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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May 24. 2024

21. 샤크컨설팅(5)

알바_자멸로 이끄는

컨설팅룸에서 나온 남자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 첫 컨설팅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남자에게

인사팀장은 가져온 생수를 건넸다.


말도 없이 생수병을 받은 남자가

입 한번 떼지 않고 그대로 한 번에 비워버린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인사팀장의 표정이 묘하다.


이제 조금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빈 생수통의 뚜껑을 닫고 있는 남자에게

인사팀장이 대기실 방향으로 손짓했다.


곧이어 인사팀장의 뒤를 따라가는

남자의 와이셔츠는

윗단추 두 개가 풀어져있었고,

넥타이는 풀어진 단추보다 더 아래에서

헐겁게 대롱거리며 매달려있었다.


대기실을 지나 처음 인터뷰를 보았던 방이다.

인사팀장이 남자에게 소파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남자는 이제는 익숙한 녹색의 벨벳소파에

털썩 소리가 들릴 정도로 주저앉았다.


- 하아...


크게 숨을 한번 내쉰 남자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한참을 그렇게 조금의 미동도 없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인사팀장이

이윽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 첫 컨설팅의 소감이 어떠십니까?


계속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인사팀장의 질문이 들려오자

이번엔 고개를 아래로 숙여

자신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천장을 바라볼 때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고 인사팀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 처음엔..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더군요.

한 마디도 못하고 벙어리처럼 가만히 서 있는데..

정말이지...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때 클라이언트분이 처음 제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살려달라고..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연습했던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닥치라고..


남자가 말을 하다 말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삼킨 침으로 인해 목울대가 울렁였다.

갑자기 심한 갈증을 느끼는 남자다.


- 아직 갈증이 많이 나시나 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말을 마친 인사팀장이 자리에서 막 일어났을 때

약한 진동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또각또각


방안을 울리는 하이힐 소리에

두 남자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문쪽을 향했다.


- 첫 컨설팅을 무사히 마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두 남자의 시선을 받으며

중앙의 테이블로 걸어온 이진경 대표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남자에게 자신이 가져온 텀블러를 건넸다.


- 저보다 더 필요하신 분이 있는 것 같네요.


- 아.. 감사합니다.


건네받은 텀블러에서 달그락달그락

얼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뚜껑을 열자 반쯤 녹은 얼음들 사이로

블랙커피의 진한 향이 올라온다.  


크게 한 모금을 마시자

좀 전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갈증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입에서 목으로,

목에서 가슴으로.

커피가 지나가는 통로마다

통로를 막고 있던 불덩이들이 차례대로 꺼진다.


- 클라이언트분께서 매우 만족하셨습니다.

기존 전담 컨설턴트보다

더 마음에 드신다고까지 하셔서

오히려 좀 난감할 뻔했습니다.

급하게 요청드렸는데도,

이렇게 좋은 결과 내주셔서 감사드려요.


- 아.. 네.. 다행..이네요.

인사팀장님이 가이드 설명과 연습을

워낙 꼼꼼하게 해 주셔서요..

가이드 매뉴얼도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

다 정리되어 있어서..


이 대표의 칭찬과 감사에 살짝 당황한 남자가

테이블 위로 텀블러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 같은 설명을 듣고,

같은 가이드를 보고,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더라도.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역시, 인사팀장님의 사람 보는 눈은..

저도 인정합니다.


남자에 이어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이 대표의 칭찬에 인사팀장은 표정 변화 없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 첫 컨설팅이라 심적으로 많이 부담되셨을 거예요.

어차피 다음 주까지 시간을 드리기로 했으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시죠.

다음 주에 인사팀장님께서 연락 주실 겁니다.

그때까지 푹 쉬시고, 좋은 결정 기대할게요.


- 아.. 네.. 감사합니다.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진경 대표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겸연쩍게 웃었다.


- 돌아가시기 전에 다른 궁금한 점은 없으세요?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불쑥 들어온

이 대표의 질문에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남자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


- 아, 없으시면 굳이 억지로 찾지 않으셔도 괜찮...


- 하나... 있습니다.


이 대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자는 인사팀장과의 첫 통화에서

'샤크컨설팅'이라는 말을 듣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처음 이 방에 왔을 때 정면에 걸려 있는

엄청난 크기의 상어 그림을 보고

거의 넋이 나갈 정도로 그림에 빠졌었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자신의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한쪽 벽을 거의 뒤덮을 정도로 큰 액자를

지그시 바라본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왜... 상어인가요?    


흥미로운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던

이 대표의 왼쪽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 아,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 질문.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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