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브런치 하셨나요?
안녕하세요.
기분 좋은 토요일 아침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자전거를 타고 왔습니다.
집에서 출발해 탄천을 따라가다 보면
한강이 나옵니다.
한강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다보면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 반포대교를
차례대로 지나게 됩니다.
그다음이 동작대교입니다.
목적지가 동작대교인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따릉이를 한 번 대여하면
반납해야 되는 시간이 있어 거기에 맞추다 보면
대략 동작대교가 목적지로 무난합니다.
갈 때 올 때 압구정 나들목에서 따릉이를
한 번 반납하고 재대여를 하면
왕복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라이딩입니다.
딱 좋습니다.
동작대교에 도착했습니다.
다리 아래는 그늘인데다 바람이 솔솔 불어
아주 시원합니다.
잠시 쉬었다 돌아가기로 합니다.
물 한병 가지고 나온 조촐한 라이딩이라
뭔가 조금 아쉽습니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봤습니다.
이럴 수가!
이게 웬 횡재랍니까?
놀람과 기쁨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자
이 녀석들의 출처가 기억납니다.
며칠 전 친구와 점심을 먹었는데
가는 길 심심할 때 먹으라고
친구가 커피 사탕 하나, 미니 젤리 한 봉지를 주었습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었지요.
그리고 저는 오늘 그 바지를 그대로 입고 나왔고요!
동작대교 아래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올라탑니다.
커피 사탕 봉지를 까서 입에 넣습니다.
기분 좋은 달달함이 밀려옵니다.
피로가 싹 달아납니다.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도 압구정 나들목에서
따릉이를 한 번 반납하고 재대여합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오분만 쉬기로 합니다.
- 아휴 힘들다!
웬 쫄쫄이 아저씨가 자전거를 세우시더니
옆에 앉으십니다.
제 귀여운 보온물통을 힐끗 보시고는
다시 한 마디 하십니다.
- 그래도 마호병에 물 담아왔나 보네!
아, 보온병을 마호병이라고도 하나 봅니다.
- 아, 네. 힘들긴 해도 날씨가 참 좋네요!
인사를 받으시자 본격적으로 토크를 시작하십니다.
말빨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흘려들을 얘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 나이가 많다고 짤렸어!
- 아, 자전거 동호회에서요?
- 아니, 회사에서!
- 아...
- △△중공업에서 크레인을 했는데...
20억이 넘는 크레인을 사신 이야기,
인간 구실 못하던 젊은 친구 하나 조수로 데려와
사람 만드신 이야기,
현장 소장에게 최고로 인정을 받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는 아저씨 앞에서
차마, 저도 백수입니다.라고
고백은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하게 되면
왜 백수가 되었는지부터 제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 수다하거든요.
하지만 비싸 보이는 아저씨의 로드 자전거와는 달리
제 따릉이는 한 시간 안에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제 얘기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아저씨의 얘기를 좀 더 듣기로 합니다.
느릅나무와 겨우살이를
모란시장에서 이 만 원어치만 사서 물에 우려먹으면
염증에 이것만 한 게 없다는 알찬 정보를
마지막으로 저는 아저씨께 인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 선생님, 저는 대여 자전거라 반납시간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다시 페달을 밟습니다.
이십 분쯤 갔을까요.
아직 미니젤리가 주머니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한번 머릿속에 떠오르자 미니젤리는 머릿속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별 수 없습니다.
앞에 보이는 쉼터에 자전거를 세웁니다.
젤리만 먹고 얼른 가면 반납 시간을 맞출 수 있겠지.
- 아니 여기서 또 만나네!
헉!
나이가 많다고 회사에서 짤리신
아까 그 아저씨!
느릅나무와 겨우살이 물이 염증에 최고라는
알찬 정보를 알려주신 그 아저씨였습니다!
- 와, 어떻게 여기서 또 만나죠?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네요.
선생님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요!
입으로는 '못생긴 얼굴인데 뭐 하러!'라고 하시며
바로 상체를 제 쪽으로 트십니다.
그리고 카메라빨은 저보다 더 잘 받으시더군요.
- 진짜 어떻게 여기서 또 봬요?
핸드폰을 내려놓고 여전히 놀라움과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한 마디 던지십니다.
- 달리다 보면 다 만나게 되어 있어.
발가락이 움찔거립니다.
손가락이 흔들립니다.
마음이,
울렁거립니다.
아침이지만
8월 마지막날의 햇살은 아직 따갑습니다.
이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온기를 느꼈다면
믿으실 수 있을까요?
- 그러네요.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어 있네요.
선생님, 이제 진짜 반납 시간이 촉박해서
저는 이만 가봐야 될 것 같아요.
다음에 뵈면 또 인사드릴게요!
다시 페달을 밟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상쾌합니다.
햇살, 바람, 나무
지나치는 모든 것들에서 온기가 느껴집니다.
아끼고 아껴 마지막에 먹으려고 했던 미니 젤리는
두 번째 만남 기념 선물로 아저씨께 드려
당충전은 못했지만,
마음의 온기를 백 퍼센트 충전한 기분입니다.
기분 좋은 토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드디어 마지막이네요.
이 글이 마지막 열 번째 글입니다.
사실 이렇게 연재로 쓸 계획은 없었습니다.
8월 16일,
브런치를 일 년 정도 하며 느낀 감정들을
'브런치 부적응자의 브런치 생존기'라는
제목으로 발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습니다.
8월 23일,
그동안 올렸었던 제 글들을 다시 보면서
글들도 참 어지간하게 주인을 닮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말투와 글투 사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 편 발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발행하면서 제 생각들을 조금 더
정리해 봐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하루에 한편을 올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올리면 다행이다는 생각이었죠.
여러분들이 응원해 주셔서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릴 수 있었고
이렇게 열 편을 채워 마무리 짓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자전거를 타며 만났던 아저씨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이번 연재 끝을 내겠습니다.
달리다 보면 다 만나게 되어있듯이
쓰다 보면 언젠간 다 만나게 되어있다고.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렇게 브런치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브런치 하셨나요?
*사진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