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비 May 21. 2024

20. 샤크컨설팅(4)

알바_자멸로 이끄는

-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


- 아…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남자는 보고 있던 서류를 인사팀장에게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온 입구 반대쪽 벽 앞에 선 인사팀장이

벽의 중간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댔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남자는 처음 이 건물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복도의 벽인 줄 알았던 곳이 문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게 불과 하루 전 일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젠 전혀 신기하지도 않네..


- 지이잉


벽의 일부분이 뒤로 밀리면서

안으로 통하는 복도가 드러났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인사팀장이 남자를 한번 바라보고는

먼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어서 그 뒤를 남자가 따라 걷는다.



- 이 방입니다.


28층 사무실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보는 정상적인 문이었다.


물론 이 문도 그 재질이나 모양은

일반적인 문과는 매우 달랐지만,

어쨌든 누가 봐도 여기가 문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겉으로 드러나 보인다는 점에서

지금껏 벽으로 위장한 문들만을 봐왔던 남자의 눈엔

이 문 정도면 지극히 정상적인 문으로 보였다.


문 앞엔 번호가 음각되어 있다.


[16]


남자는 방 번호를 보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그 의미를 분석해보려 했지만

곧바로 포기했다.


16번 방의 바로 오른쪽 방 문엔 8,

좀 많이 떨어진 왼쪽 방 문에는

13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어떤 규칙도 찾을 수 없는 방들의 번호다.

이것만으로는,

이 안에 몇 개의 방이 있는 건지

아니면 방의 숫자에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하다못해 이 방이 16번째 방인지조차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 강조드렸던 부분들 유념하시고

잠시 후 다시 여기서 뵙겠습니다. 그럼.


인사팀장이 남자의 오른쪽 팔꿈치 부분을

가볍게 치고는 문 중간에 달려있는 손잡이를 돌렸다.

손잡이는 특이하게 배의 조종대와 모양이 비슷하다.

금속 손잡이를 세 바퀴쯤 돌렸을 때

철컥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메탈 재질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방안을 확인한 남자의 동공이 커졌다.


  


남자가 들어가고 컨설팅 룸의 문이 닫히자

인사팀장이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한참 뒤 들이마셨던 숨을 도로 내뱉었다.


- 이젠.. 끝이네..


뜻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되돌아가기 위해 뒤를 돌아선 인사팀장의 몸이

바로 얼어붙었다.


복도 끝 대기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문 앞에 한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을 것 같지 않던

인사팀장의 얼굴 위로 순식간에

당황스러움이 퍼져나갔다.


-.. 대표님, 오셨습니까..


여자의 앞으로 급히 걸어온 인사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인사팀장의 숙여진 머리만 바라 볼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이진경 대표다.


- …..


인사팀장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계속 숙이고 있다.

인사팀장의 목 뒤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 인사팀장님.


이진경 대표가 인사팀장의 직책을 불렀다.


- 네, 대표님.


그제야 인사팀장이 고개를 든다.


- 아직도 쓸데없는 감정이 남아있으신가 봐요.


-.. 아닙니다. 대표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마치 천적이라곤 볼 수 없는 연못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다 뱀과 맞닥뜨린 개구리처럼

얼어붙은 인사팀장이 간신히 대답했다.


- 사적인 대화는 내부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규칙,

잊어버린 건 아니실 테고.. 만약 한 번만 더,

좀 전 대기실에서처럼 컨설팅과 무관한 불필요한

대화를 하시면.. 제 권한으로 바로 인사발령을

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컨설턴트로 돌아가고 싶으신 건 아니시죠?

인사팀장님.


- 아닙니다.  그저.. 전담 컨설턴트로 계약을

유도하기 위해 회사에 관한 불안함이나 의심 가는

부분들을 가능한 풀어주려 했을 뿐입니다.

특히, 이번 지원자는 대기실이나 컨설팅룸에 관해

지금 그럴듯한 설명이라도 해두지 않으면

혹시 나중에라도 저 방들의 기능을 짐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되어…


- 그런 것 치고는 설명이 너무 조악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팀장님!

어차피 첫 컨설팅이 끝나고 나오면

그런 것들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오기나 할 것 같아요?

첫 컨설팅 끝나고 돈을 받았는데

전담 컨설턴트 계약을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그런 사람들이 있던가요?

명심하세요.

팀장님의 일은 지원자를 무조건 컨설팅 룸에

집어넣는 겁니다.

한 번만 더 지원자와 사적인 감정 교류가 있게 되면..

그 즉시 보직해임입니다.


- 네. 잘 알겠습니다.


인사팀장의 작지만 확실한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리는 이 대표다.

막 대기실 쪽으로 돌아서서 나가려던 이 대표가

돌연 다시 인사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아 그리고.. 표정 관리 좀 하셔야겠어요.

이번 지원자 앞에선 유독 감정을 잘 드러내시던데..

한 두 번이 아니시더라고요.

뭔가 동질감이라도 느끼시는 건지..


- 대표님! 말씀이...


자기도 모르게 인사팀장이 대표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대표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말을 흐리며

눈을 바닥으로 떨군다.


- 말씀이 뭐 어떻다는 거죠?

말을 하시려면 끝까지 하세요.


-...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말씀 주신 부분들 각별히 유념하겠습니다.


잠시 인사팀장을 바라보던 대표가

휙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 대표의 뒷모습을 보며 인사팀장이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허리를 숙이고 있는 인사팀장의 어깨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 툭


복도의 바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가 한 방울 떨어졌다.






 *사진출처:pixabay

이전 03화 19. 샤크컨설팅(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