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와 산 나무 23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봄날, 동네 구경을 나섰다. 골목을 지나는데 단독주택 담너머 아주머니가 사다리를 타고 정원의 나무 가지를 자르고 계셨다. 물이 올라 새 잎이 막 나오고 있는 가지였다. 연둣빛 잎이 나오는 나뭇가지 너무 예뻐서 '이거 우리 가져가도 돼요? 네 얼마든지 가져가요'
– 우리가 너무 좋아하자 담 너머로 '이것도 줄까요? ' 하셨다.
이렇게 버려질 뻔한, 막 새 잎이 꽃처럼 피어나려는 이 환상적인 나뭇가지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나뭇가지가 수평으로 회전하는 무용수의 치마처럼 펼쳐지고, 연둣빛이 감도는 새 잎들은 솜털이 있어 은색으로 반짝이며 가지에 달린 보석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탄성이 나오는 이 아름다운 봄의 정령 같은 나뭇가지의 신비로움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가지가 시들지 않도록 물병에 꽃아도 보고 화분에 심어도 봤지만 어린잎들은 피어나지 못한 채 그대 말라갔다. 나무 가지를 책장 위 가장 높은 데 묶었다. 하늘에 펼쳐진 나무가 되었다. 심심한 고양이들을 나뭇가지에 올라갔다. 한해 한해 해가 갈수록 생명의 은빛은 사라져 가고 가지들은 점점 더 말라 검어져만 가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10년이 된 지금, 은빛 솜털은 빠지고 퇴색되고 잔가지들이 많이 부서져 먼지가 쌓여 고목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고양이 들에겐 즐거운 놀이터이고 나에겐 고개 들면 천장 높이 화사한 양산을 펼치고 있는 봄의 정령, 천상의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