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반이에요. 다음 달에 12살이 돼요*."
"난 81년 생이야."
열세 살이면 열세 살이지, 13살 반은 또 뭐람? 처음에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나는 한국에서 하던 대로 81년생이라고 대답했었다. 상대가 뭔가 꽤 정확하게 나이를 밝히는 것 같았다. 나는 출생 연도를 말하면서 이보다 더 정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몇 살 반이라고 하는 것이나, 년도로 나이를 밝히는 것이나 서로에게 이상하게 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먹는다. 한국에서는, 생일과는 무관하게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나이를 먹는다.
"할로윈이 되면 내가 반살을 더 먹었다는 뜻이야."라고 두가 말한다.
"나는 반살마다 무슨 날이야?" 덩이가 묻는다.
"두는 할로윈이 오면 반살을 더 먹은 거고, 덩이는 새해가 밝으면 곧 반살을 더 먹을 거라는 소리야."라고 대답해 줬다.
노엘이 생일 선물을 받았다면서 보여준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태어나서 이름이 노엘인 아이인데, 6월 중간에 생일 선물을 받았다니 의아했다. 가족들과 8살 반 생일 파티를 했단다. 노엘의 엄마는 프랑스에 사는 미국인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도 프랑스에 사는 한국 인이라서, 한국 것도 아니고, 프랑스 것도 아닌 국적 불명의 것들을 더러 하니까.
두가 반살을 더 먹게 되는 할로윈이 되기 며칠 전이면 집 앞에 방이 붙는다. 그리고 방은 입소문을 탄다. 종이에 써져 있는 시간과 장소에 동네 귀신들이 모인다. 한껏 분장을 한 아이들과 분장을 하지 않고 검은 그림자처럼 따라 나온 부모들의 무리가 구름 떼처럼 점점 커진다. 부모들의 옷은 항상 거무죽죽하다. 어둠 속, 화려하게 분장을 한 아이들 옆에 서서 일렁이는 그림자들이 무시무시하게 환하게 웃고 서 있다. 어쩌면 거무칙칙 한 그들의 옷이 할로윈과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중 가장 어린아이들은 동물이나 공주 또는 히어로 같은 분장을 하고 나온다. 두어 살 더 먹었거나, 첫째를 보고 배운 아이들은 귀신 분장을 하고 나온다. 처음 두 해는 나의 두도 공주가 되어서 나갔었다. 세 번째 해가 되어서야, 마녀 드레스를 입고 뾰족한 마녀 모자를 썼다. 얼굴에는 분홍색 연지 곤지를 포기하는 대신 빨간 입술이 길게 찢어져 있었다. 손에는 호박 모양 전등이 반짝거렸고, 다른 한 손에는 요술 빗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이렇게 주렁주렁 달고, 마녀의 묘약이 펄펄 끓고 있을 것 같은 솥 모양 바구니까지 팔에 건 채로 사탕 동냥을 다녔다. 덩이도 첫 해는, 호랑이 옷을 입고 유모차에 태워져서, 세상에서 가장 겁 많은 아기 호랑이처럼 이끌려 다녔고, 이듬해에는 늠름한 아이언 맨으로 변신했다. 세 번째 해가 되어서야 해골과 뼈대만 남은 유령이 되어 해골바가지를 들고 거리를 헤맸다.
아이들은 꺄르륵 꺄르륵 귀신 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설레는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집집마다 쳐들어 간다.
"사탕 주세요. 안 그럼 저주를 내리겠어요! (Des bonbons ou un sort [데 봉봉 우 엉 쏘흐])"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에 어김없이 사탕 비가 뿌려진다. 할로윈이라고 집 대문 쪽에 호박을 놓아두었거나 할로윈 장식을 해 놓은 집의 벨을 누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집주인이 나와서 수많은 아이들에게 사탕과 군걸 질을 한 주먹씩 나눠 준다. 골목골목을 배회하던 중 마주친 유아학교 교장 선생님 댁에서도 아이들은 사탕을 푸짐하게 받아 나왔다.
할로윈 데이. 마을을 집에 초인종을 누르며 사탕 동냥을 하러 다니는 아이들. (Photo by Misun Leymet)
할로윈이 즐거운 이유는 뜻밖의 곳에 또 있었다. 두와 덩이는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드는 아직은 어린아이들이었다. 밖이 캄캄할 때 서둘러서 집으로 귀가를 한 적은 있어도, 밤거리를 산책해 본 적은 없었다. 이 날만큼은 캄캄하게 어둠이 깔린 동네 거리를 요란하게 다닐 수가 있다. 덕분에 오랜만에 부모들도 밤 산책을 즐긴다. 시원하고 잔잔한 밤공기가, 육아를 하는 동안, 어느새 추억 속의 냄새가 되어 있었구나를 새삼 깨닫는다. 두와 덩이의 동그랗게 커진 눈이 청량한 까만 하늘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까만 밤은 그냥 까만 밤이지만, 밖에 나와서 보는 까만 밤은 하늘 높이 까만 우주가 펼쳐져 있는 밤이다.
코비드 19와 함께 귀신들도 자가 격리가 되었다. 우리끼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집 안에 솜으로 된 거미줄을 치고, 호박모양 장식 줄을 여기저기 달았다. 아이들과 인터넷에서 박쥐 이미지를 검색해서 프린트했다. 벽과 천장에 오려 붙인 박쥐들이 날아다니고, 실에 매달린 거미가 천장부터 내려와 있다. 며칠 동안 거실에서 허리를 굽히고 다녀야 했다. 마트에 가서 주황색 호박도 여러 개 샀다. 예전에 농장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할로윈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커다란 호박 두 개를 나 혼자 팔이 떨어지도록 팠던 기억에, 작은 것들로만 고르고 싶었다. 지난번에 팠던 호박을 실온에 두었더니 속에 곰팡이가 가득 꼈었기에, 이번엔 냉장고에 오랫동안 보관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아이들의 호박이 까꿍 거린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호박 촛불. (Photo by Misun Leymet)
초등학교 5, 6 학년쯤 여름 방학이었던 것 같다.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유독 지겹도록 심심했다. 그 해 여름은 그리고 왜 그렇게도 더웠던 걸까? 아침에 동생들과 덩그러니 남겨지면 거실로 베개를 끌고 나와서 누웠다. 하루 종일 마루 바닥으로 된 거실로 나와서 선풍기 앞을 뒹굴어 다녔다. 오른쪽 팔이 닿은 바닥이 더워지면, 이번엔 등짝을 마루에 대고 누웠다가, 또 기분 나쁜 미지근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왼쪽으로 돌아 누웠다. 베개를 베면 더웠고, 베개를 빼면 바닥에 닿은 머리가 아팠다. 천장을 바라보며, 발가락으로 선풍기 버튼을 눌렀다 뗐다 하면서, 너무너무 심심하다고 하루 종일 되뇌었다. 얼마나 심심함으로 몸서리를 쳤던지, 그때의 그 지겨움은 지금도 몸서리 쳐진다.
더 어릴 적에는 좋은 추억이 많다. 사는게 무료하다고 여겨지거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어릴 적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행복감으로 그 이후를 줄곳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추억이 무엇이었나를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그때 무엇을 했었다는 것보다, 그때 즐거움을 느꼈던 내 마음에 초점이 맞춰진다. 대단한 추억 덕에 나는 마음이 부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추억거리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추억이 내 맘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이유는 내가 행복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마룻바닥을 뒹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는 이유는 그때의 지루한 심정이, 요즘 말로, '찐**'이었기 때문이다.
삶이 무료해질 때, 삶이 녹록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 아이들이 꺼내 먹을 수 있는 추억을 여러 개 만들어 주고 싶다. 아이들은 남들이 안 하는 것보다 남들도 하는 것들을 경험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든 가족이든, 누군가와 함께 그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소소한 사건들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과거와 미래를 염두해가며 현재의 행복을 재어보는 어리석은 어른이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어쩌면, 한 달 후에 디즈니랜드에 간다는 꿈같은 사실을 되뇌는 것보다, 지금 당장 타고 싶은 그네를 타는 것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낄 테다.
프랑스도 한국 못지않게 사교육에 열성을 쏟는다. 한국과는 분명 다른 부분이 많지만, 방과 후 또는 방학마다 다양한 기관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라셸의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처럼 사교육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시키지 않는 것이 의아했었다. 그런 라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라셸이 대답했다.
"노엘과 다비드는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춥거나 덥거나 상관없이 방과 후에 매일마다 밖에서 놀지. 아이들이 무언갈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걸 해보고 싶다고 요구하지 않는 이상, 이 아이들이 지금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내 아이의 리듬을 인정해 주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비를 입지도 않아서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비가 많이 오는 날 노엘과 다비드는 비를 맞으며 논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우산을 쓴 라셸이 나에게 말한다.
"오늘 너무 운이 좋은 날이야. 난 이렇게 비를 흠뻑 맞으며 놀았던 어릴 적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 이 아이들이 더 크면 더 이상 비를 흠뻑 맞고 돌아다니지 않겠지. 나처럼 우산을 쓰고 있겠지. 오늘 아이들이 실컷 비를 맞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어른들은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이들은 루틴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 어른들처럼 시간을 숫자화 할 수 없는 아이들은 하루의 일과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데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경험한다. 매 순간을 노력 없이 최선을 다해 즐기는 아이들은 내일이 똑같이 반복되어도, 그것이 지루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마다 즐거운 일이 반복된다고 받아들인다. 그런 이유에서 두와 덩이는 매일마다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도록 습관이 들어 있다. 나의 기분이나 욕구에 따라서 아이들의 소중한 루틴을 쉽사리 변경하지 않는다.
일 년 동안 일어나는 몇 가지 특별한 이벤트를 매년 경험하다 보면 그것도 일종의 일 년 단위의 루틴이 된다. 새해가 되면 한국 프랑스 혼혈 가족 모임에서 세배를 하고, 만우절이 되면 물고기를 만들고, 부활절에는 숨겨진 초콜릿 찾기를 한다. 할로윈에는 분장을 하고 사탕 동냥 길에 오르고, 가을에는 숲에서 밤을 줍는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면 크리스마스로 대단원이 내려진다. 이렇게 매년 같은 날 같은 일을 하면서 아이들은 추억을 만든다. 반복되어 쌓여가는 추억은 그들만의 문화가 된다.
우리 가족은 곧 정원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정원에 무엇을 심을지 아이들과 즐거운 상상을 했다.
"주황색 호박을 많이 심자. 그럼 할로윈 데이에 호박 촛불을 많이 만들 수 있잖아." 덩이가 말했다.
동네 공원 건물이 완공되면서, 완공 기념 할로윈 행사가 열였다. 건물 전체가 유령의 집으로 꾸며져 있었다. (Photo by Misun Leymet)
*주로 아이들이나 어린 청소년 학생들이 이렇게 대답한다.
**'찐'이라는 말을 제대로 쓴 것인지 모르겠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단어와 표현이 구식이 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쓰는 용어를 따라 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