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뭉칠수록 강하니까
영화 런던프라이드는 1980년대 영국 웨일스와 런던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1984년에 광부노조의 장기파업과 정부의 충돌 속에서 런던의 성소수자 모임은 광부 노조를 지지하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는 소수자들과 광부들의 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의 과정에 집중한다. 성 소수자에 대해 적대적인 많은 광부들이 마음을 열어가는 것들도 보여주는 반면에 영화가 끝나갈 때까지도 그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도 나온다. 영화의 주제는 무겁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밝게 연출하려 했다. 많은 퀴어 영화를 접하진 않았지만 여태 본 퀴어 영화는 런던프라이드보다는 다소 어두운 연출이었는데 이번엔 좀 더 경쾌하고 밝은 부분이 많았다. 특히 영화 중간 부분 빵과 장미라는 노래의 가사는 최고였다. 그들 사이의 연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웃음을 계속 머금고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그 부분은 유튜브에서 자주 찾아 들을 정도로 좋았다.
소수자들이 주체가 되는 영화는 소수자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감독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런던 프라이드는 소수자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보다 소수자들의 연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특히 처음에 ‘LGSM’의 뜻을 모르고 온 광산노조의 대표 ‘다이’는 그들을 처음 만났음에도 연대에 감사함을 표하며 그들을 받아들인다. 또한 해리포터에서 비호감 캐릭터의 대명사 ‘엄브릿지’ 역을 연기했던 ‘이멜다 스탠턴’은 이 영화에서 소수자들에게 굳건한 신뢰를 주는 ‘헤피나’로 탈바꿈한다. 솔직히 엄브릿지 역이 너무 강렬해서 처음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배우는 배우인지라 보다 보니 영화 후반부가 되어갈 수록 오히려 이 역할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샨’은 LGSM의 법적인 조언을 근거로 경찰서에 수감된 노조원을 구해낸다. 그녀는 조나단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전혀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영화 초반부에 LGSM의 리더 격인 ‘마크’와 ‘다이’의 대화에서 나온 대사는 런던 프라이드에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문양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상징이 있는데, 두 개의 손이 맞잡고 있죠. 노동 운동이란 그런 거예요. 서로를 지지하고 당신이 누구든, 어디서 왔든, 어깨를 맞대고 손을 맞잡아야 해요.”라고.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편견 없는 연대의식을 가진 인물들을 보면서 흐뭇해하면서도 80년 대면 우리나라에선 성 소수자라는 개념 자체도 희미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런던프라이드의 인물들은 너무 이상적인 인물들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불신의 유예란 말도 있듯, 영화에 서사에 더 집중했다. 이상적인 인물들과는 다르게 영화의 전개는 편견을 가진 흔하고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의 뜻대로 흘러간다. LGSM의 연대의 찬반 투표는 회의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바꾼 인물의 계획대로 되고 LGSM은 파업 지지에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그 후 파업은 결국 끝나고 노동자들은 삶으로 돌아간다. 광부들은 성소수자들의 행사인 런던 프라이드 행진 때 그들을 연대하러 찾아온다.
행진, 연대, 성소수자, 파업, 노동운동. 모두 내가 익숙하게 접하고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들이었다. 20살 때에 내가 느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과 노동문제였다. 계급적인 것들이 중요했고 사회 구조적인 것들이 중요했다. 사회학과에 진학하고 정치단체에도 가입했었던 과거를 보면 그랬던 것 같다. 알고 싶은 영역과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도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한국 사회에 문젯거리들에 관심을 가져왔던 나에게 런던프라이드는 내가 노동문제와 계급 불평등이라는 거대 담론들에만 집중하지 않았는지 꼬집는다. 학내외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했을 때 각각 정치단체들이 성 소수자 단체를 지지하고 여성 단체를 지지한 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묻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정치적으로 큰 사건이나 의제들이 다루어질 때, 광화문 광장 깃발은 무지개 색, 붉은색, 초록색 등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에 그런 광경을 보았을 땐 ‘연대’라는 것조차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왜 성소수자 단체에서 세월호 집회나 여성 집회에서 같이 목소리를 내고 싸워주는지, 왜 대학생들이 노조들 집회에서 같이 발언하고 경찰들하고도 대치하는지를 쉽게 느끼지는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국가 권력 앞에서, 혹은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약자의 입장에서 존재했었던 사람들은 연대로 인해 운동의 동력을 얻는 것을 여러 집회들에 참여하면서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강자보다는 약자이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강자가 아니라 약자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젠더적 관점에서 남성이고, 대학교육까지 받고 있으며 군필자의 입장인 나는 약자라고 하기 에는 한국 사회가 정한 평범한 남성 기준에 맞춰진 점들이 많다. 또한,이성애자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성 소수자의 볼 때 이성애자인 나는 강자의 위치에 있다. 게다가 젠더 권력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여성이 보기에 나는 여전히 강자로 여겨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보편적인, 표준적 기준이라는 말의 폭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상과 비정상, 소수자와 약자를 특이함으로 여길 때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약자와 소수는 연대함으로써 강해진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런던 프라이드는 현실적인 부분과 영화적인 요소들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은 영화다. 심오하고 비관적일 수 있는 주제들을 ‘소수자, 약자의 연대’ 과정으로, 좋은 연기와 좋은 음악으로 연출해냈으니 말이다. 비록 역사 속에서 광산 노조의 파업은 실패라고 평가되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으니 그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기존에도 소수자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들을 자주 봐왔고 켄 로치 감독의 팬이었기 때문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미안해요 리키’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려했었다. 그러나 ‘런던프라이드’를 본 애인의 강력한 추천 덕에 보게 되었고 이 영화를 보고 에세이를 마무리하는 지금 애인에게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2020. 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