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워킹맘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이 참 좋았다.
집 앞에 있는 동물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동물에게 먹이도 주고, 하루종일 구경했다.
조련사나 사육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나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아기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말을 할 수 있고, 대화가 그나마 통하는 어린이 정도가 아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친구의 아기는 예쁘다. 이건 어느 정도 관계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모르는' 혹은 '나와 관계가 없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과거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보겠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저학년 때쯤 일로 기억하는데, 교회에서 놀다가 유치원생 언저리쯤 된 아이가 갑자기 먹던 간식이 맛없다고 떼를 썼다.
나는 그 아이의 행동이 참 싫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함께 놀던 친구 중 한명은 그 유치원생에게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면서 자기 손에 그 간식을 뱉게 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어른스러워 보이고, "저렇게 아이들을 품어주는게 성숙한거구나"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아기나 어린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들이 싫다고 하면 은근히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것 같아서 말도 못하고, 그래서 더 애들을 좋아해보려고 노력도 해봤다.
내 스스로는 절대 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친구들에게 이끌려 교회의 탁아부나 유치부 봉사를 몇년 간 해봤다.
역시 아기는 별로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기하게 초등학생들은 의외로 귀엽고, 정이 들기도 했다.
서론이 길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생각에 참 모순이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가 동물을 너무 좋아하니까 "너도 아이 없이 동물만 데리고 살거냐"고 물으면, "아니요. 저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아이도 둘셋은 낳고 동물까지 함께 살면 더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결혼은 하기 싫은데 아이는 낳고 싶다는 여자들이나 남녀를 불문하고 후손을 꼭 봐야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한스럽게 느껴지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 역시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들이 볼 때 '정상범주에 있는' 가정을 꾸리려면 아이를 낳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기왕 낳기로 결심했으면 하나보다는 둘셋이 낫다고 생각했다. 외동이었던 나는 항상 형제자매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기 때문에.
그런데 아이를 둘셋씩이나 낳으면 좋겠다던 마음은 정작 내 경력이 쌓여갈수록 "아기가 싫다"라는 마음으로 회귀해갔다. 그리고 아기가 싫다는 마음보다 생기지도 않은 아기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내가 어떻게 다져온 길인데",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려면 지금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를 바라는 남편에게 드는 미안함과 "나는 모성애 따위는 정말 없는 것인가? 그런게 왜 꼭 있어야 하는가? 없으면 나쁜 사람인가?"라는 복잡함(내 몸에서 사람이 나온다는 게 솔직히 좀 징그러워서), 나만 빼고 모두 다 "나의 아이"를 기다리는 것 같은 야속함과 내 사정 따위는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원망, "왜 이런 걱정은 나만 해야 하는가"라는 불편함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서 나를 짓누른다.
'여성권리', '경력단절', '독박육아', '모성(애)'
나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구태여 구분하는 것 같은 이런 표현들이 싫다.
그런데 막상 나도 임신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왜 '여성'이 이런 고민을 하는지, 사회적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은 아닌지, 내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기를 낳으면 결국 맞벌이를 하면서도 내가 '독박'쓰는건 아닌지, '부성애'도 있을텐데 왜 양육의 역할은 꼭 '모성애'의 역할로 강요되는지 같은 고민이 든다.
큰일이다.
+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아니 5년 뒤라도
나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