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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스텔라 Nov 08. 2020

짐이 힘

사람은 보통 두 가지 삶의 패턴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두가 인정하는 바, 삶은 만만치 않고 보니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로 다가오면 벗어나려 하거나 견딘다.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해당 사항이 아니겠지만

애써도 해결되지 않으면 고통을 밖으로 표출하든지, 감당할 수 없어서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삶의 패턴이 되고 결과는 '그냥 이대로 살다 죽지 뭐...'  내지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로 간다.

이해되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시키면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관계와 내면이 조금씩 파괴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참는 쪽을 택하다 보니

한 번씩 내가 이름 붙인 '에너지병'을 앓는다.

증상은 멀쩡 하다가 갑자기 에너지 제로 상태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의 양해를 구하고 문을 닫고 깊은 잠에 빠진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고통 - 견딤 - 고갈 - 에너지 제로까지 진행이 급격히 온 결과이다.


얼마 전에 이 병을 앓으면서 한 가지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에너지가 없어서 몸은 계속 잠으로 빠지면서도

의식의 한 구석에 나를 누르는 무게에 대해 화를 내며 저항하는 나를 느꼈다.

삶의 짐을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패턴화 되기를 거부하는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되었다.


그랜드 캐년



벗어 버리고 싶지만 벗을 수 없는 짐이 있다. 대부분 나를 구성하고 있는 필수 불가결한 것들이다.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실존적 자아는 좌절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연결된다고 했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고난이라는 도전에 응전하는 창조적 소수로 역사는 진행된다고 한다.

인간 개인의 역사 원리도 다르지 않다면

벗어 버릴 수 없는 삶의 짐을 자기 자신에게로 가까워지려는 힘으로 삼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에너지병은 견디면서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실은 항체가 포기하지 않고 싸운 결과로 나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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