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0화. 새끼 염소와 새싹

 주르륵! 주르륵! 풀 한 포기 없던 들판에 봄비가 내렸다. 땅속에 잠들어 있던 씨앗에게 봄비가 내린 거였다. 다음날 씨앗 하나가 땅을 뚫고 새싹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때마침 들판에서 뛰어놀던 새끼 염소 한 마리가 새싹을 발견했다. 새끼 염소는 아무 생각 없이 새싹을 뽑아 먹어 버렸다. 긴 시간 땅속에 머물며 멋진 나무가 되려던 새싹의 꿈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졌다.     


 다음날 들판에 또 봄비가 내렸다. 이번에도 새로운 씨앗 하나가 새싹이 되어 땅으로 나왔다.

 꿀꺽! 새싹은 순식간에 새끼 염소에게 먹히고 말았다. 새싹은 배고픔을 달래기에는 너무나 작았지만, 새끼 염소는 아무 이유 없이 새싹을 먹었다. 이후 씨앗들은 번갈아 가며 새싹으로 태어났지만, 번번이 새끼 염소에게 먹히고 말았다. 마지막 씨앗이 남겨질 때까지.

 주르륵! 주르륵! 마지막 봄비가 내렸고 마지막 씨앗도 새싹이 되어 땅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행히 그날부터 새끼 염소가 들판에 나오지 않았다. 무사히 하루를 보낸 새싹은 뜨거운 여름 햇빛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새싹은 새끼 염소만큼 자라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들판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어느새 새싹은 어엿한 나무가 되어 제법 큼지막한 나뭇잎들을 무성하게 달고 있었다. 봄이 되자 새끼 염소가 다시 들판에 왔다. 새끼 염소도 부쩍 커져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염소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마침 염소는 초록 잎이 풍성한 나무를 발견했다. 낮잠을 자기에 딱 안성맞춤인 나무였다. 나뭇잎이 햇빛을 막아주고, 솔솔 봄바람이 염소 털을 간지럽혔다. 염소는 오랜만에 달콤한 낮잠을 잤다.

 한동안 나무 그늘에서 잠을 잔 염소는 꼬르륵 배고픔에 잠에서 깼다. 때마침 염소의 눈앞에 나뭇잎들이 대롱거렸다. 염소는 몸을 일으켜 나뭇잎을 따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염소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문득 나무를 뒤돌아본 염소가 중얼거렸다.

 “저 나무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이전 19화 19화. 붕어와 지렁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