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IN May 22. 2022

월요병, 그게 뭔가요?

월요일이 기다려졌던 주니어의 마음

퇴사와 이직 사이, 그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첫 회사가 여기라 참 다행이었다. 원하던 회사에 들어가 잘 맞는 직무를 맡고, 쾌활한 동료들과 함께 했던 시간 덕분에 지금의 일을 더 잘하고 싶어졌다. 심지어 입사 초반에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걸 돈 받고 해도 되나 싶었던 적도 있었고, 주말에도 회사 가서 업무를 보고 싶어서 월요일을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


흔히 90년대생은 회사에 애착이 없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은 애착을 가질 만큼 핏한 회사가 많이 없는 게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생기면 또 덕후 본능을 가지고 제대로 집중하는 게 요즘 90년대생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정말 핏한 직장과 동료를 만난 친구들 중에서는 정말 애정을 쏟으며 즐겁게 일하는 친구들도 많다.




회사에 대한 만족감을 가진 배경에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비교대상이 있어야 깨닫게 된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3곳에서 인턴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원래는 서비스와 소비자를 직접 잇는 콘텐츠 마케팅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왜인지 스타트업의 자율성에 대한 환상이 강해서 무조건 마음이 진심으로 동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실무를 하면 할수록 무너졌다.


콘텐츠 마케팅은 30대가 넘어가면 감이 떨어져서 '공부'해야 하는 시점이 올 거란 생각이 들었고, 또 한때는 즐겁게 아이디어를 내는 게 일주일에 N번 업로드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바뀌었다. 스타트업은 30명, 100명, 3명 규모 순서로 경험을 해봤는데, 기업 특성상 한 가지 업무는 한 명이 맡게 된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일의 A부터 Z까지 경험할 수 있어 좋았으나 아무리 성장해도 결국 '나'에서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배울 점이 있는 사수나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탁월한 동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아, 이거 평생 못하겠는데..?


그간 스타트업 콘텐츠 마케터가 되기 위해 대외활동이나 인턴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왔으나, '이걸 평생 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는 본격적으로 현업에 뛰어들기 전부터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학생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본 턱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빨리 깨닫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시간 낭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 자연스러운 일, 어색한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 무조건 내게 잘 맞는 일, 그래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졌으니까.




그때 지금 회사의 전환형 인턴 공고가 떴다. 300명 규모의 스타트업이고 업계에서도 꽤 인정받고 있었다. 원래 가고 싶던 회사였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스타트업을 경험해보자 싶었다. 스타트업도 규모에 따라 겪는 성장통과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앞선 3개의 경험만으로 워너비 기업 문화를 져버리는 건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직무가 너무도 생소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원래 신입을 잘 뽑지 않을뿐더러 경력 인재풀도 넓지 않은 희소성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원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처음 접한 직무였지만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전 회사에서 콘텐츠 마케팅 말고도 여러 업무를 맡았던 덕분에 해당 직무와 연계해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직무에 핏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대학생활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대외활동과 인턴을 연달아 해왔기 때문에 무조건 열정과 가능성을 증명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서류가 통과됐고, 면접도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합격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었는데 전환형 인턴이었기 때문에 취업계를 내고 룰루랄라 회사로 출근을 했다. 이왕 합격한 김에 일을 잘해서 정규직 전환까지 됐으면 하는 소망을 한 아름 안고선. 그런데 이게 웬걸. 일이 잘 맞아도 너무 잘 맞았다. 처음 경험해본 업계에 모두 처음 보는 업무와 용어들 사이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매일이 새로워서 즐거웠다.




스타트업 특성상 인턴이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권한이 넓었다. 우리 팀은 IP를 활용해 외부 파트너사와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을 했다. 이때 인턴 동안 매출을 분석해서 사업 방향성을 제안하고, 실제 방향성에 맞는 파트너사를 서칭하고 발굴하는 일을 했다. 제안이 성사되어 실제 프로덕트가 나오는 과정을 바라볼 때의 짜릿함이 생생하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랄까. 이전에는 없던 일에 대한 확신이 차올랐다.


찾았다. 내 일!


일이 좋아서 더 열심히 했고 가능성을 봐준 분들 덕분에 정규직 전환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타이밍이 좋게도 회사도 대외적으로 성장한 시기라, 이전보다 더 큰 프로젝트들이 많이 들어왔다. 신입이었지만 바로 PM역할을 맡아 메인 프로젝트들을 이끌며, 마케팅/디자인 등 유관 부서들과 소통을 했다. 무엇보다 나를 인정해주는 상사를 만났다. 회사와의 핏도 중요하지만, 사실 상사와 일 하는 스타일과 바라보는 방향성, 말하는 언어 습관이 비슷할수록 좋다. 일을 하면서 맞춰질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기질이 맞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분을 만났다.




이직을 앞둔 시점, 내 첫 회사가 여기가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을 해본다. 콘텐츠 마케팅으로 쌓아온 지난 과거가 아까워 계속 그 일을 했었다면, 잘 맞지 않는 조직문화에서 일했다면,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는 상사를 만났다면, 함께 밥 먹는 게 즐겁지 않은 동료를 만났다면. 그랬다면 나는 이직과 성장을 위한 퇴사가 아닌, 퇴사를 위한 퇴사를 하지 않았을까?


결국 회사도 한 사람과 하나의 세상이 만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잘 맞는 회사를 만난 것도 내가 잘나서라기 보단 운이었지 싶다. 이전의 회사들이 잘 맞지 않는 곳의 기준을 알려줬다면, 여기서는 잘 맞는 곳의 기준을 배웠다. 그거 하나로도 충분히 고맙다. 내 첫 회사가 여기라 참 다행이다. 이런 방식과 마음으로도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이전 02화 내가 첫 회사와 했던 건 연애였나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