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여섯 살이 채 되지 않은 다니엘이, 울퉁불퉁 못생기다 못해 뒤틀린 것 같은 열매를 보여준다. 색깔은 꼭 거친 배 껍데기인데 크기는 살구만 하다.
"이거 봐요. 사과 주웠어요."
아이들의 초등학교와 우리 집 사이로 난 고불고불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놀이터가 하나 나온다. 다니엘과 나의 아이들을 데리고 그 놀이터에 가는 길이었다. 오솔길에는 동네에서 유명한, 오리옹이라는 이름의 당나귀가 사는 집이 있다. 아이들 소리가 들리면 오리옹은 소리 없이 철망 담 쪽으로 내려와서 아이들이 주는 사과랑 당근을 받아먹는다. 볼일 다 본 아이들이 다시 길을 따라서 놀이터를 향해 걷는다. 담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을 따라 오리옹도 소리 없이 뚜벅뚜벅 걷는다. 투박하게 켜켜이 쌓은 돌담 위에 손을 짚고 까치발을 서고 넘어다 보면 양 떼들이 저 멀리 풀을 뜯고 있다. 다니엘이 사과를 주운 날에는 세 마리 아기 양이 제각각 엄마의 양털에 몸을 박고 연못가에 서 있었다.
놀이터에는 정돈 안된 잔디가 무성하게 깔려 있고, 구름까지 닿을 듯 높은 나무들이 마치 마을 정승들처럼 서있다. 놀이터에 들어와 있으면, 왠지 높은 나무 정승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돌봐주는 느낌이 든다. 나무로 되어 있는 아이들 놀이 기구는 색칠도 되어 있지 않아서 맨질맨질하다. 촉감이 좋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나 들어갈 수 있는 아늑한 나무 집도 여러 채 지어져 있다. 조금 큰 아이들은 지붕에서 지붕을 타며 뛰어다니는 걸 재미있어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사과라구?"
"이 집 나무에서 사과가 가끔 떨어져서 주워 먹어요. 엄마가 사과라고 했어요."
낯선 열매를 혹시라도 얼른 베어 물을까 싶어서 엄마가 오면 물어보고 먹으라고 했다. 아이는, 어차피 더러워서 물로 씻어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이미 경험해 본 일이었음이 느껴졌다.
"너희 집 앞에 난 로즈메리를 좀 꺾어가고 싶어." 크리나가 말했다.
"로즈메리가 어디에 있는데?"
몇 년을 살면서 집 앞에 로즈메리가 있는 줄도 몰랐다. 병에 담겨서 마트에서 파는 로즈메리는 사봤어도 땅에 꽂혀서 해와 비를 맞으며 자라는 천연산 로즈메리는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매일같이 지나가면서 나뭇가지가 들린 손으로 푹 찌르던 식물 울타리에 로즈메리가 천지였다. 그 날 저녁, 로즈메리 가지 두 개를 꺾어다가 그릇에 담고, 동글 납작하게 자른 감자를 버터에 버무려서 오븐에 구워 먹었다. 며칠 뒤 동네의 이자벨 아주머니가 로즈메리 가지를 두어 개 꺾어가는 게 보였다.
아이들이 각자 만든 가을맞이 작품. 밀가루 반죽에 부럼을 던져 주었더니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Photo by Misun Leymet)
"쿠베르땅 목장 뒤 숲으로 밤 주우러 가자. 버섯도 많이 따오자."
앙카는, 친구가 최근에 산에 가서 세프(le cèpe)라는 값비싼 식용 버섯을 가방 한가득 따왔다고 했다. 이번엔 마치 자기 차례라는 듯이, 버섯 바구니를 한가득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녀의 아이들은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장화까지 챙겨 신고, 제법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다. 나도 아이들에게 장화를 신길걸 그랬다.
이미 동네 사람들이 한바탕 훑어 갔는지 숲길 가까운 쪽의 바닥엔 알맹이라곤 돌멩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앙카는 조금 더 숲 속 깊숙이 들어가면 뭐가 많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오솔길을 따라 아무리 들어가도 별 수확이 없자, 우리는 오솔길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자잘한 밤이 보였다. 벌레가 먹어서 샤프심으로 찔러놓은 것처럼 동그라미 반듯하게 까만 구멍이 나있다. 아이들은 그거라도 주워 담으면서 신이 났다.
앙카를 따라서 더 깊게 오솔길을 이탈한 아이들이 알이 굵은 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준비해 온 가방 바닥에 제각각 간신히 몇 알씩 모였다. 밤은 그렇다 치고, 버섯을 찾으려니 더 깊이 들어가야 했다. 아이들은 예쁘게 생긴 버섯은 독이 들어 있는 버섯이라며 서로에게 정보를 준다. 누군가가 버섯을 발견할 때마다 저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관찰하며 예쁜지 못생겼는지를 가린다. 나는 일찌감치 버섯 따는 것을 포기했다.
마트에서 서너 송이만 봉투에 담아도 자칫 알이 크면 만원이 넘는 세프를 가방 가득 따갈 줄 알고 신이 났던 앙카는 약이 올랐다. 버섯을 볼 줄 안다고 했던 앙카는, 결국 세프는 찾지 못했고, 모양이 제각각인 여러 가지 버섯들을 발견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버섯과 눈앞에 실제 하는 버섯이 같은 것인지 아리송했는지 핸드폰으로 검색한 버섯 사진을 보고 또 봤다. 결국 앙카는 실같이 얇은 식용 버섯을 발견했고, 샐러드에 넣어 먹겠다며 봉지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머리를 쥐어 잡고 싸우다가 빠진 머리채도, 앙카가 찾은 실 같은 버섯보다는 더 풍성할 것 같다. 그녀는 비싸서 감질나게 밖에 못 먹던 세프 좀 실컷 먹어보자는 꿈에서는 이미 한참 전에 깬 듯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일찍 와보자고 했다.
나무 밑동에 난 먹지 못할 버섯. (Photo by Misun Leymet)
숲으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나는 산짐승이 나올까 봐 불안하기 시작했었다. 앞으로 뒤로 오솔길을 따라 냅다 뛰어달리는 아이들만 눈으로라도 붙잡고 걸었다. 밤이고 세프고 간에, 내 눈에는 아이들만 보였다. 아이들이 오솔길을 이탈해서 풀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갈 때마다 쐐기풀에 스쳐서 상처가 날까 봐 노심초사했다. 거머리가 들러붙으면 거머리 핀으로 살살 잘 돌려서 빼야 한다고 했다. 무작정 잡아 빼면 거머리 머리가 살 속을 파고 들어간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거머리 핀을 사가야 하나, 아이들 몸에 붙은 거머리를 몇 번 빼 봤다는 옆집의 라셸에게 데려가야 하나 미리부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집에 들고 온 밤을 노려 봤다. 이걸 진짜 먹어 말아? 쥐어 뜯긴 하얀 머리카락 같은 버섯을 샐러드에 넣어 먹을 앙카 가족을 생각하며 그들이 제발 온전하길 바랬다. 아들과 함께 핸드폰에 보이는 사진과 손 위에 든 버섯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앙카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엔 마트에서 사다가 오븐에 구운 밤. 모양이 일정하고 반들반들한 마트 밤. (Photo by Misun Leymet)
파리에서 놀러 온 친구와 우리 집 근처를 걷고 있었다. 친구가 갑자기 주저앉더니 토토리를 들어 올렸다. 슥슥 옷에 문지르더니 어금니로 꼭 깨물어서 속에든 알맹이를 야무지게 먹었다. 어릴 적에 시골에 살면서 이렇게 많이 주워 먹었다며 반가워했다.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면서 나 보고도 먹어보라고 했지만, 독이 든 도토리이면 어쩌나 하는 겁쟁이 멍텅구리 같은 생각이 들어서 사양했다. 장에 나가서 돈을 주고 봉투에 담아온 도토리는 알이 굵고 반들반들해서 껍질을 까면 마치 나무를 깎아 만들어 놓은 것 같이 예쁜 모양의 알맹이가 들어 있다. 친구가 주워 먹은 도토리는 색이 허여멀건 하고, 알맹이가 작고 조금 납작했다. 며칠 전 덩이가 길에서 도토리를 주워왔다.
"엄마, 이거 먹어도 돼?"
"응, 먹어도 돼."
엄마와 함께 집 근처 공원에 가면, 엄마는 바닥을 보고 다니시면서 듣어 먹을 나물이 천지에 널려 있다고 하셨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엄마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아서 엄마의 안경을 빌려 쓰면 보일까 싶었다. 여기 사람들은 이런 걸 뜯어다 먹지 않으니 우리도 뜯어먹지 말자고 하셨다.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공원을 갈 때마다 바닥을 자꾸 보게 된다. 뭐가 먹을 풀인지 자꾸 보면 언젠간 보일까 싶은가 보다.
우리 동네 공원. 저 무성한 풀 중에서 무엇이 먹을거리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Photo by Misun Leymet)
우리 동네에는 동양 사람이 별로 없다. 요즘 집 근처 공원에 가면, 서너 명씩 시장가방을 들고 와서 바닥을 뒤지고 다니는 동양 사람들을 가끔 본다. 프랑스 공원이나 숲에는 고사리가 천지로 깔려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한테만 보였던 먹거리들이 보이는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이렇게 숲으로 찾아다닌다. 하루는 중년의 프랑스 여자가 공원에 핀 민들레 꽃을 꺾는 걸 봤다. 하도 많이 꺾고 다녀서 그 모습이 꽃을 꺾는 모습으로 보이기보다, 밭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집에 가져가서 얼마나 많이 화병에 꽂아 놓으려고 저러나 싶었다.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민들레도 먹을 수 있단다.
두를 친구네 집에서 놀게 데려다 놓고, 덩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라셸이 여름 무더위를 피해서 아이들과 숲으로 가고 있었다. 따라나섰다. 쿠베르땅 숲과는 달리 동네 숲은 길도 널찍하고 탁 트여서 시야도 넓었다. 난 길치여서 숲에서 길을 잃을까 봐, 동네 사람들이 끄떡하면 가서 산책을 하는 그 산에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가봤다. 아이들이 숲길을 따라 오르며, 보이는 것마다 다 참견을 하고 한참 걸어가다 보니 편편한 곳에 다다랐다. 산에서 모은 나뭇가지로 누군가 근사한 오두막집을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당장에 캠핑을 차려도 될 것 같이 근사했다.
친구네 집에서 두를 데려다가 첼로 수업에 바래다줘야 할 시간이 금세 왔다. 조금 더 놀다 가고 싶다는 라셸의 아이들과 라셸을 뒤로하고, 덩이를 데리고 올라오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치인 나를 위해 라셸이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건만, 라셸이 보이지 않자마자 금세 길을 잃었다. 사실, 길을 잃었다기보다, 순간 겁이 나서 눈앞이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정말로 길을 잃을까 싶었다. 결국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걸 포기하고, 바로 보이는 주택가로 빠지는 길로 나와서 덩이를 등에 업고 도로를 따라 걸었다. 남들은 힐링한다고 찾아 들어가는 숲에서보다,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가에서 나는 마음이 더 편했다.
친구네 가족이 놀러 왔다.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난 친구의 남편이, 우리 집 근처에 숲이 있다면서 혼자 나가서 산책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말만 들었지, 난 아직 그 숲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온 친구의 남편은 숲에서 대단한 걸 발견했다면서 입이 귀에 걸려서 사진으로 담아온 장면을 아이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어 했다. 숲 길에서 죽은 여우를 봤다고 했다. 내가 사진을 못 볼 것 같다고 했더니,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선사하는,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이 대단한 광경을 보지 않는 걸 매우 안타까워했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해서 적응을 한다고 몇 주 시간을 흘러 보내고 나면 밤 주우러 다녀야 하는 가을이 온다. 방과 후나 주말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밤을 주으러 숲으로 들어간다. 숲 초입에 이런 글귀가 보인다.
'숲 속 동물들을 위해서 밤과 도토리를 남겨놔 주세요.'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학교 근처 숲에 들어갔다가 온 두가 예쁜 버섯은 독이 든 버섯이니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워왔다. 뉴스에는 산에 가서 버섯을 따다가 나눠 먹고 독이 퍼진 사람들의 기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을을 몇 번 더 보내고 나면, 나도 앙카처럼 버섯 보는 눈도 생기고, 굵은 알밤과 도토리가 떨어지는 적절한 시기에 숲으로 들어가 한 자루씩 주워 오는 날도 오겠지. 고작 동네 숲길에서 더 이상 길을 잃지는 않겠지. 아이들과 함께 가을을 지내며 덕분에 나도 자연과 친해질 기회를 얻는다.
가을, 공원에서 주워온 나뭇잎과 찰흙으로 근사한 단풍나무를 빚어 만든 두와 덩이. (Photo by Misun Leym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