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대학 졸업하고 나면 다 작가 될 것 같지? 졸업하고 난 후에도 작업하는 사람은 5% 미만이고 졸업 5년 후에도 계속 작업을 하는 사람은 1% 미만이야. 지금은 속으로 '에이 설마' 하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짜야. 졸업하고 나면 내 말이 생각날 거다."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가 학교마다, 교수님마다 다를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들었던 이야기는 그랬다. 신입생이었던 나 역시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니 동기들은 정말로 하나둘씩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4학년이 되니 이미 취업을 한 동기도 생겼다. 졸업작품이고 전시고 간에 모두 뒤로하고 취업에 매달리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눈 앞에 주어진 과제인 작품에 집중하며 지냈다. 작가가 되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던 것은 딱히 아니었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정확하게는 '졸업 이후'에 대해, 졸업이 눈 앞에 다가올 때까지도 고민해본 적 없었다. 일단은 작업을 하고, 작업을 하다 보면 졸업을 하게 될 것이고, 졸업한 후에는 글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이제 곧 졸업인데, 다들 고민이 많겠지. 작가가 될 것인가? 취업을 해야 하나? 공부를 더 할까? 그런데 작업한다고 시간만 보내다 보면 젊은 애들은 계속 치고 올라오고, 좋은 자리는 놓치고 빼앗기고, 결국엔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어. 그러니 현실적으로 조언을 해주자면 일단 취업을 해라. 작가의 길은 정말 힘들다. '나는 정말로 작업 안 하면 못살겠다' 하는 작업에 미친 애들이나 하는 거, 그게 작가다."
마지막 학기, 전공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작업에 미쳐있나? 작업 안 하면 죽을 것 같이 괴로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취업이구나.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졸업을 했고, 취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취업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정확하게는 뭘 모르는지도 몰랐고,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정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모르는 게 뭔지 모르니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몰랐다. 취준생 카페가 있고, 면접 스터디가 있고, 토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느니 - 하는 것들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구직을 포기한 몇 년 뒤에나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모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야말로 백지상태였다.
그렇게까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든 들어가게 된 첫 회사.
끔찍했다.
고작 6개월 선임이라는, 그 사람 한 명 때문에 더 다닐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빠트린 게 있어 이야기하면 월권이라며 화를 냈고, 모르는 척 넘어가면 일 제대로 안 하냐며 구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