껴가며 신나게 가지고 논다.
다 가지고 논 후, 자신이 아끼는 것들은 소중하게 밥그릇에 넣어 둔다. 그리고 필요시에 꺼내서 다시 가지고 논다.
완벽하지 않고, 뭔가 어설퍼도 고양이에게는 즐거운 장난감들이 많다. 완벽하지 않은 나도 너무 사랑해주는 우리 고양이들.. 비싸지 않은 장난감도 좋아해서 집사가 너무 고마워
2.2. 똥만 잘 싸도 기특해서 참 좋겠다.
아기 고양이는 혼자 배변을 못 한다고 한다. 엄마가 있으면 똥꼬를 핥아 주는데, 그러면 배변을 하게 된다. 그러면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 똥오줌을 다 먹는 걸까? 나는 아기 고양이가 아무리 예뻐도 아기 고양이 똥꼬를 핥아 줄 순 없다. 그래서 젖을 먹고 배가 빵빵해지면 물티슈로 똥꼬 부분을 톡톡톡톡 자극을 주어서 소변 및 대변을 보게 했다. 그런데 상선 언니가 밥 먹기 전에 쉬야를 시키면 배에 공간이 더 많아져 우유를 더 많이 먹는다 하더라. 나도 이제 우유를 주기 전에 쉬야를 시켜야겠다.
그런데!!! 혼자서도 쌌다!!! 삐약거려 가보니 담요에 똥을 싸 놓았다.! 약간 묽었으나, 설사는 아니고 약간의 형태는 갖추고 있었다. 와.. 엄청 잘 먹고 엄청 잘 싼다.... 와 기쁘다...
새끼 고양이는 똥만 잘 싸도 기특한 일이라니.... 나도 똥만 싸도 이쁨 받고 싶다
2.3. 그런데 넌 어디서 자야 하니...? 무얼 먹어야 하니...?
뚱띠가 쭙쭙 이를 경계하여, 쭙쭙 이를 어디에 두고 자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아기 고양이 쭙쭙이를 안방 안에 두고, 뚱띠를 밖에 두면 됐는데, 그 생각은 못 했다. 주인님들의 동선을 막는 것은 감히 집사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생각 끝에, 쭙쭙이를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기로 했다. 그러면 뚱띠로부터도 지키고, 밤에 밥 달라 우는 소리도 잘 들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200g 작은 우유팩만 한 요 생명체를 혹여나 깔고 잘까봐, 높은 라탄 바구니에 담요를 깔고 넣어두고 잤다.
‘그런데 자다가도 밥을 먹는 거야..?’
인터넷에서 보니까, 아기 고양이는 3-4시간에 한 번씩 밥을 주고 배변 유도를 해야 한다는데 막상 실전에 돌입하니 시간 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밥 달라고 울면 그냥 우유를 주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5ml 정도 먹고 그만두고... 진짜 콩 털만큼 먹는다... 그래도 그나마라도 뭐 삼키는 거 같아 고마웠다. 조금 먹어서 그런가? 두 시간에 한 번씩 밥을 달라 울어대니 낮에 이 아이를 두고 어디 갈 수도 없었다. 밤에도 똑같이 줘야 한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밤에는 3-4시간 간격으로 삐약 삐약 울었다. 다행히 낮보다는 밥 달라는 간격이 조금 길어져서 다행이었다.... 1주일가량 지나니 밤새 자고, 아침에 우유를 달라 울었다. 밤새 내가 단잠을 잘 수 있게 해 준 우리 쭙쭙이.... 별것도 아닌데 얼마나 기특하던지... 똥만 잘 싸도 기특했는데... 이제 잠자는 것도 기특하다...
*본 글은 브런치 글 공모를 위해, 기존에 연재했던 글을 수정, 편집 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