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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를 잘 깎지 않으면 뱀을 만날지니

제주도의 가을

by 만년소녀

어렸을 때 호주에서 온 가족이 유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아빠의 주말 루틴 중 하나는 잔디를 깎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부지런하면서도 꼼꼼하신 성격인데 주말 아침에 눈을 뜨면 아빠가 가족 중 가장 먼저 일어나 꼼꼼하게 잔디깎이로 잔디를 밀고 계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우리가 호주에서 살 때 들었던 놀라웠던 얘기 중 하나는 잔디를 깎지 않으면 벌금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듣고 조금 황당했던 기억이다. 엄연히 우리 집 잔디인데 안 깎는다고 왜 처벌을 받지, 싶었지만 제주에서 마당 있는 집에 살고 나선 저절로 이해를 하고 있다.


잔디깎기.jpg 제주 이사 온 후 잔디를 열심히 깎았던 초반


우리는 제주로 오자마자 제초기를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샀다. 그러나 우리 남편은 아버지만큼 부지런하지 못하여(그 시절 사람들만큼 파이팅이 넘치지 못하는 듯) 잔디를 잘 깎으려 들지 않았다. 나 역시도 왠지 이건 '힘쓰는 일이니 내 일이 아니야'라고 생각해서 남편에게 미뤄뒀었다. 결국 둘 다 안 깎았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집에 벌레도 더 많이 생기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고, 급기야 마당에서 뱀이 지나가는 것까지 보게 됐다. 차에서 내려서 마당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마당에 박혀 있는 돌 위에 뱀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빠!!!!!!!!!!!!!!!!!!!!!"


남편을 부르는 나의 말에 깜짝 놀란 뱀은 높은 잔디 및 잡초의 숲으로 들어가면서 몸을 숨겼다. 남편 역시 무서워서 잡초더미를 들추어보진 않았고, 며칠이 지나 뱀이 확실히 집에 이제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드디어 잔디를 밀기 시작했다. 잔디를 깎지 않으면 집에 뱀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확실히 남편의 잔디를 깎는 주기가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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