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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Sep 12. 2024

  어린 왕자 서커스단

죽은 나무와 산 나무 28

선인장 하면  손바닥 인장이지. 얼굴 같이 동그란 선인장 머리에서 다섯 손가락 하나씩 펴듯 노란 꽃이 세상을 환하게 바꾸었다. 볼품없는 내가 낳은 이 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한지 봐라- 시위를 하듯 눈부시게 활짝 피었다.  꽃 시든 자리에 아기가 하나가 생겨났다. 두꺼운 엄마의 몸에 쪼글쪼글 주름이 생겼다. 



 잘 자라나 싶던 아기는 머리가 아파서 절제 수술로 절반을 잘라냈다. 반쪽 얼굴의 아기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 멀대같이 길쭉한 자기랑 하나도 닮지 않은 아기를 머리끝에 낳았다. 약하던 그 아기도 병치레를 해서 끝을 자르고서야 튼튼해졌다. 

그렇게 할머니와 엄마와 손녀는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는 어린 왕자가 되었다. 

사막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놀러 갔다.  


어린 왕자는 서커스를 좋아했다. 왕자의 스카프에서 반대쪽으로 아기 하나가 기울어져 나왔다. 그 아기 머리 위로, 또 그 머리 위로 삐뚤빼뚤  아기를 낳았다.  아슬아슬한 중심 잡기를 즐기며 층층이 어깨 위에 올라선 서커스단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거뜬하게 공연을 잘 해냈다. 

하지만 5층과 6층에 올라간 애들이 무겁고 덩치도 커서 아래쪽에서 아무리 애써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고 쓰러져 공연은 엉망이 되었다. 아카시아 나무에 기대어 몸을 세우고 일단은 공연을 중단했다. 

와이어를 달아야 하나? 어쩌나? 해결 방법을 찾는 듯하더니 쉬니까 좋구나 까짓것 공연은 그 정도 했으면 됐어. 발아래 간지럽히는 새로 나온 나팔꽃 덩굴과 어디 신명 나게 놀아나 보자. 손에 손잡고 주저앉고 드러눕고 깔깔 즐거웠다.  

화려한 꽃을 머리에 이고 오프닝을 한 할머니부터 증손자, 고손자까지 재미있고 멋진 쇼를 보여주며 시대를 풍미했던 어린 왕자 서커스단. 힘에 부치는 공연은 미련 없이 접어버리고 까실한 가시 방출하며 제멋대로 놀다가 어린 왕자가 홀연히 별빛에 쓰러져 떠나가듯,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났다. 


사람 마음대로 가 아니라 자기 맘대로 자라, 놀고 즐기고 모험을 떠나는 내가 알 수 없는 선인장의 마음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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