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겪어보는 일상에 대해

-또 다른 리키들을 생각하며

by 하누
170669_168911_5255.jpg '미안해요 리키' 스틸 컷

소중한 가치들은 그것의 부재 없이는 쉽사리 깨닫기 힘들다.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등을 모두 겪으며 자랐지만 직접적으로 병에 감염된다는 공포를 느낀 건 이번 코로나가 처음이다. 내가 안전불감증은 것일 수도 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메르스가 발병했을 때도 나랑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기적이라면 참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코로나는 메르스 때와는 다르게 치사율은 낮고 감염력은 훨씬 강한 바이러스다. 확진자 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언론에서는 하루 종일 코로나 관련 이야기를 보도한다. 결정적으로 코로나가 메르스 때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사라져 버린 것에 있다. 대학생들과 교직원, 교수들은 감염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 사이버 강의를 진행하고 있고 처음 시도해보는 시스템에 모두가 적응하느라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중이다. 초, 중, 고 도 개학을 미루었고 높은 노동강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택근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반면에 사람들이 집에서 나가질 않으니 택배 업무나 배달 업무는 평소보다 늘었다고 한다.



전 세계적 재난 상태로 각자의 늘 비슷했던 일상은 사라졌다. 누군가에겐 재택근무와 적어진 근무시간으로 겪어보지 못한 나름 괜찮은 일상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이윤을 내지 못해 하루가 갈수록 늘어나는 빚과 평소보다 훨씬 높은 노동강도로 바뀐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바뀐 일상이 제법 나쁘지 않다고 말하기에는 확진자가 되어 괴로운 사람, 가족이 확진되어 세상을 떠난 사람, 확진은 되지 않았으나 열악해진 일상 속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나 또한 사이버 강의의 긍정적인 면을 보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긴 힘들다. 코로나 사태는 진행 중이지만 하루하루 쏟아지는 뉴스 기사들과 바이러스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기부하는 사람들과 이때다 싶어 사재기했던 마스크를 높은 가격으로 파는 사람들.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인 혐오 분위기 조성과 혐오 발언을 정당하게 하는 사람들. 그리도 혐오의 어젠다들을 재생산하고 보도하는 보수 언론들.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중국이었을 때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한 모습이었다. 원래 조선족들과 중국인들을 혐오했던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서 그들을 공격했을 것이고 유럽의 백인 우월주의자들 또한 동양인들에게 혐오와 폭력을 일삼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종교인들에 대한 편견이 재생산되고 확증편향이 강화되었다. 신천지 같은 경우는 이번 사태가 잠잠해지면 ‘국가 차원에서 조사를 들어가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부에서 주말 예배와 모임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으나 감영 예방책으로 신도들의 입에 소금물을 뿌리고 예배를 봐서 결국 40명이 넘는 확진자를 만들어낸 기독교 교인들에 대한 편견이 말이다. 그러나 신천지를 비롯한 광신적인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이 사회 계층에서 힘이 있고 대우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과 물질적인 자본조차 없는 사람들이란 것이 보여서 그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다. 가장 처벌받고 지탄받을 대상은 그들에게 돈을 받아내고 그들을 포교한 사기꾼들이지 않나.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 상황의 중심에 ‘신천지’가 있고 그들을 의도치 않게 어시스트하는 ‘기독교’ 인들이 지금의 한국에서, 2020년에 ‘종교’란 무엇인가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더불어 어제 본 슬픈 소식도 써야겠다. 40대 쿠팡 기사가 물류 배송 중 사망했다는 기사인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급격히 늘어난 물량이 그를 과로사로 몰았다는 기사였다. 댓글에는 신입 때에는 다른 사람의 절반의 물량만 시킨다고 해서 쿠팡을 두둔하는 댓글도 있고. 현직 쿠팡 맨 이라며 일하다 죽을 정도의 노동 강도는 아니라고 하는 댓글에 추천이 많이 달린 것을 보았다. 더 가관인 건 쿠팡이 그렇게 일하는 곳인 줄 알면서 지원한 거 아니냐는 비꼬기 성 댓글까지 보았다. 물론 내가 기사를 읽은 포털이 한국에서 가장 이용자 수가 많으며 보수적인 성향인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설마 죽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고 또 거기에 추천이 꽤 달려있다니 끔찍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쿠팡이 타 업체들에 비해 노동 강도만큼 임금을 준다 한들 로켓 배송과 새벽 배송은 솔직히 없어도 되지 않나?’라고 지금도 확고하게 생각한다. 온라인 구매라는 것은 배송 시간이라는 단점이 존재해서 오프라인보다 가격이 싼 것이고 구매자도 그걸 감안하고 시키는 것이 아닌가? 구매자의 입장에서 배송이 빠를수록 만족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그 서비스를 위해 수많은 쿠팡 맨들이 새벽에도 배송을 하고 밥 먹을 시간이 없이 배송하는 것은 한국에서 택배를 이용해본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 알 텐데. 그래, 로켓 배송을 해본 사람이라면 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보다는 로켓 배송의 편의성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겠지. 업체의 측면에서도 타사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는 시스템이기에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당일에, 다음날에 물건을 받아보는 즐거움보다 쿠팡 맨들의 인간다울 권리를 좀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화장실 갈 틈도, 밥을 먹을 시간도 있고 졸음운전에 위협에서 벗어난 택배 노동자들의 일터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P, S 택배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우리 옆에 있는 한국의 리키들을 위해서라도


2020.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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