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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May 20. 2024

19. 샤크컨설팅(3)

알바_자멸로 이끄는

-.. 알겠습니다. 오늘 일은 하겠다고 말씀드렸으니,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대신, 이런 방식의 컨설팅은

처음이라 저도 양해를 구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른 자세로 남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인사팀장이

잘 듣고 있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 저도 최대한 노력은 하겠지만,

혹시 클라이언트분이 클레임을 거시더라도..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사팀장의 입에서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나왔다.


- 물론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클라이언트로부터

클레임이 들어온다면 그 부분 포함,

컨설팅 이후의 모든 상황은 회사에서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더 요청하실 사항이 있으신가요?


- 아니요.. 없습니다.


- 그럼 이제 대기실로 자리를 옮기시지요.


남자의 불안한 대답과 대조적으로

인사팀장의 어투에는 자신과 확신으로

가득 차있었다.


인사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인사팀장의 뒤를 따라 걷는다.

곧이어 두 사람은

전날 이진경 대표가 들어오고 나간

소파 반대쪽 벽의 문을 열고 사라졌다.



방안의 모든 면이

독특한 형태의 타일로 둘러싸여 있다.


밟고 있는 바닥도

네 면의 벽들도

머리 위의 천장까지.

모두 밝은 브라운 색상의 타일로 둘러싸여 있다.


이 특이한 구조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는 남자다.

가까운 벽으로 다가가 살짝 손을 가져다 대본다.

나무 재질인 줄 알았던 타일에서

나무와 전혀 다른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나무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그럼 뭐지?


- 북미산 화이트오크입니다.

레드오크에 비해 결이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합니다.

물론 가격도 두 배 가량 더 비싸지요.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 같은 대답이

바로 뒤에서 들려온다.

남자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불과 몇 발자국 뒤에서 바른 자세로 서있는

인사팀장과 눈이 마주친 남자가

애써 놀란 표정을 감춘다.


- 아..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으로  화이트오크를

사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 맞습니다! 나무를 좀 아시는군요!


- 아니.. 그게, 잘 아는 건 아니고..

제가 와인을 조금 좋아합니다. 오크.. 나무에 관해

다른 건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남자의 저 말을 들은 후

인사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명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그의 열정적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 아닙니다! 그 정도면 훌륭합니다!

참나무 아시죠? 오크가 이 참나무입니다.

세세하게 보면 참나무도 수백 종이 넘긴 하지만..

뭐 대충 참나무라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참나무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귀하게

관리했던 나무입니다. 땔감으로도 참나무를 최고로

쳤고, 단단하고 질겨 농기구나 선박의 재료로도

썼죠. 아! 참숯이라고 들어보셨죠?

숯 중에서도 참나무로 만든 참숯을 최고로..


졸지에 컨설팅 시작 전

가이드 스터디를 하러 온 방이 수목원으로,

가이드 스터디를 도와줘야 할 인사팀장이

수목원의 가이드 선생님이 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일타강사와도 같이 능숙하고 현란하게

일대일 맞춤 강의를 하고 있는 눈앞의 이 남자가

자신이 알던 그 점잖고 중후한 인사팀장이 맞는지

남자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 … 반면에 레드오크는 타일로시스가 도관을

매우지 않기 때문에 도관이 비어있죠.

그래서 선박의 재료나 와인 숙성용 오크통으로는

이 레드오크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후에도 한참을 신이 나서 속사포처럼 설명을

이어가는 인사팀장이다.

그렇게 십 분쯤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의 바로 앞에서 눈만 껌뻑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인사팀장이

곧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 아.. 이런!.. 죄송합니다.

화이트오크를 아셔서,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인사팀장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으로

남자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이런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오히려 더 호감이 가는 남자다.


- 아닙니다. 아주.. 재밌었습니다.

유익하기도 했고요. 진심입니다. 


남자의 대답에 인사팀장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미소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서 의아함을 발견한

인사팀장이 급히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 이 방의 벽과 바닥, 천장에 모두 오크타일을

사용한 이유만 간단히 말씀드린다는 게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인사팀장이

남자가 서있는 방향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저쪽 벽에 컨설팅룸들로 연결이 되는

문들이 있습니다. 이 오크타일들은 컨설팅룸에서

나오는 소리와 전자파를 차단하려는 목적입니다.

오크나무에 몇 가지 특수 도료가 합성되어 있어서

일반 나무재질처럼 느껴지진 않으실 겁니다.


- 아니 정말 재밌었습니다.

저도 목공에 흥미가 생길 정도로..

그런데.. 소리와 전자파라 하시면?


- 아, 크게 걱정하실 내용은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클라이언트 분들이

워낙 사회적 지위나 명망이 높으신 분들이셔서

컨설팅룸은 기본적으로 카메라나 녹음기,

핸드폰과 같은 전자기기들이 작동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 설계 방식 때문에 컨설팅룸도 이 방처럼 다소.. 구조가 특이합니다. 이건 조금 이따 들어가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래서 방출되는 아주 미량의 전자파가 있습니다.

사실 크게 문제는 없는데,

요즘 그런 부분들에 워낙 민감하시니까요.

하지만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여기 같이 있는다거나,

아니 아예 이런 말씀을 드리지도 않았겠지요.


- 아.. 네..


남자의 대답이 끝나자 인사팀장이 거의 소리가

나지 않게 마치 합장하듯 두 손바닥을 가슴 앞에

모으며 대화를 정리했다.


- 안 그래도 촉박했던 시간이 제 실수로

더 촉박해져 버렸군요.

그럼 바로 가이드 스터디 시작하실까요?


인사팀장이 방의 가운데 놓인 테이블 쪽으로

남자를 안내한다.




-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가요?


기왕 하기로 한 거 최대한 열심히,

가능한 잘해보기로 결심한 남자다.

하지만 가이드 스터디가 진행될수록

먹은 결심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 몇 번을 물어보셔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그보다 더 심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니, 더 심하게 하실수록 클라이언트분들은

더 만족하실 겁니다. 클라이언트 분들이 가장

원하는 게 바로 그 부분입니다.


남자는 몇 번이나 계속된 자신의 질문에

화를 내지도, 싫증 한 번 내지도 않고

차분하게 같은 설명을 해주는 인사팀장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 알겠습니다.

그럼.. 정말 제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하면.. 되는 거죠?


- 맞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처럼’보다 진짜 그런 사람이

되셔서 완전한 진심으로 클라이언트 분들을

대해 주시면 됩니다.


남자는 인사팀장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가이드 매뉴얼로 시선을 옮겼다.

보고 있던 페이지에서 유독 한 문장이

남자의 눈에 크게 들어온다.


[ 야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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