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프랑스 사람들이 물어봤을 때,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단맛과 짠맛을 동시에 즐기는 '단짠'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으로서, 두 맛 중에 무엇을 선호하냐는 물음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나는 음식을 싱겁게 먹는 편이고 단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간단한 이 질문이 매우 복잡하게 들렸었다. 식탁 위 단맛 옆에는 항상 짠맛이 있었으니까. 우리는 생선이 단맛도 내고 짠맛도 내는 멸치 볶음을 즐겨 찾는 민족이니까.
한상 차림으로 식사를 하는 우리 한국 문화에서는 한 식탁에 단맛, 짠맛 등, 다양한 맛이 동시에 올라온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가 먹고 싶은 대로 골라서 먹을 수 있다. 입안에서 모든 맛이 섞인다. 그러나 프랑스의 식사는 아페리티프, 전식, 메인, 후식을 정확히 구분하기 때문에, 매 단계마다 먹는 음식도 꽤 분명하게 구별된다.
예를 들어서, 흰쌀을 전식에도 먹을 수 있고 메인에도 먹을 수는 있지만, 대게 전식에 먹는 흰쌀은 샐러드로 차갑게 먹는 경우가 많고, 메인에서는 리조또와 같이 따듯하게 먹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디저트로 나오는 쌀 요리 중에는 '히 올 레' (riz au lait)라고 하는 매우 달달한 음식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전식이 시작하기 이전에 아페리티프를 한다. 이때에 식전 술을 안주 없이 마시기도 하지만, 올리브, 치즈, 육포 또는 여러 가지 핑거푸드와 감자 칩과 같은 과자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짠맛이 난다는 것이다. 이 중에 단맛을 내는 음식은 전혀 없다. 건포도 같이 단 맛이 나는 마른 과일을 함께 먹기도 하지만 매우 예외적인 예이다. 단맛이 나는 음식은 철저하게 후식에서 먹는다.
한국에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야식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아침, 점심, 간식, 저녁이 있다. 밤문화와 배달문화가 발달한 한국의 야식 메뉴는 제한이 없다. 직접 만들지 않아도, 무엇이든 먹고 싶은 것을 간편하게 언제고 시켜 먹을 수 있다. 입이 심심할 때 하루 중 언제든 과자나 빵, 심지어는 고구마나 분식 같은 것들을 간식으로 먹고, 한 밤의 야식으로 족발이나 치킨 같은 고기류를 즐겨 먹기도 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 사람들은 간식과 식사를 매우 분명하게 구분 짓는다.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는 떡볶이가 간식이 될 수도, 식사가 될 수도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음식을 찾기가 어렵다. 프랑스의 간식은 식사로 대체될 수 없는 것들이고, 대부분 단 것들이며, 절대로 고기가 간식 메뉴가 될 수 없다. 프랑스의 간식 시간은 단것을 먹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프랑스의 아이들은 이유식 시기부터 아침, 점심, 간식, 저녁, 네 끼를 먹는다. 간식 시간은 주로 오후 네시쯤이다. 간식을 건너뛴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우유를 한잔 마신다든지, 쿠기 한 조각을 먹더라도 약간의 요기 정도는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레쉬에 가면 오후 4시 전후로 아이들이 모여 앉아 어김없이 간식을 먹는다. 유아학교와 초등학교의 아이들도 같은 시간에 간식을 먹는다. 학교에 남아 방과 후 활동을 하는 아이들도 이때에는 함께 모여서 간식을 먹는다. 간식 시간이 오기 전이나 이후에 음식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의 경우는 되도록이면 간식을 챙겨 먹는 경우가 많지만 어른들의 경우는 꼭 그렇지는 않다. 먹더라도 거하게 먹기보다는 초코바나 사과 같은 것들로 간단한 요기를 한다.
4시 반*,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과 함께 교문 앞까지 나온다. 선생님들은 아이를 마중 나온 부모의 얼굴을 확인하고 아이를 한 명씩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나는 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간식 가방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 나간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만 해도,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반 친구들과 함께 간식을 나눠 먹고 한바탕 뛰어놀았었다. 운동장에서 한바탕 친구들과 뛰놀고 교문을 빠져나오면 5분 거리의 우리 집에 도착한다. 이제는 동네 또래 친구들과 또 한 번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간다.
항상 같이 노는 주 멤버들이 있다. 옆집에 사는 미국인 남매, 그리고 인도 아이인 아이샤니와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이샤니의 동생 안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고정이다. 우리는 학교가 이웃인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산다. 하교하는 길에, 내 아이들의 반 친구들은 정원에서 놀고 있는 두와 덩이를 발견하고, 참새가 방앗간을 들리듯이 서로 번갈아 가며 들러서 놀다 간다. 루마니아 아이들인 두의 친구 마리아 남매와 곱슬머리 프랑스 아이 엘로이즈가 수시로 들른다. 덩이의 친구 중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혼혈인 멜키오와 동생 오스카도 며칠이 멀다 하고 와서 놀다 간다. 다니엘의 엄마는, 그녀의 회의가 아이들 하교 시간에 걸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미리 아이를 찾아서 데리고 있는 날이 허다하다. 두 집 건너 사는,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활발한 프랑스 친구 델핀이, 아이들 무리를 거느리고 있는 나를 보면 함께 종알대다가 가는데, 그러는 동안 델핀의 아이들인 롤라와 마테오도 아이들의 무리에 합류한다.
우리 아이들과 나에게 4시 반은 이런 시간이다. 친구들과 모여서 간식을 먹고 한바탕, 두 바탕 재미있게 노는 시간. 매일마다 오후 4시 반에 우리는 이렇게 소풍을 한다. 나는 음식을 넉넉하게 해서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 갈 때면 항상 오늘은 또 누가 더 와서 놀고 갈지 모르니 매우 넉넉하게 챙겨간다. 나의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버릇이 되어서 내가 싸간 간식 도시락은 어련히 친구들과 같이 나눠 먹는 것인 줄 안다. 친구들이 달려들어서 나눠 먹기 때문에 자신들이 좀 덜 먹게 돼도, 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고 다음에는 좀 더 넉넉히 만들어 오라고 주문하기도 하고, 간식 통을 들고 나눠주고 다닌다.
아이들 간식으로 배와 바나나가 들어간 케이크와 아몬드가 뿌려진 미니 초코 머핀. (Photo by Misun Leymet)
대부분은 직장이 있는 엄마들이어서 간식을 만들어 오는 수고까지 하기는 어렵다. 간편한 과자나 빵 같은 것들을 사다가 먹인다. 더러는 사과나 바나나같이 껍질째로 먹기 편하거나 쉽게 까먹을 수 있는 것들을 챙겨 온다. 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나는 되도록이면 직접 만들어서 가져가려고 하는 편이다. 갖가지 과일이나 초콜릿이 들어간 갓 구운 빵이나 초코 뉴텔라를 바른 크레프를 해 가면 아이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서 새끼 참새들처럼 순서를 기다린다. 가래떡을 구워서 가져가기도 하고 옥수수를 삶아서 나가기도 하는데, 이런 간식은 내가 한국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 간식에 익숙해져서 인지 내 아이들의 친구들은 떡도 먹고 옥수수도 먹는다.
두와 덩이의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을 따뜻한 옥수수 간식. (Photo by Misun Leymet)
큰 맘먹고 소시지가 들어가고 빵에 설탕을 뿌린 한국식 핫도그를 한 10개 튀겨서 나간 적이 있다. 처음 보는 낯선 음식이었지만 아이들이 게 눈 감추듯 잘 먹었고 엄마들은 어떻게 만드는 건지 레시피를 물었다. 뭔가 대단해 보였는지, 그걸 보고 크리나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직장 다니느라 바빠서 아이 간식 같은걸 만들어 먹일 시간이 없다면서 자신과 아이의 가엾음을 한탄하면서 말이다. 그 뒤로, 특별식으로 간식을 마련한 날은 크리나가 다니엘을 데리고 바쁘게 집으로 돌아갈 때데도 붙잡아서 하나씩 나눠주고 헤어진다. 한참 배가 고플 시간이라서 입이 짧은 다니엘도 내가 주는 간식은 잘 먹는다.
달콤한 크레프와 바닐라 향 머핀. (Photo by Misun Leymet)
다음 날 아이들을 등교시켜야 하는 부담이 없기 때문에 금요일은 아이들을 조금 더 놀게 한다. 같은 마음의 엄마들은 금요일 하굣길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소풍판을 벌인다. 돗자리 대신 잔디 바닥이나 밴츠 같은 곳에 안거나 정원을 서성이면서 서로의 간식을 나눠 먹는다. 눈이 오면 눈을 가지고 놀고,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나가서 고인 물에서 뛰어 논다. 한여름에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서로 물총을 쏘고 놀다 흠뻑 젖어서 들어간다. 커다란 분필을 색깔별로 들고 나와서 주차장에서 랜드아트를 하고, 고학년 언니, 오빠, 누나, 형들도 나오는 날에는 갖가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놀이를 배워서 함께 한다. 너도나도 자전거나 킥보드를 끌고 나온 날은 사이좋게 서로 순서를 정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타고 다닌다. 오늘은 아이들이 정원 중앙에 삽으로 땅을 파고 놀았다. 매일마다 하는 간식 시간이 항상 즐겁다.
프랑스에서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많다. 손님을 초대해서 식사나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가볍게 사람들을 집으로 부른다. 식사 시간을 피해서, 간식 시간에 손님을 초대해서 디저트와 차를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근사하다. 간단한 빵을 만들어서 내놓을 수도 있고, 제과점에서 디저트를 사다가 늘어놔도 간식으로서는 진수성찬이다. 처음 프랑스에 와서 손님을 부르면, 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하겠다고 진을 빼곤 했었다. 그때는 손님이 누가 되었든 간에 돌아가기 전에 뭔가를 제대로 먹여서 보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부담이 컸다. 프랑스의 간식 문화를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이 좋은 간식 시간을 활용할 줄 알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프랑스어로 간식을 구떼(le goûter)라고 한다. 구떼는 또 '맛을 보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한국에서는 누군가에게 맛 좀 보라고 음식을 권할 때 접시 가득 담아주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구떼(goûter) 동사를 써서 맛을 보라고 할 경우엔 그야말로 딱 한 입, 맛을 볼 정도의 양을 권한다. 맛 좀 보라고 하면서 인정 많게 한 접시를 덜어주면 이건 구떼가 아니라고 상대가 거절할 수가 있다. 이런 뉘앙스가 있는 구떼라는 단어를 간식이라는 단어로 쓴다는 것을 이해하면, 왜 프랑스 사람들이 간식을 간편하게 또는 그리 거하지 않게 먹는지가 보인다. 물론 간식 시간에 손님을 초대해서 거한 간식을 먹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가 일상은 아니다. 프랑스인에게 간식이란 일반적으로 오후 4시를 전후로 배가 출출한 시간에 저녁 식사에 해가 가지 않을 만큼 요기를 하는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프랑스의 카페 앞을 지나다 보면 내부는 텅 비어 있으면서 외부에 있는 자리엔 손님이 꽉 들어차 있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한겨울에도 옷깃을 여며 쥐고 노천카페에 앉아서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홀짝 거린다. 함께 온 사람과 마주 보고 앉는 경우도 있지만, 마치 무대를 향해 앉아 있는 관중석처럼, 몸이 밖을 보도록 의자를 돌려놓은 카페들도 많다. 햇볕이 부족한 나라여서 한줄기 햇볕만 비추어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이들은 혼자서든 여럿이든, 이렇게 노천카페에 몸을 맡기고 해를 즐긴다. 나의 눈에 이들은 마치 소풍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내보다는 야외를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들, 어릴 적부터 정원이나 공원에 두런두런 앉아서 간식 시간을 즐기던 이 사람들. 손톱만 한 초콜릿 하나에 소주잔만 한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리며, 그들만의 단출한 간식 시간을 즐기는 멋을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해마다 교육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따라서 유아학교와 초등학교의 등하교 시간에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올해 우리 아이들의 하교 시간은 4시 반이다.
**중학교부터는 아이들이 혼자서 등하교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배웅한다. 학기 초에 작성한 서류에 누가 아이를 데리러 올 지 보호자 명단을 써서 내는데, 아무리 친할머니가 아이를 데리러 와도 명단에 적혀 있지 않으면 소용없다. 예외의 경우 부모는 미리 학교에 통보를 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까지 보호자와 함께 등, 하교를 하지만, 초등학교 고 학년의 경우, 부모의 동의하게 혼자서 하는 경우도 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