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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16. 2022

우리 가족 올레 20코스 완주기

김녕, 월정해수욕장, 행원포구, 좌가연대, 평대리, 뱅뒤길, 세화오일장

오늘은 오랜만에 하늘이 맑았다. 바람도 잔잔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목요일에 이어서 올레 20코스를 끝까지 걸어보기로 계획했다.

혹시나 아이가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7살짜리 아들도 "잘 걸을 수 있다"라고 며 올레길 탐험을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두 번 째 올레길 트레킹을 시작했다.

우리의 오늘 도전 거리는 모두 16.1km.

김녕해수욕장부터 성세기 태역길을 지나 환해장성과 김녕 국가풍력단지, 그리고 월정 해수욕장을 거쳐서 행원포구, 좌가연대와 한동 해안도로, 계룡동과 평대 해수욕장, 뱅뒤길과 세화오일장을 지나서 제주 해녀 박물관까지 올레길 20코스를 완주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오전 10시 10분부터 김녕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올레 20길 걷기를 시작했다. 이 길은 제주 북동쪽 에메날드 빛의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길이었다. 오래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걷고 싶었던 그 길. 결코 짧지 않은 코스였지만, 아내와 아이와 함께 꼭 한 번 완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김녕해수욕장과 성세기 태역길
성세기 태역길 풍경

하얀 김녕해수욕장을 지나니 성세기 태역길이 나타났다. 태역은 잔디를 일컫는 제주어로, 이 지역은 고운 모래와 잔디가 이어지는 길이었다. 오늘은 물결까지 잔잔하여 맑은 바닷속 풍경과 함께 모래와 검은 돌이 어우러진 최고의 모습을 눈으로 담을 수 있었다. 올레길 표시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앞으로 향했다. 

30분 정도를 걸으니 바다를 감싸 안은 환해 장성이 나타났다. 제주도 전역에 쌓아 올린 이 장성은 길이가 무려 120km나 된다고 한다. 고려시대 진도에 있는 삼별초 방어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삼별초가 제주로 거점을 옮기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삼별초가 다시 이것을 외부 방어용으로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환해 장성과 함께 거대한 해상 풍력 발전기가 나타났다. 이 지역은 제주도의 북쪽 끝으로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많은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서 올레길의 벗이 되고 있었다. 가는 길에 투명 카약을 타고 바닷가를 체험하는 곳도 보였다. 아들이 나중에  꼭 한번 타보자고 말했다. 올레 풍경 속에 빠져 어느 정도 걸으니 20코스에서 5km 정도가 지났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해상풍력연구단지와 환해장성
올레 20길 5km 구간

여기서 월정마을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밭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당근과 마늘 밭이 이어지고 있었다. 검은색 돌담 사이로 초록색 당근밭이 펼쳐지는데, 정말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소박한 밭들 사이로 펼쳐진 모래길을 조금 더 걸으니 월정  마을과  예쁜 해수욕장이 나왔다. 월정 해수욕장은 바람 강하고 파도가 좋아서 서핑족들이 많이 찾는 해수욕장이었다. 그리고 바다 풍경아름답다 보니 주위에 예쁜 카페들이 바닷가 근처로 줄지어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아이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사진 한 장을 남겼다. 바다 오른편에는 가운 날씨에도 서핑을 하는 몇몇 사람들도 보였다. 이 시점이 올레 20길의 7km 지점으로, 1/3 정도 되는 위치였다. 이제 남은 거리는 약 10km. 3~4시간 정도만 더 걸으면 될 듯해 보였다.

월정리 가는 올레길
월정해수욕장
저 멀리 서핑하는 사람들

월정해수욕장을 지나서 20분정도를 더 걸으니 행원포구의 광해군 기착비가 나왔다.  광해군이 폐위 후에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태안을 거쳐서 병자호란 다음 해인 1637년에 제주로 보내졌고, 맨 처음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했다. 1637년 6월 6일에 이곳에 도착했고, 배에서 내린 광해군은 그제야 자신이 제주도에 왔는 것을 처음 알고 놀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광해군은 제주에 와서 약 4년 4개월 정도를 지내다가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당쟁의 와중에 희생양이 된 임금 광해군. 이제서야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역사의 그날을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석 옆에는  올레 스탬프 있었 아이가 상당히 지쳐보여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8.3km 지점으로 전체 코스의 중간 정도의 지점이었다.

광해군 기착비

바로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아이가 걷는 것이 힘이 들었는지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열심히 걸어보았지만, 보조를 맞춰서 걷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여기를 지나면서 해안까지 약 4km 정도는 주택가도 없이 과 들로만 이동을 해야 하기에 더더욱 힘든 길이었다. 아이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나와 아내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길이 이어지면서 는 이들이 적적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좋은 명언들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의 투정으로 그런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아이를 챙기며 앞만 보고 걸 수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내가 아이를 업다. 은 상태에서 아이와 함께 글들을 읽어가며 올레 길을 조금씩 나아갔다. 결국에는 나와 아내가 번갈아가며  아이가 지칠 때마다 업고 걸어야만 했다. 개인 운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업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사실 7살 아이가 걷기엔 조금 힘든 거리임은 틀림없었다.

아내가 아이를 업고 가던 사이에 우리는 중간 기착지인  좌가연대에 도착했다. 좌가연대는 봉수대와 함께 통신을 담당했던 옛 군사시설으로,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길을 걸었다.

엄마아빠 등에 업혀서 그런지 아들의 표정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함께 끝말잇기를 하면서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지루했던 숲 길이 끝나고

다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동 바닷가였다. 대략 11~12km가 되는 구간. 이 시간이 오후 1시 30분이었다. 3시간 20분 정도 걸어온 이었다.

좌가연대와 한동해안도로 입구
즐거운 점심 식사 메뉴 (전복 물회와 전복 돌솥밥)

배도 고프고 아이도 많이 지쳐 있었기에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곧장 들어갔다. 거기서 전복 물회와 전복 돌솥밥으로 허기와 지친 다리를 달랬다. 올레 20길 일정에서 가장 행복했던, 가뭄에 단비 같은 최고의 점심이었다. 그 맛도 정말 끝내줬다. 아이도 점심을 먹고 다시 기운이 나는 듯했다. 밥의 힘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여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시 열무와 당근을 심은 푸른 밭과 아기자기한 현지 집 를 지났다. 그리고 한동 해안도로를 지나면서 예쁜 카페 몇 개도 볼 수 있었다.

한동 해안 가는 길
계룡동 이정표와 평대리 해수욕장

계룡동을 지나면서 이제 4.1km가 남았다는 글을 볼 수 있었다. 이때부터 우리 가족은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1시간 정도만 걸으면 20코스를 완주하는 것이기에 힘이 날 수밖에 없었다. 평대 해수욕장을 지나자 15km 표시가 다시 나타났다. 이제 진짜 남은 거리는 2.6km. 골목을 살짝 지나니 핑크 뮬리 밭과 함께 황금빛으로 넓게 물든 뱅듸 길이 나왔다. 뱅듸는 오래전 평대 마을을 일컫는 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후 햇살이 가득한 이곳을 지나면서 행복감이 또 한 번 밀려왔다. 이제 거의 끝났다는 안도감과 자연의 아름다움. 제주에 가족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뱅듸 길

뱅듸 길이 마무리되면서 목적지가 있는 세화리가 나타났다. 오늘 재래시장이 서는 날이었다. 이곳은 제주 동북부의 가장 큰 장으로, 5일과 10일에 장이 선다. 하지만 3~4시면 장이 파하는 시각. 시계를 보니 벌써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시장 안에 들어가 보았지만,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말그대로 파장 분위기.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화 오일장

그렇게 해안도로를 걷는데, 예쁜 풍경하나가 들어와서 사진에 담았다. 오늘 찍은 사진 중에서 최고의 사진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서 우리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제주해녀박물관에 도착했다. 오후 4시 20분!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6시간 10분 동안 올레 20길을 걸은 것이었다.

세화리 바다 풍경
오늘의 종착지 제주 해녀 박물관

다시 한번 아내와 아이에게 고맙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오늘도 우리의 미션을 다시금 성공했다. 우리 가족 수고했어 오늘도!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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