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간의 기다림의 미학. (Photo by Misun Leymet)
12월 1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크리스마스 달력 앞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며칠 전 할머니가 보내주신 크리스마스 달력을 드디어 오늘부터 열어볼 수 있다. 상자처럼 생긴 달력에는 1부터 24까지 적혀 있는 스물네 개의 창문이 있다. 창문 뒤에는 초콜릿이 숨겨져 있다. 매일마다 그날의 날짜가 적혀있는 창문을 연다. 두와 덩이는 하루에 하나씩, 초콜릿을 까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엄마, 오늘은 며칠이야?"
"15일. 어제 종이에 써준 14 옆에 15를 써줄 테니까 달력에서 한번 찾아봐."
1과 5는 알지만 15는 몰라서, 아이가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숫자를 써줬다. 창문을 다 열어보고 싶지만 하루에 하나씩만 열면서 초콜릿 하나를 까먹고 달콤하게 인내심을 배운다. 12월에는 기다림도 재미있다. 1년 내내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크리스마스가 코 앞에 와있으니까.
11월 말이면 어김없이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달력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덕분에 12월이면 매일마다 초콜릿을 먹었다. 1년 치 초콜릿을 그때 몰아서 먹는 것 같다. 초콜릿을 너무 먹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던 해에는 시어머니께서 달력을 직접 만들어서 보내셨다. 두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학교에서 구슬이 대 유행이었다. 할머니는 달력 칸을 초콜릿 대신 갖가지 예쁜 색 구슬로 채우셨다. 그리고 며칠에 한 번씩은 구슬 말고 초콜릿을 넣어 두셨고, 머리핀이나 팔찌 같은 것도 들어 있는 날도 있었다.
이듬해에는, 작년에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셨던 나무집 모양로 된 달력을 재활용했다. 남편이 아이디어를 냈고, 직접 재료를 사다가 칸을 채웠다. 아이들이 한참 레고 맞추기에 빠져있을 때였다. 똑같은 레고 상자 두 개를 사서 설명서에 나온 순서대로 일일이 조각을 찾아 각 칸에 조금씩 넣었다. 남편은 방에 들어박혀서 달력 두 개를 들고 한 시간 반 만에 나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포켓몬 캐릭터 인형도 중간중간 섞여 있었다.
두와 덩이는 12월 내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학교 갈 차비를 하고 식탁에 앉아서 레고를 조금씩 조립해 나갔다. 새 레고 상자를 사주면 몇 시간이든 앉아서 단번에 맞출 정도로 레고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그런 것을 거의 한 달 동안 나눠서 맞추려니 처음에는 시시하게 여겨졌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미완성된 레고를 가지고 노는 법을 터득했다. 설명서를 보면서 다음날은 어디까지 조립할 수 있을까 예상을 해보기도 했고, 지금까지 만들어진 레고를 가지고 매일마다 다른 상상을 하며 놀았다. 만들어 놨던걸 다시 해체해서 또 만들고, 또 만들다 보니 더 이상 설명서가 필요치 않기도 했다.
갓 태어난 아이들은 인내심이 없다. 배고픔을 느끼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울기 시작하고, 기저귀를 가는 잠깐도 참지 못하고 발버둥 친다. 그런 아이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기다림을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고 활용하면 재밌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달력을 받으면 받자마자 24개 칸을 모조리 다 뜯어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풀어헤쳐진 크리스마스 달력은 아이에게 컬처를 만들어주기 어렵다. 두와 덩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달력으로 달려가는 일을 스물네 번 반복했다. 달력 안에 뻔히 초콜릿이 들어 있는 걸 알면서도 아침이 기다려졌다. 오늘은 무슨 모양의 초콜릿이 들어있을지가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순간이었다. 매일마다 달력에서 구슬 두 개씩 꺼내는 일도 스물네 번 반복했지만, 그것만큼 기다려지는 일도 없었다. 레고를 24일 동안 천천히 만들면서 수많은 히스토리가 쌓였다. 아이들은 이렇게 기다림을 배우며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