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가을
제주도는 육지에 비해 습도가 높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주도 맘카페에서도 방심했던 습기 때문에 가방이나 옷에 곰팡이가 폈다는 글을 많이 보기도 했었다. 실제로 제주도집 거실에 놓아둔 습도기가 계속 70% 이상을 가리켰다.
그러나 우리는 (안일하게도) 바람이 많이 부는 만큼 환기만 잘 시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육지에 살 때 우리는 '5대 이모님'으로 꼽히는 건조기를 사지 않았었고, 그냥 집 발코니에 건조대를 놓고 햇볕에 말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햇볕이 소독도 시켜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제주도에서도 건조기를 굳이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온 지 며칠도 안돼 빨래가 마르질 않아서 슬슬 걱정이 됐다. 햇볕 쨍쨍한 날 2층 테라스에 건조대를 놓고 말려도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았고, 집 안에 건조대를 놓고 말려도 마르지 않았다. 특히 2층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에는 온갖 벌레가 다 붙어서 하나하나 벌레를 떼어내야 하는 고충까지 더해졌다. 우리 집이 중산간 지역인 데다가 외지다 보니 주변에 잡초가 무성한 공터가 많아서 벌레 또한 많았다. (앞서 얘기했지만 마당에 뱀도 나온 적이 있다!)
결국 우리는 당근마켓에서 건조기를 저렴하게 구매했다. 국산 대기업 제품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용량에 15만 원이라는 가격이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이것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부부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우리 집에서 15분 거리 사는 분께 건조기를 받아서 뒷 트렁크에 넣었는데 문제는 차 트렁크가 닫히질 않았다. 그래서 끈으로 묶어 살짝 고정을 하고 차가 크게 흔들리지 않게 조심조심 운전해서 집으로 왔는데... 문제는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산 우리 차의 뒷유리 선팅이 건조기 모서리에 동그랗게 벗겨져 버린 것! 정말 눈물 나게 아까웠다. 이 차 선팅비까지 다시 해야 하는 돈까지 고려하면 값비싼 건조기값을 치른 것 같았다.
건조기를 차에서 내려서 다용도실로 가지고 오는 것도 문제였다. 둘이 끙끙대며 겨우겨우 건조기를 모셔왔다. 짧은 거리지만 10회 이상 쉬어가면서. 지금은 무사히 건조기를 잘 쓰고 있다. 벗겨진 차 선팅을 보면 여전히 속은 쓰리지만.
다음은 제습기. 제주집 주인은 우리에게 세를 주면서 "벽지를 새로 했으니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가구는 벽지에서 3~5cm 띄워서 놓아달라, 제습기는 자주 틀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다행히 제습기는 있었다. 육지에서 쓰던 것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제주에 있는 내내 용량이 더 큰 것으로 바꿀까, 2층용으로 제습기를 하나 더 살까, 내내 망설였다. 한 이틀 집을 비워도 집 내부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다행히 강박적으로 관리한 덕에 우리가 그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한 번도 곰팡이가 피지 않았다.
혹시 제주 이주를 앞두고 있다면,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부니 환기만 시키면 습기는 괜찮을 거야'라는 우리 같은 안일한 생각 대신, 그냥 넉넉한 용량의 제습기를 가져오는 것을 추천한다.