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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un Leymet Mar 09. 2021

만우절

물고기가 풍년인 만우절,뿌아쏭 다브릴!(Photo by M.L.)

    곧 만 5살이 되는 우리 덩이는 시계를 볼 줄 모른다. 식사 시간마다 지금이 아침 식사인지, 점심 또는 저녁 식사 인지를 묻는다. 그러면 잠자는 시간 전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놀 수 있는 지를 가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누나와 재미있게 노느라 뒤늦게 식탁에 앉으면서,


    "엄마, 우리 지금 저녁 먹는 거야?"라고 물을 때가 더러 있다.

    "아니, 이제 아침 식사하는 거야."

    "너무 재미있게 노느라 하루가 벌써 다 간 줄 알았어."


    시간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일까? 지금 이 순간, 오롯이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태어나서 꽤 오랫동안 시공을 초월하며 사는 것 같다.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을 설명하며, '아주 옛날에'라고 운을 뗀다. 아이가 언제 적 일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인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머릿속의 먼 기억을 한참을 헤매어야 할 때가 있다. 사진 속, 근경에 찍혀서 커다랗게 나온 자신과, 원경에 있어서 작게 나온 아빠를 보면서, 자신이 아빠보다 컸던 적이 있는 줄로 안다.






    유아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동요로 요일을 배운다. 일곱 개 밖에 없는 요일 이름이 노래와 함께 수시로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해를 하고 부르는 건지, 외워져서 입에서 절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도 잘 불러서 알고 부르는 것인 줄 알고 오늘의 요일을 물러보면 답은 구만리에 가서 찾고 있다. 유아학교 두 번째 학년이 되면, 아침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그날의 요일과 날씨 같은 것들을 발표한다. 아이들은 막연하게 불러대던 요일의 명칭을 자신의 삶에 대입시키기 시작한다. 어제는 화요일이었고,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무슨 요일일까? 답이 이미 뻔해진 힌트를 줘가며 알아맞히길 구걸한다. 유아학교를 3년째 다니면서 그렇게 매일마다 요일 노래를 불러대도, 목요일 다음이 무슨 요일인지 자동으로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아이들은 이렇게 일주일이 흘러감을 요일에 대입시키면서, 천천히 하루의 시간을 가늠하는 법을 배운다. 또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1년을 기억한다. 수요일이 화요일보다 먼저 있지 않고, 월요일 다음은 꼭 화요일이 오듯, 일 년 중에 내 생일이 누나 생일보다 먼저인지 나중인지,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내 생일이 지나고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시간은 똑딱똑딱 잘도 간다. 한 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기억하고 싶고, 다음 해에도 또 왔으면 좋겠는 재밌는 날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난다. 만우절 다음은 부활절, 그리고 부활절이 지나면 곧 두의 생일이 온다. 그리고 좀 더 오래 기다리다 보면 여름 방학이 온다. 그렇게 날씨가 매우 더워지면 덩이의 생일이 곧이라는 뜻이다. 두와 덩이는 이런 방식으로 시간을 손꼽는다. 손꼽는 날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의 1년은 재미있는 기억으로 풍성해진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프랑스 온 국민이 자가 격리 조치가 취해진 와중에 우리는 만우절을 맞이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우리끼리 맞는 만우절이지만 모른 척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4월 1일, 거짓말이 아직 낯설고, 농담이 어설픈 어린아이들은 만우절 날에 물고기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 등에 몰래 붙이고 다닌다. 만우절을 '뿌아쏭 다브릴'이라고 하는데, 뿌아쏭은 물고기라는 뜻이고, 다브릴은 '4월의'라는 뜻이다. 물고기가 귀했던 시절에 4월에는 고등어가 많이 잡힌다고 해서 '4월의 고등어'라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추측일 뿐 분명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1564년, 프랑스는 1월 1일을 새해의 첫 날로 지정하였다. 카톨릭 문화권을 중심으로 이미 1월 1일은 새해의 첫날로 정식화되어가고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샤를르 9세는 이 날을 새해의 첫 날로 정식 선포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전국으로 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월 1일이 공식화되기 이전에는 지역에 따라서 크리스마스나 성모 영보제*가 열리는 3월 25일, 또는 봄의 시작으로 보았던 부활절 즈음을 새 해의 첫날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처럼 그 당시 프랑스에서도 새해 선물을 서로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날짜 개념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해를 전후로 여러 날, 또는 여러 달에 걸쳐서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4월 1일, 즉 봄이 오기 전까지 계속되곤 했다. 1월 1일이 새해로 정해졌다는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이나 그동안의 관습을 쉽게 고치려 하지 않던 사람들은 여전히 4월 1일까지 선물을 주고받았다. 변경 사실을 알았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약 올리기 위해서 4월 1일 날 가짜 새해 선물을 주며 골탕을 먹였던 것이 오늘날의 만우절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또한 여러 가지 추측 중에 하나이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가설이라고 한다.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데 집에서 4월의 물고기를 원 없이 만들어 보자. 아침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물감과 도화지를 꺼냈다. 최근에 아이들이 구독하는 잡지책에서 물고기 장난감을 본 적이 있다. 만우절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물고기 모양이니까 한 번 만들어 봐도 좋겠다. 플라스틱 통과 조개껍데기 등을 한 상 가득 차렸다. 물고기를 종류별로 그리고 물감으로 색칠을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걸어놓을 수 있도록 클립을 끝자락에 꽂았다.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오려서 만든 만우절 물고기. (Photo by Misun Leymet)



    1.5리터 플라스틱 물통을 자르고 예쁜 금박 종이를 씌웠다. 지느러미도 만들어 붙여서 입을 크게 벌린 물고기를 만들었다. 물고기 주둥이 쪽에 실에 매달린 조개껍질이 덜렁거린다. 몸통을 붙잡고, 실에 매달린 조개가 물고기 주둥이 속으로 들어가도록 물고기를 연신 흔들어대다 보면 그게 뭐라고 한참 재미있는 시간이 흘러간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두가 만든 물고기가 인어공주보다 아름답다. (Photo by Misun Leymet)


덩이가 만든 물고기는 여백의 미가 있다. (Photo by Misun Leymet)



    대단히 재미있었는지, 어린아이들이 하루 종일 만든 물고기가 풍년이다.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 가족 넷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서로의 등짝에 물고기를 몰래 달았고, 키가 작은 막내가 달아준 물고기들이 엄마 아빠의 엉덩이에 꼬리처럼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아이들이 등에 물고기를 달면, 모르는 척 있다가, 잠시 후 얼떨결에 발견한 척을 한다. 그러면 '뿌아쏭 다브릴'이라고 아이들이 외친다. 저녁 내내 아이들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계속해서 들렸다.


    "뿌아쏭 다브릴! 뿌아쏭 다브릴!"





    

    만우절이 지나갔다.

    "두의 생일은 얼마 남았어?"라고 덩이가 묻는다. 물음에서 덩이의 1년 단위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곧 부활절이 올 거고 부활절이 지나면 두의 생일이 올 거야."

    "부활절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2021년 4월 1일, 만우절이 돌아왔다. 오늘이 만우절인 줄로만 알고, 특별한 준비 없이 학교에 갔던 두는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가위, 종이, 테이프를 챙긴다. 오후 수업을 받기 위해 학교에 돌아갈 때 가져갈 물건들이다. 여분의 종이와 테이프가 모자라서 반 친구들과 원하는 만큼 물고기를 붙이고 다니지 못한 모양이다. 아침에 아이들이 선생님 등에 물고기를 붙인 일을 말해주면서 재미있어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두는 물고기를 그려서 만드느라 바빠서 아직 선생님 등에 붙이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두와 함께 프린트해서 오린 만우절 물고기들. (Photo by Misun Leymet)



    덩이 반의 보조교사 선생님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함께 식사를 한 담임 선생님은 접촉자로 분리가 되었다. 두 선생님을 대신해서 임시 교사가 와 있었지만, 주말이 지나면 어차피 프랑스의 모든 학교가 다시 한번 폐쇄되기 때문에 일찌감치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두를 데리러 가는데, 덩이의 같은 반 친구 디미트리를 마주쳤다.


    "왜 학교에 오지 않았어? 오늘 학교에서 만우절 물고기 만들어서 붙였는데."

    "상관없어!"


상관없다면서, 매우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덩이가 뒤돌아 나를 보며 말한다.


    "엄마, 학교에서 만우절 놀이를 할 줄 몰랐어."


알았다면, 학교에 갔을 텐데 아쉬워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방과 후에 두를 데리러 가면, 학교에 갔던 덩이의 몇몇 친구들도 함께 하교하는 시간이다. 그때 맞춰서 친구들 등에 붙일 물고기를 만들어 가자고 했다. 만우절 물고기는 집으로 돌아온 방과 후에도 계속되었다. 정원 한쪽 구석진 곳에 모여 앉아서 엄마들 등에 붙일 물고기를 그린다.


    만우절은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두가 평소보다 4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두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엄마가, 물고기 오리려면 일찍 일어나서 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일찍 일어났지."


어제 자기 전에 두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겠다며 물고기를 오리고 또 오리던 중이었다. 두와 덩이는 이렇게 매년 만우절 이야기를 쌓아간다.



두의 아보카도 식물에도 만우절 물고기가 붙어있다. (Photo by Misun Leymet)









*성모 영보제는 프랑스어로 Annonciation [ 아농씨아씨옹]이라고 한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처녀의 몸이었던 마리아를 찾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고 고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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