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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un Leymet Mar 09. 2021

프랑스 빠빠, 한국 엄마

공감들 하시나요?

     나는 프랑스에서 사는 한국 엄마이다. 한국 사람들은 내가 프랑스식 육아를 한다고 할 테고, 프랑스 사람들은 나를 보며 한국에선 저렇게 하는구나 싶다.


    프랑스어 표현으로 비추어 보면 한국은 동아시아이기보다 극동아시아이다. 극동, 즉 지구의 반대편, 프랑스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나라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에 비해, 우리에게 프랑스는 그래 봐야 서유럽, 우리는 그들을 '극서 유럽 사람들'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이들이 우리에게 느끼는 거리에 비해, 우리에게 프랑스는 그리 멀지는 않은 듯하다. 나는 이 두 거리를 두고 저글링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나의 육아 방식은 과연 이 두 사이 어디쯤 위치하는 걸까?


     남편과 아이들 교육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찰떡궁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막상 실생활에서 닥치는 소소한 상황들을 마주할 때면, 그도, 나도 당황스러운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차이가 나서 참 다행이기도 하고, 차이를 조율하려니 애를 먹기도 한다.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히려는데 아기가 운다. 빠빠*, 우는 아이의 눈을 침착하게 바라본다. 애써 가라앉힌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설명해주며 발가벗은 아이의 몸을 쓰다듬어 준다. 그는 아이가 안심하길 바라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울음을 그치기를 기대한다. 엄마, 말도 못 하는 아기가 얼마나 추우면 울까 싶어서 우선 후다닥 옷부터 입힌다. 엄마는 말이 없다. 엄마 눈에 애는 추워서 우는 것 같은데, 빠빠는 파르르 떠는 애를 옷은 입히지도 않고 덜덜 떨게 만든다. 빠빠 눈에 엄마는 애가 우는데도 안심시킬 생각은 않고 무작정 옷만 입히고 있다.






    아이가 편식이 심한 편이고 변비가 있다. 여느 때와 같이 빠빠가 여유롭게 자신의 식사를 마무리하는 동안, 아이는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며 먹고 싶은 것만 간신히 골라 먹는다. 그걸 바라보는 엄마의 밥은 매번 뒷전이다. 식은 밥이 문제이랴. 아이의 편식과 변비를 고치고자 하는 맘이 앞선다. 조금이라도 이것저것 먹여보고 싶다. 아이 곁에 달싹 붙들고 앉아서 숟가락으로 떠먹여 준다. 조금만 더 챙겨주면 그래도 애가 밥을 더 잘 먹는데, 저렇게 그냥 놔두면 편식은 어떻게 할 거며, 변비 때문에 화장실 가는 시간이 때론 고통인 아이를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그러나 그는 말한다. 서툴더라도 혼자서도 얼마든지 숟가락질을 할 줄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는 것은 좋은 버릇이 아니다. 생활이 무조건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다. 편식이나 변비를 고치는 것이 좀 늦어지더라도 우선 식사 예절을 가르치며, 가족 모두가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빠빠가 아침 식사로 시리얼을 먹는 날, 아이는 아침을 두 번 먹는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아침 식사를 시리얼로 대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구나 시리얼이나 빵을 조식으로 먹는 문화 속에서 자란 이 프랑스 남자에게 더더욱 문제 될 것은 없다. 아이가 시리얼을 찾으면 남편은 그릇에 담아주며 아이의 식사를 열심히 챙긴다.


    나에게 시리얼은 과자일 뿐이다. 프랑스에 와서야 처음으로 아침 식사를 시리얼로 먹어본, 토종 중에 토종 한국인이다. 유치원에 가는 아이에게 달걀과 과일을 더 챙겨서 먹여 보내고 싶고, 밥에 김이라도 싸서 먹여야 속이 든든할 것 같다. 빠빠가 고르는 시리얼은 더구나 건강 위주보다는 맛 위주로 고른 것들이라서 나에겐 눈살 찌푸러지게 다디달다. 아빠의 시리얼을 후식으로 먹더라도 우선 밥부터 먹여놔야 나의 직성이 풀린다.


    애가 아침을 균형 잡히게 잘 먹도록 아빠가 시리얼을 좀 자제해 주면 아이의 식습관 교육에 도움이 될 텐데, 아빠에게는 쉽지 않다. 내가 아침에 시리얼을 먹기 힘든 만큼, 그에게는 아침부터 밥알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이 쉽지 않다. 아무리 한국 엄마라지만 변비가 있는 아이에게 변비에 좋지 않은 흰쌀밥에 짠 김만 너무 먹이는 건 아닌가, 그의 고개가 갸우뚱한다. 엄마는 어쩌면 밥을 신앙 할런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뭔가를 해달라고 한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무얼 해달라고 한다. 빠빠, 무조건 바로 해주지 않는다. 그럴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러 살짝 뜸을 들이기도 한다. 금방 해주면 끝이 날 간단한 것일 지라도, 빠빠는 자신이 하던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아이가 우선 기다리길 바란다. 일을 마친 후에야 아이를 도와준다. 엄마, 즉각 즉각 들어준다.


    아이가 해달라는 것이 별것도 아닌데, 아직 어린아이의 요구를 바로 들어주지 않으니 아이가 한 소리를 또 하고, 또 하다가 결국엔 징징거리게 만든다. 기다림을 배우도록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엄마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어릴 때에는 욕구 해소가 금방금방 되는 것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더 중요하다.


    그, 상대방을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아이가 많이 컸다. 아이를 너무 어리게만 보는 것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한다. 내가 하던 것을 매번 그만두고 아이가 원하는 것에 무조건 즉각적으로 답을 해 줄 수는 없다. 부모 또한 자신의 일상을 살 권리가 있다. 아이가 상대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일종의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위해 기다림을 배우는 훈련이 될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 만화 속 주인공 트로트로가 아빠의 넥타이를 모아다가 주렁주렁 허리에 매고 유도 챔피언 선수 놀이를 한다. 트로트로처럼 해보고 싶은 아이가 넥타이를 찾는다. 나는 아빠 넥타이를 몽땅 꺼내다가 묶어준다. 아이가 재미있어하니 뿌듯하다.


    넥타이는 정장에 말끔하게 차려입을 때 쓰는 아빠의 개인 물건이다. 낡아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넥타이라면 몰라도 함부로 다룰 물건이 아닐뿐더러, 그게 무엇이든 남의 물건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남편이 보기엔 내가, 아이가 물건을 함부로 다루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엄마는 기준이 조금 다르다. 굳이 위험하거나 값비싼 것만 아니면 좀 망가지더라도 삶의 모든 것이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장난감이고 교구이며, 경험의 재료들이다. 하지 말라고 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주변에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주변에는 아이들이 만지면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요거트를 먹다가 아이가 통에 손을 넣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얼굴에 바른다. 빠빠, 요거트는 숟가락으로 떠먹는 거라고 가르친다. 먹는 걸 가지고 시도 때도 없이 장난을 치는 건 좋은 식습관이 아니다. 엄마, 이미 식사를 어느 정도 마쳤으니 가지고 놀다가 아이를 욕조에 풍덩 넣어놓고 씻기면 될 일이다. 온몸에 바르거나 말거나 마냥 재미있게 놀면서 오감 체험 학습을 하는 아이에게 더 적극적으로 호응해 준다.






    아이를 데리고 셋이 놀이터에 가기로 한다. 빠빠는 놀이터에 가서 아이와 재미있게 놀다 올 것을 상상한다. 아이를 들어 안고 한 걸음에 놀이터에 도착한다. 놀이터에서 누구보다 신나게 놀아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다.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엄마, 놀이터를 목적으로 나오긴 했으나, 아이가 놀이터에 가는 길에 돌멩이도 가지고 놀고, 꽃 냄새도 맡아가며 늦장을 부리는 것에 개의치 않다. 호기심을 키우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느라 결국 놀이터까지 가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렇든 저렇든 아이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된 것이다.


    엄마에게 놀이터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고, 빠빠에게 놀이터는 목적이다. 엄마와 함께일 때는 놀이터에 가는 길이 재미있고, 빠빠와 함께일 때는 놀이터에서 놀 때가 재미있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마냥 예뻐서 마주 앉아 웃고만 있을 줄 알았다. '육아 전쟁'이라는 말을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는 우리도 마냥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연애와 결혼을 거치면서 9년 만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는 그동안 거짓말처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첫 아이의 출산과 함께 이런 우리가 치열해졌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나고 자랐다. 따라서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더 쉽게 인정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상대에게서 찾고 탓하기보다,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빠빠와 엄마가 된 우리는 더 이상 상대의 다름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남편에게 싸움을 걸었고, 남편은 지쳐갔다. 프랑스 빠빠, 한국 엄마, 우리 중 누가 맞고 누군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내 방식을 고수하고만 싶었다. 우리는 많이 웃는 만큼 참 많이 울었고, 행복한 만큼 지쳐갔다.


    우리의 육아는, 여느 초보 부모들과 다를 바 없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아빠를 '빠빠 (le papa)'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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