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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un Leymet Mar 25. 2021

9월, 새 학기

한 해의 첫인상. (Photo by Misun Leymet)

    조건은 딱 두 가지이다. 세돌이 지났고, 기저귀를 뗐다면 학교에 다닐 자격이 주어진다*. 입학 가정 통신문에 엄포가 내려져 있다 :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는 기저귀를 떼고 오시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저귀를 뗄 때까지 입학이 미뤄질 수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경우도 있지만, 유아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바지에 오줌을 싸는 바람에 집으로 돌려보내진 아이를 봤다. 정말로 가차 없이 돌려보내는구나 싶어서 한 번 놀랐고, 아이가 여지까지 기저귀를 떼지 못한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오줌을 쌌던 아이는 일주일 동안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프랑스는 9월에 새 학기가 시작한다. 따라서 유아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7, 8월은 기저귀를 떼는 달이다. 이때에는 기저귀를 떼었냐는 질문을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두가 유아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같은 크레쉬를 다니던 친구들 얼굴이 속속 보인다. 한 반에 대략 25명씩 두 반이 전부이다. 엄마, 아빠에게 달라붙어 있는 아이들도 있고, 여기저기 널려져 있는 장난감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도 있다. 많은 아이들이 두두**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거나, 손가락이나 두두 끝을 버릇처럼 빨고 있다. 아직도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물고 있는 아이들도 보인다. 아기 테를 완전히 벗지 못한 아이들이 얼떨결에 부모와 헤어져서, 물고, 빨고, 끼고 있던 애착 인형과 함께 담임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간다. 첫날부터 우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수라장 속에서 얼떨결에 보호자와 떨어지게 된다.






    두 번째 날은 첫 번째 날과는 조금 다르다.


    "일어나자, 학교 갈 준비 해야지."

    "난 이미 어제 학교에 다녀왔는걸!"


    아차! 학교에 매일마다, 앞으로 적어도 15년은 다녀야 할 운명이란 걸 미리 알려주지 못했다. 입학을 앞두고, 아이가 학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해 주고 싶었다. 갖가지 방법으로 학교에 대한 설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꿈을 꾸도록 해주었건만, 매일마다 다니게 될 곳이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지 못했다.


    두 번째 날, 많은 아이들이 운다. 고래고래 악을 쓰고 운다. 울다 지쳐 토를 하는 아이도 있다. 그동안 눈물보를 간신히 쥐어 잡고 있던 아이들도 덩달아 울음을 터트린다. 이번이야말로 정말 아수라장이 된다. 매일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걸 오늘 아침 눈을 뜨며 깨닫고 온 아이들이 꽤나 많은 듯하다. 특히, 첫 아이인 경우는 엄마, 아빠도 가슴을 쥐어짠다. 어쩔 줄을 모른다. 경험이 무섭다. 입학을 하는 아이가 둘째인 부모들은 아이에게 학교에 매일 가야 한다는 걸 충분히 설명해 주었으리라.


    아이들을 학교에 들여보내기 전, 아이와 부모는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수없이 속삭이고, 그럴 때마다 다시 한번 끌어안고, 학교가 끝나면 분명 너를 데리러 올 거라는 당부의 말을 거듭하며 간신히 아이와 헤어진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지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애써 커다란 미소를 지어 보낸다. 부모의 눈에는 멀어져서 점만큼 작아진 내 아이밖에 보이지 않는다. 멀어진 아이가 나를 볼 수 있도록 최대한 광대같이 커다랗게 얼굴 모양을 만든다. 첫째들의 유아학교 새 학기 아침 풍경은 상봉했던 이산가족이 다시 헤어져 남과 북으로 돌아가는 모습과도 비길만하다. 그야말로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둘째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의 덩이는 입학과 동시에 매일마다 누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대단한 경호를 받으며, 그야말로 입장과 퇴장을 했다. 쉬는 시간이면 누나와 누나 친구들이 놀아줬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달려와주는 엄마 같은 누나들이 많이 있었다. 덕분에 덩이의 입학과 새 학기 학교 적응은 매우 수월했다. 부모들도 이제는 아이를 다루는데 조금 더 노련해졌다. 첫째들이 매일 학교에 가는걸 1년 동안 봐온 터라, 둘째들은 매일같이 학교에 가는 걸 숙명이려니 받아들인다. 비교적 군소리 없이 학교 생활에 적응한다. 둘째들의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밀어 넣고 교문을 빠져나오며 '  YES'를 외칠 줄도 알게 되었다. 학교가 애들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도 게 되었고, 해방을 맛보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첫째들의 엄마들이 말한다. 입학식 날 우리 아이는 울지도 않고 학교에 잘 들어갔다고. 그러면 둘째, 셋째들의 엄마들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다행이라고 답하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이틑날부터가 진짜라고.






    처음으로 두가 크레쉬에 들어갔을 때, 10명 남짓한 한 반 아이들을 담당하는 두 명의 선생님이 있었다. 매일마다 뭔가를 열심히 만들어 왔고, 운동장이나 정원에서 노는 시간도 많았다. 어린이 집은 나무가 우거진 공원 한가운데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 점심엔 공원에서 소풍을 하기도 했다. 공원 호수에 가서 오리를 구경하고 한 바퀴 산책을 하고 들어온다거나, 한 두 명씩 차례로 선생님이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제과점 빵을 사 오기도 했다. 두는 빵을 사러 나가는 아이로 간택될 때마다 매우 뿌듯해했다. 외출 기회를 얻은 자신이 마치 출장을 다녀오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던 것 같다.


    크레쉬에는 널찍한 미술 수업 교실이나 실내 체육 실도 따로 있었고, 담당 의사나 심리학 전공 상담의가 있었다. 아이의 발당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1시간 동안 갖었던 심리학 상담의와의 대화는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도 입이 벌어진다. 마치 그녀는 의사가 아니라 점술가였던 것 같다. 아이가 커가면서 그녀가 말해줬던 부분들이 아이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모든 교육은 내가 최고급 크레쉬를 선택했기 때문에 누린 혜택이 아니다. 프랑스의 크레쉬는 부모의 벌이에 따라서 등록비가 책정되고, 그 비용도 부모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다. 따라서 무료나, 무료에 가까운 등록비로 이 모든 시설을 누리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등록비는 면사무소나 구청, 시청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크레쉬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얼마를 내고 기관에 다니는지 알지 못한다.






    프랑스에서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맞벌이를 한다. 이곳의 교육 환경은 그들이 맞벌이를 하면서 충분히 아이를 케어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2018년 유럽 국가 중에서 출생률 1위를 찍었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셋 이상의 다자녀를 둔 가정도 적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크레쉬, 유아학교, 초등학교의 등, 하교 시간표는 프랑스 부모들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다. 나의 경우는 전업주부로서, 시간적 제약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정규 수업만 받게 하지만, 원한다면 아이들이 하루 종일 학교에 머물 수 있다. 학교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아이들은 아침 7시 반에 등교를 하여 저녁 6시 반까지 있는다. 정규 수업 이외의 시간에는 다양한 특별 활동이나, 숙제 지도를 받는다. 크레쉬에 다니는 생후 2개월짜리 아주 어린아이들부터 초등학교까지의 아이들이 이렇게 기관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이유는, 부모들이 프랑스 교육 기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등, 하교를 동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부모들은 하교 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아이들을 찾으러 오고, 여의치 않은 경우, 조부모나 보모 등 대리인이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선생님들은 늦는 부모들을 오래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만약 10분 이상 지각을 한다면, 아이는 다음 일정으로 자동 인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칙상, 부모의 허락이 있지 않은 한, 아이가 혼자서 학교 앞을 서성이고 있을 수는 없다. 이쯤이면 프랑스의 사회 시스템이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회사는 아이를 찾으러 가는 부모를 붙잡을 수 없다.


            




    첫 아이가 처음으로 크레쉬를 가던 날부터 매년, 새 학기가 시작하는 첫날에는 등교 전에 꼭 사진을 한 장 찍어줬다.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시어머니는 새 학기가 되면 새 가방을 메고 처음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꼬박꼬박 남겨놓으셨다고 했다. 곰돌이 가방을 메고 있는 어린 남편의 모습부터, 찍기 싫은데 엄마가 찍으라니 대충 서있는 다 큰 청년의 모습까지 남편의 성장기가 매년 입학과 개학날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 아이들의 개학식 날 사진도 한 장 한 장 모이고 있다. 처음 두가 기저귀를 차고 얼떨결에 크레쉬에 다니던 날부터, 두두를 세상 소중하게 끌어안고 유아 학교에 입학하던 날, 벌써 초등학생이 되어서 엄마, 아빠를 가슴 찡하게 했던 모습, 친구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져서 개학식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 무리와 어깨동무를 하던 모습까지. 그리고 침 흘리게 덩이가 누나를 쫓아 학교에 들어가던 모습,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누나를 따라서 덩달아 산 커다란 사각형 가방을 종아리까지 늘어지게 매고 등교하던 모습, 사내아이라고 친구들을 만나면 안녕이라는 인사 대신, 서로 격투기 자세를 취하던 모습까지. 아이들의 개학식과 새 학기 모습이 고스란히, 마치 그 사진 속 모습이 아이가 살아갈 한 해의 첫인상처럼 사진 속에 박혀있다.









*12월 생에 한하여 부모가 원하는 경우, 3돌이 지나지 않았어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애착 인형 또는 애착 인형의 역할을 하는 옷이나 첫 조각 같은 물건. 유아학교 첫 학년에는 학교에 애착 인형을 들고 오는 것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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