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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IN May 08. 2022

퇴사할 이유는 없지만 이직합니다

퇴사와 이직 사이, 그 안의 이성과 감성에 대하여

만족도 99%의 회사에서 퇴사하기로 했다. 앞으로 더 성장할 일만 남은 회사, 걸어 다니는 00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찰떡이었던 조직 문화, 매년 높은 연봉 인상률과 성과급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았던 업무, 이런 팀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맞았던 동료들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퇴사할 이유는 1도 없었다. 작은 사건이 힘들다고 하면 오히려 배부른 소리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이직'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이 지긋지긋해지면 퇴사를 결심하고 경력 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의 루트는 조금 달랐다. 다른 회사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고, 퇴사할 이유보다는 이직해야 할 이유를 만나 버렸다. 퇴사는 자연히 따라오는 과정 중 하나였을 뿐, 사실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안정적으로 잘 다니고 있던 곳을 뒤로하고 새로운 환경에 가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주변에 비슷한 연차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보아도 '우리 회사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업무, 상사 스트레스만 연신 토해낼 뿐 만족감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첫 직장에서 잘 맞는 직무와 나를 인정해주는 회사를 만난 건 천운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이직 제안을 받았다.


이직을 제안받은 곳은 다른 업계였지만, 내가 가진 역량을 토대로 새로운 시스템을 세팅해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기에 좋은 제안이었지만, 지금 다니는 곳을 그만둘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첫 티타임을 가질 때는 네트워킹이라고만 생각했지 이직을 고려한 만남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경력 기술서, 인터뷰, 처우 협의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확률은 50:50이었다. 내가 뭘 할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보이는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거기다 이직 제안을 받았을 무렵 다른 팀원의 퇴사 소식까지 듣게 됐다. 잊고 살았던 개복치 멘탈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 팀 구성원은 4명이었는데, 같이 일하던 인턴 분도 기간이 만료되었고 다른 팀원도 퇴사를 하면 남는 사람은 나와 팀장님 둘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퇴사를 말한단 말인가. 개인의 입장에서 이직을 고민해도 모자를 시간에, 팀의 상황까지 더해져 머리가 아팠다. 무엇보다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팀장님께서 겪을 심려를 모른 체하기 어려웠다.




거의 한 달 동안 머릿속에서 현 회사에 머물 때 생길 수 있는 일, 새로운 회사로 옮길 때 기대되는 일이 각축을 벌이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다 결국 이직을 결심한 건 새로운 세상에 나를 내던져보고 싶어서였다. 여기서만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곳에서도 나를 증명해내고 싶었다. 이 정도면 성취 중독이 아닐까도 싶지만.


사실 그만큼 둘 다 괜찮은 선택지이긴 했다. 그리고 어차피 겪어보지 않으면 뭐가 더 나은 선택인지 알지 못한다. 애초에 최고의 선택이란 없다. 그 선택을 후회 없게 만드는 건 미래의 나에게 달려 있다. 남들 다 한다는 이직에 뭐 이리 유난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서 잊고 있던 나의 본연의 모습을 여럿 만났다. 정말 내가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커리어 로드맵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어쩌다 이직을 하게 되며 만난 예상치 못한 상황들, 이직은 처음이라 겪게 된 솔직한 감정들, 퇴사와 이직 그 사이에서 마주한 나의 진짜 모습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지금만 할 수 있는 기록들이니 더욱 써보고 싶어졌다. 첫 이직을 앞두고 있거나, 일에서 무얼 좇아야 하는지 고민인 분들께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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