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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un Leymet Apr 10. 2021

일 년짜리 루틴이 컬처가 되는 이야기.

    두가 유아학교 마지막 학년 때, 나는 담임 선생님께 세 번 불려 갔다.


    "두가 알파벳 중에 모르는 글자가 의외로 많아서 조금 놀랐어요."

    "특별한 문제가 있다는 말씀은 아니신 거네요, 선생님? 그렇다면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께 같은 이유로 세 번 불려 간 엄마치고 나는 교육열이 꽤 높은 엄마이다. 의무교육을 포함해서, 크레쉬를 시작으로 대학 졸업까지 학업을 이어간다고 하면, 우리 아이들이 적어도 20년 이상을 학교라는 곳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교육열이 높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만들어진 이 사회 시스템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아이들이 이 소중한 시간을 능동적이고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시기의 삶이 학창 시절의 삶으로 일단락되지 않고, 그들의 미래에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시기이기를 바란다. 대학을 졸업한 시점에 선 나의 아이들의 현실이 막막해지지 않기 간절히 바란다. 넓은 세상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






    이미 한번 글을 배우면 이제 더 이상 평생 동안 글을 모르고 살 수는 없다. 인생에서 글자를 읽지 못하는 시기는 매우 짧다. 글을 모르는 나의 아이들은 세상을 모양과 색, 소리와 냄새, 촉감으로 기억했다. 나는 아이가 세상을 이렇게 온몸으로 느끼고, 그것을 여러 가지 감각 언어로 표현하길 바랬다. 글을 모르는 아이는 사물의 이름을 읽기 전에, 사물을 묘사하고 관찰하고, 열심히 느끼며 탐구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두가 드디어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2학기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숙제만 간신히 시키는 엄마였는데, 그것도 실은 탐탁지 않았다. 방과 후 나의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놀았다. 나는 아이를 내 옆에 붙여놓고 닦달하며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재미있어서 스스로 하길 바랬다. 어떻게 하면 국어 공부를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써보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렇게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맞춤법이 엉망이었고, 내용도 얼토당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칭찬과 응원만 해줬다. 온전히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스스로 즐겁다고 느껴지는 일에 아이가 빠져들도록 나는 잠자코 있었다. 지금 2학년인 아이는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나는 아이를 교과서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대신, 아이에게 좋아하는 책을 고를 기회를 줬고, 글을 쓸 기회를 툭 던져 줬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했던 아이는 글로 상상한 것을 써내려 가는 것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음악으로 기분을 말할 줄 알던 아이는 글로도 자신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나의 어릴 적을 기억해보면, 매년 설날과 추석에 외할머니댁에 갔었다. 매년 먹던 음식을 먹었고, 매년 하던 놀이를 했고, 매년 보던 얼굴을 봤다. 그렇지만 그날만 먹던 음식이 있었고, 그날만 하던 놀이가 있었고, 그날이 되어서야 모두가 모일 수 있었다.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송편을 먹었고, 처박혀 있던 윷을 끄집어냈다. 9남매인 외가댁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이기도 했다. 명절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명절 끝, 캄캄해진 기와집 앞에는 아홉 남매의 차가 줄지어 서 있었고, 트렁크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농사지으신 쌀 가마니와 직접 수확하신 배추로 담으신 김치가 산을 이루어 쌓여 있었다. 시골에서 돌아올 때마다 어린 나의 마음이 따뜻하게 풍요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컬처이다.


    앞서 나는, 나의 아이들이 1년 동안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소개했다. 만우절에 물고기를 달고, 이가 빠지면 쥐가 물어가고, 부활절에는 초콜릿을 찾는다. 10월에는 밤을 줍고, 할로윈 데이에는 사탕을 동냥하러 다닌다. 이 일을 아이들은 매년 반복한다. 마치 나에게 매년 설날이 다시 왔던 것처럼 나의 아이들에게는 새 학기가 오고, 크리스마스가 오며, 방과 후 간식시간이 온다. 무심히 지나가려면 별일 없이 지나갈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이 이 날들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지내길 바란다. 그렇다고 유난할 것도 없다. 상황을 만들어 주면, 아이들은 제 스스로 제법 능숙하게 그 날을 반짝이게 만든다. 나는 아이들에게 잘하는 것이 아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준다. 대신, 재미있으면 된 거라고 말해 준다. 재미있어서 하는 아이를 막을 도리는 없다. 글눈이 늦게 트인 두가 초등학교 1학년에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재미있어서, 하고 또 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컬처'라는 단어의 어원에 '경작'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경작한다. 내가 경작한 땅에는 아이들과 함께 일궈낸, 그들의 어린 시절의 루틴이 거름이 된다. 그리고 그 땅에 그들만의 문화가 뿌리내린다. 이렇게 자신들의 유년 시절을 문화로 만들어 낸 아이들이라면, 나는 그들이 성인으로 자라 그 무엇이 되어 있어도 근사한 사람일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뿌리가 단단한 아이는 자존감을 키워나가면서, 분명 행복이라는 열매를 거둘 테다. 그들은 삶을 스스로 꾸러 나가는 법을 배웠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법을 이미 배웠다.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지루한 루틴으로 치부하지 않고, 의미롭게 살아나가는 훈련을 받은 아이들이다. 깊게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서서 자신의 삶을 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아이들의 미래가 그들의 루틴에서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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