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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Sep 11. 2024

어린아이의 손

죽은 나무와 산 나무 27

골목을 산책하다 버린 단풍나무 가지를 주워 왔다. 갓 나오고 있는 잎 눈들이 너무 예쁜데 그냥 버려져 죽어야 한다니 애처로워 가져와 병에 꽃아 두고 물을 갈아주며 매일 지켜봤다. 내 정성이 통했는지 며칠이 지난 뒤 잎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꼭꼭 구겨져 있던 잎이 펴지며 세상에, 꽃송이가 수술처럼 매달려서 잎과 함께, 둘이 한꺼번에 나왔다. 신비롭고도 놀라워라.  아가 손 같은 어린잎 좀 봐라. 드리워진 꽃송이 좀 봐바. 발을 물병에 담근 나무는 연하고 환상적인 봄을 선물했다.   



그러던 아침 잎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직 다 자라 보지도 못한 어린잎이 떨어지는 것은 단풍이 지는 것과는 다르다. 꽃도 다 떨어졌다. 하루하루 잎들은 떨어져 바닥에서 말라 오그라들었다. 나무는 텅 비어 갔다. 그렇게 단풍나무의 봄은 끝났다.

 

하지만 죽은 단풍가지는 잎을 피우지는 못하지만 죽지 않았다. 그 해 겨울, 그다음 해 겨울 파격적인 크리스마스트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가지 끝에 꽃기린 마른 꽃을 달고 꽃나무 트리로, 늘어 뜨린 단추 트리로 우리와 함께 몇 번의 겨울을 보냈다.

 

작은 십자가가 필요했는데 사려고 보니 비싸기도 하고 맘에 꼭 드는 게 없었다. 잔가지들이 거의 다 부러져 뒤켠에 뒀던 단풍나무가 생각났다. 밑 부분을 잘라 칼로 깎고 다듬어 작은 십자가를 만들었다.

너의 마지막이 십자가가 될 운명인 줄은 나도 몰랐단다. 처음 우리 집에 와서 피운 아름다운  잎과 꽃이 떠올랐다.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웠나?   살짝 휘청이면서도 중심을 잘 잡고 서있다.  

단풍나무가 경건해졌다. 

친했던 친구가 수녀님이나 신부님이 된 듯 한 기분이다.


처음의 십자가에게 바치는

처음의 기도


모아 잡은 두손이 

거칠고 굽어진 손일지라도  

온 세상 평화 바라는

단풍잎 같은 

어린 아이의 이 되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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