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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두 어부 이야기

 아주 먼 옛날, 작은 해안 마을에 있었던 이야기다. 한류와 난류가 서로 만나는 그곳은 물고기들이 풍부한 곳이었다. 자연스레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들이 살게 되었다. 그중 유달리 부지런한 어부와 유달리 욕심 많은 어부가 있었다.

 부지런한 어부는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한가득 물고기를 잡았다. 반면 욕심 많은 어부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 정도만 잡을 뿐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욕심 많은 어부는 부지런한 어부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저 어리숙한 어부가 어떻게 나보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지? 분명 내 그물보다 좋은 그물을 가진 게 분명해. 내게도 그런 그물만 있다면, 저깟 어부보다 훨씬 많은 물고기를 잡을 텐데 말이야. 아이고, 배야!”

 욕심 많은 어부는 부지런한 어부가 자기 그물보다 더 좋은 그물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어느 날, 욕심 많은 어부는 자신의 그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누가 보더라도 흠집 하나 없는 멀쩡한 그물이었다. 하지만 욕심 많은 어부의 눈에는 뭔가 허술하고 낡은 고물로만 보였다. 어부는 자신이 고기를 못 잡는 이유가 오직 그물 때문이라고 믿었다.

 “제길, 이런 그물로 무슨 고기를 잡을 수 있담! 내 실력에 어울리지 않은 고물이야, 고물 그물이라고! 흥!”

 결국, 욕심 많은 어부는 더 좋은 그물을 사기로 하고 시장에 있는 그물 가게에 갔다. 이리저리 그물들을 살펴보던 어부의 눈에 때마침 맘에 꼭 드는 그물이 들어왔다.

 “오, 훌륭한 그물이구나! 세상에 이런 그물이 있다니?”

 어부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부의 눈앞에 걸려 있는 그물은 그야말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엄청 단단해 보였다. 실 간격 또한 촘촘하게 엮여 있어 웬만한 고기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부가 그물을 어깨에 살짝 걸쳤더니 보기와는 다르게 정말 가벼웠다. 손에 움켜쥔 느낌이 금방이라도 물고기를 한가득 잡을 것만 같았다. 그때 어부의 행동을 쭉 지켜보던 그물 가게 주인이 어부에게 다가갔다.

 “이 그물은 보통 그물이 아닙니다. 이 그물은 황금 누에의 명주실을 엮어 만든 그물입니다. 그 어떤 물고기라도 이 그물에 한 번 걸리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죠. 한마디로 보물 그물입니다. 하하하!”

 어부의 말에 거침이 없었다. 특히 황금 누에라는 말은 어부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지금 황금 누에라고 했나요?”

 “예, 손님. 황금 누에에 대해서 한 번쯤 들어보셨겠죠?”

 “소문으로만 들어봤지 막상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손님은 참 운이 좋은 분이구려. 지금 황금 누에로 만든 그물을 보고 있으니까요. 황금 누에의 명주는 왕실에서도 최고로 치는 물건입니다. 누가 황금 누에의 명주로 그물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생각만 해도 대단합니다. 암튼 제가 이 그물을 구하는데 얼마나 애를 썼는지 손님은 상상도 못 할 거라고요. 에헴!”

 주인은 제법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그럴수록 욕심 많은 어부의 귀에는 그물 가게 주인의 입담이 더욱 그럴듯하게 들렸다.      


 황금 누에의 명주는 구하기 힘든 귀한 보물이었다. 황금처럼 아름답게 빛나기도 했지만 재질 또한 깃털처럼 가볍고 단단했기에 주로 왕과 왕비가 입는 화려한 옷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 물고기를 잡는 그물에 사용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욕심 많은 어부는 황금 명주 그물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황금 누에로 만든 그물이라? 이 그물만 있다면, 그깟 물고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잡을 테고, 그렇게 되면 나도 금방 부자가 되겠지.’

 어부의 생각은 점점 즐거운 상상으로 바뀌었고, 그 상상은 조금씩 현실처럼 느껴졌다. 부풀어진 희망과 기대는 욕심쟁이 어부에게 자꾸만 그물을 사라고 재촉했다.

 “주인장, 내가 이 그물을 사겠소. 얼마에 팔겠소?”

 가게 주인은 욕심 많은 어부의 위아래를 번갈아 본 뒤 말했다.

 “정말요? 정말 이 그물을 사시렵니까? 황금 누에의 명주 그물은 귀한 것이라 아주 비쌉니다. 적어도 은화 30냥은 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헉, 은화 30냥이라고요?”

 욕심 많은 어부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은화 30냥은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욕심쟁이 어부가 그동안 모았던 재산과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을 전부 다 합해야 가까스로 마련할 수 있는 돈이었다.

 어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물을 사기 위해 전 재산을 쓰자니 억울했고, 부지런한 어부가 계속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을 생각하니 배가 아팠다.

 “역시, 손님에게는 힘들겠죠? 사실 이 그물은 이미 다른 분께서 예약한 상태입니다. 손님을 처음 봤을 때 이 황금 명주 그물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을 한 번 해본 것뿐이니, 걱정하지 마시구려. 사실 이 그물은 어떤 고관 백작이 예약한 거라고요.”

 이 얘기를 듣자 욕심 많은 어부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이미 예약이 되었다고 하셨소?”

 “그렇소. 그 고관 백작이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그물침대를 만들 거라고 하네요. 이렇게 귀한 보물로 아기 침대나 만들다니, 쯧! 쯧! 안타까운 일이죠! 당신 같은 훌륭한 어부가 사용한다면 백배는 더 의미 있을 텐데 말입니다.”

 주인의 계속된 허풍에 욕심 많은 어부는 더는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인장, 그 그물 내가 사겠소! 은화 30냥 내가 내리다. 이 그물로 고기를 잡아 왕국에 납품만 할 수 있다면, 은화 30냥 정도는 금방 벌겠지. 암. 그렇고말고.”

 이렇게 욕심 많은 어부는 전 재산을 털어 황금 누에의 명주 그물을 샀다.     


 다음날 붉은 해가 넘실넘실 떠오르자 욕심 많은 어부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여느 때처럼 부지런한 어부가 먼저 나와 그물질을 하고 있었다. 욕심 많은 어부는 부지런한 어부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깟 그물로 잡아봤자 얼마나 잡을 수 있겠어? 잘 봐라! 내가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잡는지? 하하하!”

 욕심 많은 어부는 은화 30냥을 주고 산 황금 누에 명주 그물을 꺼내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

 첨벙!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의 손길이 흥겹기만 했다. 어부는 자기도 모르게 풍어의 노래까지 불렀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어기여차, 어기여차.”

 마침내 그물이 배 위로 올라왔다. 순간 욕심 많은 어부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어찌, 이런 일이? 어째서 한 마리도 없는 거야?”

 욕심 많은 어부의 그물에는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히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화가 난 어부는 연거푸 그물을 바다에 던졌다.

 첨벙! 

 첨벙!

 첨벙!

 욕심 많은 어부가 연거푸 그물을 걷어 올렸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어부는 어깨가 뻐근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다. 하지만 작은 물고기 몇 마리만 잡을 뿐이었다. 해가 저물고 날이 이미 어둑해졌는데도 어부의 배는 텅텅 비어있었다. 그날 욕심 많은 어부는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항구에 도착한 부지런한 어부의 배는 큼지막한 생선들로 제법 차 있었다.

 “도대체 저 어부의 그물은 얼마나 좋기에 저렇게 많은 고기를 잡는 거냐고?”

 다음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욕심 많은 어부는 바다에 나갔지만 계속 허탕만 쳤다. 화가 치밀어 오른 욕심 많은 어부는 새로 산 그물을 바닥에 그대로 내팽개쳤다. 순간 어부는 달라진 그물의 상태를 발견했다.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그 황금 명주 그물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평범한 그물이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어부는 곧장 그물 가게로 달려갔다.

 욕심쟁이 어부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그물 가게는 텅 비어있었다. 가게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가게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웃 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일주일 전에 사라졌다는 황당한 말만 들은 것이다. 그제야 그물 가게 주인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어부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가게 안에서 온갖 저주를 퍼부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욕심 많은 어부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이 엉터리 그물로는 고기를 더는 잡을 수 없단 말이야. 더 늦기 전에 돈을 되찾아야 하고. 저 어리숙한 어부의 그물과 몰래 바꿔치기를 해야겠어. 그럼 저 어부만큼은 고기를 잡을 수 있겠지. 일단 그것부터 시작을 해보자.’     


 어느 날 밤, 욕심 많은 어부는 어둠을 틈타 부지런한 어부의 집에 몰래 갔다. 운 좋게도 부지런한 어부의 집 담벼락에 그물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옳지! 저 그물이구나! 역시 어리숙한 어부임이 틀림없어. 자기 그물을 아무렇지 않게 걸쳐놓고 말이야.’

 욕심 많은 어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담벼락에 걸려 있는 그물을 집었다. 그물의 감촉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다.

 ‘이 그물은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야! 어서 내 그물과 바꿔 놔야지.’ 

 다음날, 부지런한 어부의 그물을 가져간 욕심 많은 어부는 망연자실했다. 부지런한 어부의 그물로는 그 어떤 물고기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그물은 한마디로 엉터리 그물이었다.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고, 그마저도 엉성하게 꿰매져 있었다. 욕심 많은 어부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채 푸념을 해댔다.

 “어떻게 저 어부는 이런 고물 그물로 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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