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래도 가지고 싶은걸

by 하누

한 때 자기계발서 열풍과 함께, 자기 돌보기, 자존감에 대한 주제들로 베스트셀러 코너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계발은 이제 좀 뻔해서 안 팔리는지 몰라도. 뭔가 관조적이고 성찰적인 느낌의 에세이들이 유행했을 거다. 물론 그 저자들은 꽤 잘나가는 강사라던가 지식인이라던가 종교인이던가..등등 이었다. 나는 자기계발서와 더불어서 에세이라도 훈수를 두는 느낌의 에세이는 읽지 않는다. 경험상 40대 이상의 남성 지식인들이 쓴 에세이들이 많이 그랬는데 항상 몇 페이지 읽다가 덮곤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는 책을 팔아먹으려고 그 책을 쓴 게 아닐 거다. 진심으로 아픈 젊은 시절을 겪어서 지금의 ‘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대부분의 20대들도 자신과 비슷한 삶의 루트를 경험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책을 쓰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라는 속편을 내지 않았을까? 내용이 좋다는 이야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가 보는 삶의 관점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보고 싶다. 동의하지 않지만 자기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거짓말할 의도는 없었으니까!



사회학개론 수업 때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져온 삶의 변화 중에 ‘페티시즘’을 배웠던 게 기억이 난다. 물신주의라는 것이 우리의 의식 안에 자리 잡았고 화폐를 비롯한 공산품들에 사람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러 가지 물건들의 존재는 자본주의 이전과는 다른 매개체로 탈바꿈 했다는 것 아닐까. 틀릴 수도 있다. 벌써 5년도 넘게 지난 강의 내용이라. 당시 나는 그런가 싶으면서도 2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는 나의 삶을 돌아봤을 때 상품의 물신성에 강하게 매료되는 삶을 살아 온 것이 맞았다. 초등학생 때 엄마를 따라 마트를 가면 엄마가 장을 볼 때 나는 완구와 게임기 코너에 몇 시간이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자리가 비면 거기서 게임을 하기도 했고 온갖 게임 패키지 박스들을 다 읽고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완구 코너에서는 애니메이션 로봇들을 너무도 좋아했고. 늘 똑같았다. 엄마가 카트에 식재료들을 담아오면 나는 빤히 쳐다봤다. 가지고 싶은 게임패키지나 장난감들을 안사주면 집에 안갈 거라고 마트 바닥에 누워 시위하기도 했다. 물론 실패가 더 많았다. “엄만 갈 테니까 여기 혼자 있어 그럼.” 하고 그럴 때마다 엄마를 잃어버리면 겁이 났던 나는 “호에에엥” 하며 엄마가 밀고 가는 카트의 뒤에 후다닥 달려갔었다. 매번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그 전략이 나름 통할 때가 있었던지 꽤 자주 그랬다. 마트에 장보러 가는 날은 곧 나의 장난감이나 게임친구들이 하나 더 생길 수 있다는 기회여서 마트에 가는 날을 기다렸던 적도 많다.

4e60705c1ecf65327d7b4fd7e44c5aa8.jpg 머큐리얼 베이퍼 4. 내가 찾던건 가격이 싼 검정색과 하늘색이 섞인 보급형 모델이었는데 지금봐도 예쁜 디자인이다.

이렇듯 나의 물건에 대한 애정은 꽤 역사가 깊다.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어려운 개념들을 접하기 전부터. 물론 계급적으로 모든 장난감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가정의 경제적 조건이 컸겠지만.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될 때엔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축구 장비에 매료되었고 당시 호날두가 처음 신고 나온 획기적인 디자인의 나이키 축구화 ‘머큐리얼 베이퍼’를 가지고 싶어서 강북구부터 동대문구까지 나이키매장을 돌아다닌 끝에 구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계속 같이 찾으러 돌아다녔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 축구화는 중학교 3년 내내 굽이 다닳고 가죽이 찢어질 때까지 신었었다.



20대가 되고 돈을 벌 수 있을 때가 되자 관심 있는 영역에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았다. 단지 비싸서 못 사고 있는 것들이 많아 아쉬웠을 뿐이다. 20살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은 100만원이 조금 넘어가는 데스크탑을 사는데 썼는데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잘 샀다 싶은 것 중 하나다. 전역 전에 쓴 대부분의 돈은 데이트 비용이었다. 옷도 잘 사지 않았고 술도 잘 마시지 않았다. 학교생활과 연애를 하는 것 외엔 남는 돈이 없어서가 더 큰 이유였다. 항상 옷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최저가 순으로 구입했다. 옛 연인들이 기념일이나 생일 혹은 그냥 일상적으로 옷을 사준 적이 있었는데 참 잘 입고 다녔다. 연인들 눈높이다 보니까 누가 봐도 무난한 옷이었다. 소비 패턴은 전역 후에 완전히 바뀌었다. 야간수당이 나오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고 작년에 꽤 많이 돈을 벌었다. 지출은 어디다 했냐고? 데이트비용 절반, 옷과 신발류 쇼핑에 절반을 썼다. 전역하니 이전보다 체형도 많이 바뀌었고 대체 전역 전에 무슨 옷을 입고 다녔는지 할 정도로 옷이 부실했다. 바지는 거의 3~4개를 몇 개월 동안 돌려 입었었나보다. 내 옛 연인들은 정말 트루 러브였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매번 비슷한 옷을 입어도 난 네가 좋아!” 라며.



자주 사용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일정금액을 몇 달 동안 투자한 결과 기본 아이템이라고 하는 것들은 거의 다 모았다. 옷장은 풍족해졌고 매일 무엇을 입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는 지경이 됐다. 물론 걔중엔 안사도 됐을 아이템들도 섞여 있지만 대부분은 가성비를 너무 지향하다가 가성비도 못 챙긴 아이템들이다. 옷과 더불어 머리 스타일, 피부 등에도 돈과 시간을 투자했고 확실히 과거의 투박하기만 한 느낌은 조금 덜어낸 것 같아 좋은 요즘이다. 외모관리도 경쟁력이라는 명제에 동의하는 느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 말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외모는 노동시장에 플러스 요인이니까 신경 써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에 동의하기 힘들다. 좋든 싫든 겉으로 보이는 요소가 취업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선 꽤 많은 영향을 주는 걸 알 수 있었고 나 또한 내가 신경 쓴다면 더 만족할만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내면을 보는 게 더 중요하죠!’ 같은 말들이 나에겐 ‘이상 사회가 가능할까요?’ 라는 질문과 비슷하게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매력자본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경험상 사람을 좋냐 싫냐 라는 이분법으로, 호감이냐 비호감이냐 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할 때 외면의 요소는 생각보다 비중이 컸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 수록 더 느껴지는 요즘이다.



외모지상주의를 찬양하려고 쓴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면서 운동이든 옷이든 외면에 투자하는 게 결코 손해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운동을 안했다면, 혹은 외모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나의 20대는 지금과 많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마도 연인들과의 시간보다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가졌거나 다른 취미활동에 몰두 했을 것이다. 해외여행을 갔을 수도 있고 조금 더 나은 스펙(?)을 가졌을 수도 있다. 둘다 했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물음에는 단호히 NO라고 답할 수 있다. 양자 택일밖엔 없다고. 나에겐 주어진 물질적 환경이 너무도 한정적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팔아야하는 사회에서 둘을 잡기 위해선 잠을 4시간만 자야 했을 것이다. 그럼 결정적으로 수명을 잃었을 것이고. 연애와 아르바이트만 병행하기도 벅찼던 20대 초반의 나를 기억한다. 비연애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낭만적 연애주의자에 가까운 입장에서 그 우주는 지금보다는 덜 행복했을 평행우주가 아닐까 싶다. 합리적 소비와 제테크 방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요즘 '물욕'이라는 것이 삶에서 마냥 나쁜것은 아니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20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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