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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Nov 18. 2021

어떤 손은 날 무너지게 해

  한 아주머니가 사람들 틈을 우악스럽게 비집고 편한 자리에 골라 섰다. 사람들은 뒷걸음치며 비난의 신음을 내었다. 나도 그녀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나는 저렇게 뻔뻔하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열차는 터널을 빠져나와 햇빛을 받으며 달렸다. 창문 너머로 파란 하늘과 녹음이 우거진 풍경이 보였다. 낮이 긴 여름이라 퇴근길 창 밖은 맑고 시원한 색으로 차 있었다.

  나는 풍경을 보기 위해 창 쪽으로 뒤돌아 섰다. 그러자 내 옆에 서 있던 그녀도 나를 힐끔 보더니 뒤돌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유리창을 넘어 읽고 있던 책을 비췄다. 내 옆의 그녀가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또다시 힐끔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늙고 통통한 손을 이리저리 햇살에 비춰 보았다. 힘줄이 솟아있고 검버섯이 듬성듬성 퍼져있는 손이었다. 그녀가 곁눈질로 보았던 건 책 읽는 모습이 아닌, 고생 한 번 하지 않아 보이는 하얗고 가느다란 내 손이었을까.

  문득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엄마가 생각났다. 뼈마디가 굵어지고 검버섯이 서서히 피어난 손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속상해하던 나의 엄마. 갑자기 나는 내가 몹시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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