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에 미친 사람
이직한 회사는 텍스타일을 주로 하는 작은 인테리어 회사였다. 전공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고 하니 처음에는 잘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식사시간 포함 총 10시간 근무. 예상과는 달리 나는 그 시간을 온통 면벽수행으로 채워야 했다.
직원이 적으니 한 사람당 해야 할 일은 많고, 그래서 신입은 뽑아놨는데 다들 바빠서 신입에게 일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다. 뭐라도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어봤자 돌아오는 답변은 '너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잖아'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어쩌다 하루 쯤은 면벽수행을 하는 대신에 일을 하게되는 날도 있었는데, 그나마도 9시에 출근해서 18시 30분까지 간신히 시간을 보낸 후였다. 퇴근 30분 전에 받은 일 하나를 끝내고나니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이게 사는건가? 나 회사 왜 다니지?
돈 벌어야하니까. 돈은 왜 벌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렇게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니 이렇게 살아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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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출근을 위해 퇴근을 하는 생활의 연속일 뿐, 어떠한 기쁨도 즐거움도 없었다. 취업을 하며 어떤 생활을 꿈꾸었었나.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재료비를 충당하고, 퇴근한 후나 주말 등의 남는 시간에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결국 작업이구나.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작업에 미친 사람'이 바로 나였네.
그렇게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또 퇴사를 했다.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그렇게 몇 해를 보낸 후에야 비로소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느새 작업실을 꾸린 지 5년차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해왔던 일들 중 가장 오래 지속한 일이 '작업'인 것이다.
지금의 삶은 꽤 만족스럽다. 그야말로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번다. 나와는 생활 패턴이나 환경이 다른 누군가는 이 정도의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으나, 지금 나의 삶에서는 충분한 정도이다. 적당히 일한 후에 남는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할 수도 있어 더욱 만족스럽다.
가끔은 '만약에 내가 취업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대기업에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반년, 혹은 2개월 보다는 더 오랜 시간을 회사에서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시간들도 조금은 덜 괴롭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반대로 훨씬 힘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더 오랜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면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 시점이 그만큼 늦어졌을 것이고, 열심히 노력해서 힘들게 입사한 만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작업을 하기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백수'처럼 사는 삶이 늘 행복하기만 하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나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