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이나 주식을 일찍 알았으면

4-3 Central Coast 은퇴 후 여유 있는 삶은, 센트럴 코스트

by 시드니 이작가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니 나만 세월을 보낸 게 아니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보다 세월을 더 빨리 보내셨지는 이제 굵은 주름과 불편해진 무릎이 야속하기만 하다. 한국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부머세대들은 근대화를 이룩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 장본인이다. 젊을 때는 돈 벌어서 자녀들 교육시키고 이제 시간이 좀 생길만하니 몸도 아프고 돈은 부동산에 묶여있어서 쓸 돈이 없다.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이고 중간 소득이 안 되는 노인이 거의 절반이고 그래서 생계를 위해서 일해야 되는 노인이 세명중 한 명이다. 누구보다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면서 젊을 때 열심히 살았는데 노년이 된 이제 자녀들은 자기 인생 찾겠다면서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할 맘이 별로 없어 보인다.


멀리 남의 자식을 찾을게 아니라 나만 보더라도 부모님은 공부 좀 한다고 비싼 유학까지 시켜줬더니 이제 국적도 호주가 되어 머리 까만 외국인 되었다. 당장 TV 리모컨이나 스마트폰 모를 때 물어보거나 몸이 아파도 병원 한번 같이 가주지 못하는 잘난 아들이 되었다. 잘난 것은 남의 아들 못난 놈이 내 자식이란 푸념이 미안하기도 하고 보험이 효자라는 말에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우리 부모님보다 노년이 되었을 때 상황이 낳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복리의 마법을 누릴 수 있는 연금이나 주식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슈퍼애뉴애이션 (superannuation)은 직장생활을 할때 고용주가 연봉의 9.5%를 의무적으로 납입을 해서 쌓여있는 국민연금이다. 국가가 아니라 펀드회사가 운영하고 금융당국은 이 펀드의 수익률과 수수료를 감독하는 시스템이다.


116개의 퇴직연금 펀드가 있는데 당연히 수익성이 좋은 펀드사를 내가 선택을 할 수 있고, 펀드사들이 보통 주식, 인프라에 투자를 하여 연간 7~8% 선의 수익률을 내고 있다. 현재 60세가 되면 일시불 혹은 부분적으로 인출을 할 수 있다. 물론 은퇴 전에도 인출할 수 있지만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그리고 주식은 잘은 모르지만 매달 1000불씩 미국의 주식을 사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라 부르는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 빅데이타, 자율주행같은 키워드에 적합한 성장가능성있고 우량한 기업의 주식을 적금처럼 사 모으는것이다. 그덕에 경제의 흐름과 정말 세상이 변하는것을 더 빨리 실감한다. 내돈의 가치가 오르고 내리고 하는것을 보면 확실히 경제 공부가 잘 되기도 하고 워낙 저금리 시대이라서 현금을 마땅히 보관할 곳도 없다.


참고로 기초노령연금 (Aged Pension)이라 하여 공공부조 방식의 기초연금도 있는데, 거주, 연령, 재산, 소득 등 본인이 거주하는 집을 제외한 소득심사를 통하여 일인당 한 달에 A$ 3200(250만 원) 정도까지 받을 수 있다. 부부라면 월 400만 원 정도 되니, 집이 있어 월세가 나가지 않는다면 생활비로 쓰기에 작은 돈은 아니다. 또 연방정부(Federal Government)에서 주는 보조금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Local Government)에서 연금 카드(Concession Card)를 발급하여 전기세, 수도세, 대중교통, 의료비등의 할인 혜택도 주고 있다.


호주에서는 재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에서 은퇴 후 캐러반으로 호주를 일주를 하거나, 골프, 볼링 그리고 RSL이나 지역의 클럽 등 건강하게 여가활동을 할 수도 있고,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통해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은퇴를 하면 NSW 센트럴코스트(Central Coast) 나 QLD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로 이사를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부동산 가격이 저렴하니 다운 사이징(Down sizing)해서 현금자산을 확보하고 여유롭게 노후를 보내기에 적당하다.


시드니에서 Pacific highway를 따라 북쪽으로 한 시간 올라가면 센트럴 코스트이다. Pacific highway는 시드니에서 브리즈번까지 800Km의 무료 고속도로이고 호주 한 바퀴 14,500Km를 연결하는 1번 고속도로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highway를 한국의 고속도로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일단 통행료를 받기 위한 톨게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큰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가 highway, motorway라고 부르기도 해서 M1. A1 표현이 혼동이 되기도 하는데, 보통 highway는 마을까지 관통하고 차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자전거까지 무료로 다닐 수 있고, motorway는 자전거는 들어올 수 없고 통행료를 내는 것이 보통이다.


본격적으로 혼스비(Hornsby)를 나와서 M1을 접어들면 쿠링가이 국립공원(Kuringai National Park)이다. 사암 암반을 관통해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의장대의 사열처럼 일렬로 늘름하게 정렬이 되어있다. 곧 내리막으로 가면서 호크베리(Hawksbury) 강이 펼쳐지니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명이 머니머니(money money)인데 물이 잔잔해서 처음 보트 연습을 하거나 카약을 하기 좋기도 하고, 여기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나가면 타즈만 해가 나온다. 그래서 이 동네 브루클린 (Brooklyn)은 은퇴를 하고 노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다.


센트럴 코스트(Central Coast)는 아보카(Avoca), 테레갈(Terregal) 그리고 엔트런스(The Entrance)를 아울러 산, 강 바다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엔트런스는 강릉의 경포대처럼 호수와 바다가 만나는 입구인데, 왼쪽에는 호수처럼 잔잔하여 카누나 스탠딩 보드를 타고 오른쪽으로 타즈만 해의 큰 파도가 출령 가려 서핑을 하고 있다.


1885년에 처음 게스트하우스가 생겨 오랜 시드니 사람들의 휴가처였고, 신선한 생선으로 막 튀겨낸 fish & chip를 먹으며 팰리칸을 보는 재미가 좋다. 매일 3시가 되면 펠리컨 먹이 주는 시간인데, 펠리컨은 이미 냄새를 맡고 모이기 시작하고 로컬 피시인 화이트닝, 브림을 던져주면 큰 부리로 잘도 받아먹는다. <네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네모를 삼키지 않고 입안에 넣어서 안전히 멀리 데려다주는 펠리컨은 친철하게도 구경꾼들과 사진도 잘 찍어주고 생선을 다 먹고 나면 떠 호수가 물 위로 글라딩하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시드니에서 한 시간 거리이라서 드라이브하면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나도 부모님이 주말이면 경주로 온천을 가고 보문단지를 걷고 오곤 했었는데 시드니 사람들에게 센트럴 코스트가 그런 곳이다. 근처에 좋은 골프코스도 참 많다. Kooinda Waters 나 Magenta 가 인기가 좋은데 주말에는 멤버들의 경기가 있어서 부킹이 힘들지만 평일에는 2명 이서도 캐디 없이 여유롭게 라운딩을 할 수 있다.


당일치기가 아니라 1박 2일을 생각한다면 1시간 더 올라가서 넬슨 베이 (nelson bay)까지 올라가자. 테레갈 호수, 맥콰리 호수가 이어지고 뉴캐슬 (Newcastle)이 이어지는 길이 참 아름답다. 뉴캐슬은 NSW에서 두 번째로 큰 대표적인 공업도시이다. 호주의 주요 수출품인 석탄, 철광석, 아연 등의 지하자원을 수출하는 주요항이고 보통 중국, 일본, 한국으로 간다.


하룻밤 숙소는 넬슨 베이 나 Shoal Bay를 추천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닝커피를 한잔하며 토마리(Tomaree) 마운틴 정상을 다녀와도 좋다, 산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면 타즈만 해의 바다가 펼쳐지고 운 좋은 날은 고래들이 물밖로 점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니면 토마리 말고 반대쪽으로 타운 쪽으로 가면 돌핀크루즈 선착장과 방파제 근처에는 물고기도 잘 잡힌다.




어떤 이가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호주를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표현을 했다. 여유롭다는 것이 몸 건강하고 주머니엔 현금이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성실히 살면 돈은 벌리고 또 너무 돈 돈 거리면 경박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부자 되시라', '돈 많이 벌어라'란 말이 인사가 되었다. 그만큼 금융지식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노후를 위해서는 육체적, 정신적, 재정적인 건강을 골고루 챙겨야 될 것 같다.


골드코스트에서 유학할때 동네 호주 할아버지한테 영어회화를 배웠다.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쳐주시던 분이셨는데 벌써 20년의 전 일이다. 항상 커피랑 디저트를 준비해주셨는데 아직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한 맘이 내 추억에 있고 그때 배운 영어를 잘 쓰고 있으니 그분의 선행이 나를 통해 살아 있다.


나도 그 할아버지처럼 고생은 젊어서 하고 노후에는 품격과 여유를 갖고 살고 싶다. 항상 나의 건강지수, 금융지수 그리고 문화지수를 잘 체크하면서 아름답게 어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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