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와 나무 사이

오늘 브런치 하셨나요?

by 박나비

처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을 때

기억나시나요?


브런치 작가가 된다는 설렘과 기대감

혹시 모를 탈락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

이름도 알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작은 떨림을 만들어냈었죠.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어떠셨나요?


기쁨과 다짐의 글을 쓰신 분도 계셨을 테고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부담과 막연함을 토로하는 글을 쓰신 분도

계셨을 겁니다.

물론, 생각해 둔 글을 휘리릭 쓰고 착착 발행하며

기다렸다는 듯 브런치의 바다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간 작가님들도 많으셨을 거고요.


어떤 모습이었건 우리가 당시에 느꼈던

기쁨과 설렘, 부담과 막연함, 당연함과 당당함은

모두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시작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각오를 다지게 하고 의지를 세우게 합니다.

뭔가 될 것 같습니다.

뭔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올릴 때도 있고

한 달에 한 편의 글을 올릴 때도 있습니다.

한 달간 글을 올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발행 주기와 편수가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뭔가 삐그덕 거리는 것 같습니다.


생업이나 여러 이유들로

물리적 시간이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합니다.


설렘과 부담, 기쁨과 막연함을 등에 지고

브런치의 바다에 당당하게 뛰어들어

자연스레 동화되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드 넓은 브런치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초라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뭔가 삐그덕 거리는 것 같습니다.



관심 있게 보던 작가님들이

어느 날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이 나서 방문해 보면

먼지 가득 쌓인 예전 글들만 반겨줍니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약간의

기대와 희망은 가지게 합니다.

아, 작가님은 다시 돌아오시겠지.


또 다른 작가님의 브런치에는

글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덩그러니 빈 공간만 남아있습니다.

덩그러니 제 마음도 덩달아 허전해집니다.


다시 제 브런치로 돌아와

그간 썼던 글들을 뒤적여봅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내가 쓰려고 했던 글들이 맞는가.


마음에 드는 글들은 하나도 없고,

쓰려고 했던 글들은 서랍에도 없습니다.


마음속 저 아래 꼭꼭 숨겨두었던 본질적인 물음이

쑤욱하고 머리를 들어 올립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뭔가 삐그덕 거리는 것 같습니다.



유리로 나무를 긁으면 어떻게 될까요?

유리는 멀쩡한데 나무는 생채기가 납니다.

반대로 나무로 유리를 아무리 긁어봐도

유리엔 작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습니다.


그럼 유리가 나무보다 더 강한 걸까요?


이번엔 유리로 나무를 내려 치면 어떻게 될까요?

유리가 더 강하다면

나무가 산산조각이 나야 할 테지만 그렇지 않죠.

유리가 산산조각이 날거란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우리의 열정은

높은 경도의 저 유리와도 같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나만의 철학과 소신으로

무한정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이 유리와도 같은 열정은

아주 쉽게 깨진다는 걸 알게됩니다.

매번,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가는 나뭇가지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거든요.


간신히 큰 조각들만 주워 모아

여기저기 얼기설기 이어 붙여 다시 들고 있어 봤자

전보다 더 가는 나뭇가지에도

어김없이 부서지고 맙니다.


유리란 그런 성질의 것이니까요.


처음엔 무엇이든 날카롭게 벨 수 있는

유리가 더 강해 보였지만

쉽게 긁히고 마모되어도 부딪쳐 깨지지 않는

나무가 훨씬 더 강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생채기가 난 자리는 곧 아물고

새살이 올라와 전보다 더 단단해지겠지만

산산이 깨져버린 조각들은

이어 붙일 수 조차 없으니까요.



글을 쓰는 제 마음과

글에 대한 제 다짐이

겉이 강한 유리가 아니라

속이 단단한 나무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

상대를 베어버릴 수 있는

날카로운 유리의 형태가 아니라

비록 흠집이 나고 마모되기 쉽지만

새살이 올라와 더 단단해지는

나무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브런치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브런치 하셨나요?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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