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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다람쥐 삼 형제 이야기

 봄이 막 물러갈 즈음, 숲에는 산 과일과 열매들이 맛깔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덩굴나무를 타고 내려온 으름 열매는 톡 터질 만큼 탱탱했고, 도토리 모양의 개암도 제법 고소한 냄새를 내뿜었다. 개암나무들 뒤편으로는 언덕이 펼쳐져 있었는데, 햇볕이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남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곳이었다. 그곳엔 아주 오래된 호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아빠 다람쥐와 다람쥐 삼 형제가 행복하게 사는 보금자리였다.

 한편, 아빠 다람쥐는 나이가 들수록 삼 형제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아빠 다람쥐는 자신이 죽더라도 삼 형제가 안전하게 살아갈 방법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아빠 다람쥐는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삼 형제 중 가장 지혜로운 아들에게 호두나무를 물려주기로 한 것이다. 호두나무만 잘 지킨다면 삼 형제가 굶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던 아빠 다람쥐는 삼 형제를 불렀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숙제가 있다. 토끼 마을 근처 강을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조팝나무 숲이 있단다. 그 조팝나무 숲의 중간쯤에 고슴도치 가족이 집을 짓고 살고 있지. 그 고슴도치와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고 오너라.” 


 아빠에게 숙제를 받은 삼 형제는 곧장 조팝나무 숲으로 떠났다. 삼 형제가 집을 떠난 지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아 첫째 다람쥐가 돌아왔다. 아빠 다람쥐가 첫째에게 말했다.

“벌써 다녀왔느냐? 고슴도치에 대해서는 알아보았고?” 

 그러자 첫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아빠! 고슴도치들은 게으르고 멍청하다고 합니다. 온종일 몸을 동글게 말고 굴에서 잠만 잔다고 하네요. 그런 동물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빨리 말하려고 돌아왔죠.” 

 첫째의 얘기가 끝나자 아빠 다람쥐가 다시 물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고슴도치에 대한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 

 “네, 고슴도치를 찾으러 가던 중 만난 토끼들에게 들었습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토끼들이었죠. 그런 토끼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잖아요?” 

 첫째는 주저 없이 말했다. 아빠 다람쥐는 속으로 실망했지만, 아무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루가 꼬박 지나고 이번엔 둘째가 돌아왔다. 

 “어서 오너라, 둘째야! 고슴도치에 대해 알아보았느냐?”

 아빠의 질문에 둘째가 대답했다.

 “아빠, 고슴도치를 보고 왔는데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웠어요. 온몸이 날카로운 가시들로 덮여 있었는데 하마터면 찔릴 뻔까지 했거든요. 고슴도치가 우리 가족의 친구가 된다면 언제 그 가시에 찔릴지 걱정하며 살게 될 거예요.” 

 둘째의 말이 끝나자 첫째가 둘째의 얘기를 거들고 나섰다.

 “아빠, 제 말이 맞죠? 보세요. 토끼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요.”

 아빠 다람쥐는 둘째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느냐?” 

 “네, 고슴도치 가족이 사는 굴까지 가서 제 눈으로 직접 보았죠. 제가 본 고슴도치는 위험한 동물이 분명했어요.”

 둘째의 대답에 아빠 다람쥐는 속으로 실망했다. 물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둘째가 집에 돌아오고 난 뒤, 삼 일이 더 흘렀다. 집을 떠났던 셋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는 셋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빠, 아무래도 셋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혹시 고슴도치의 끔찍한 가시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몰라요.”

 둘째의 말투엔 걱정이 가득했다. 

 “맞아요. 토끼들 얘기로는 고슴도치들은 다른 동물이 찾아오는 것을 정말 싫어한대요. 아빠, 셋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해요.”

 첫째도 토끼들 얘기에 빗대어 말했다. 아빠 다람쥐는 태연하게 듣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빠! 형들! 저 왔어요.”

 셋째였다. 첫째와 둘째는 동시에 뛰어나갔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다람쥐 형제는 셋째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난 괜찮아. 하나도 다친 곳 없어.”

 셋째의 대답에 첫째와 둘째도 비로소 안심되었다. 잠자코 삼 형제를 지켜보던 아빠가 말했다.

 “셋째야, 내가 낸 숙제를 풀었니? 고슴도치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더냐?”

 아빠의 질문에 셋째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요. 고슴도치는 우리와 사이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순간 첫째와 둘째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들이 듣고 보았던 내용과 정반대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다시 셋째에게 물었다.

 “너는 왜 고슴도치가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첫째와 둘째는 셋째가 어떻게 대답할지 몹시 궁금했다.

 “처음 토끼 마을에서 고슴도치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땐 고슴도치는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직접 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막상 고슴도치 가족을 보니 무서웠어요. 온몸에 가시들이 있어 가시에 찔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첫째와 둘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 고슴도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호기심이 커진 첫째가 말했다.

 “고슴도치 가족에게 부탁했지. 며칠만 같이 지낼 수 있는지?”

 셋째가 대답했다.

 “뭐라고? 그랬더니?”

 깜짝 놀란 둘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그랬더니 너무나 친절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어. 고슴도치 가족은 사랑이 넘쳤어. 그건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어. 혹시나 내가 가시에 찔리지 않을까 무척이나 조심했지. 또 내가 집을 잃어버린 줄 알고, 그 느린 걸음으로 숲을 돌아다니며 내 집을 찾아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 나는 고슴도치 가족의 착한 마음씨에 정말 감동했어.”     

 

 셋째의 얘기에 첫째와 둘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아빠 다람쥐가 큰 소리로 웃었다. 삼 형제에게 숙제를 낸 이후 처음으로 아빠 다람쥐가 웃은 거였다.

 “셋째가 가장 숙제를 잘 풀었구나! 하하하!”

 아빠 다람쥐는 셋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삼 형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얘들아, 남을 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란다. 듣고 보는 것만으로 남을 판단해선 안 된단다. 앞으로 이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이 숲에서 너희 삼 형제가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람쥐 삼 형제는 그제야 아빠 다람쥐가 낸 숙제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빠 다람쥐는 다시 삼 형제에게 말했다.

 “난 이 호두나무를 셋째에게 맡기려고 한다. 이 호두나무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보물이다. 셋째의 지혜라면 이 호두나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 같구나.”

 첫째와 둘째는 아빠 다람쥐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셋째의 생각과 행동이 너무나 어른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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